장끼전(--傳), 자치가(雌雉歌), 화충가(華蟲歌), 화충전(華蟲傳), 꿩타령
장끼의 죽음과 까투리의 개가를 노래한 실창(失唱) 판소리 작품
《장끼타령》은 유사한 서사를 공유하는 설화나 민요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전반에 형성된 판소리 작품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점차 창을 잃고 전승이 단절되었다. 중고제 명창으로 분류되는 염계달, 한송학 등이 《장끼타령》을 잘 불렀다고 하며, 20세기 이후에는 김연수, 박동진 등 근현대 판소리 명창에 의해 활자본 소설 『장끼전』에 기반한 복원이 이루어졌다.
《장끼타령》의 형성에는 ‘두더지의 혼사 설화[野鼠婚說話]’, ‘나이 자랑 설화[爭長說話]’와 같은 설화 또는 〈꿩꿩 장서방〉와 같은 민요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학규(李學逵, 1770~1835)가 민요를 듣고 한시로 옮긴 작품인 「치기사(雉機詞)」의 서사가 눈 내린 겨울 산에서 덫에 걸린 꿩이 죽음을 맞고 아내가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동동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판소리 《장끼타령》의 전반부와 흡사하다. 19세기에는 ‘꿩타령’이라고 불렸을 가능성이 크며, 소설본의 경우 ‘장끼전’ㆍ‘자치전’ㆍ‘자치가’ㆍ‘까토리전’ㆍ‘화충전’ㆍ‘화충선생전’ㆍ‘꿩전’ 등 다양한 명명이 존재한다.
○ 역사적 변천 판소리 《장끼타령》의 존재가 확인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기록은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 중 “푸른 목 붉은 가슴의 장끼와 까투리(靑楸繡臆雉雄雌), 묵은 밭 무덤가의 붉은 팥을 의심하면서도(留畝蓬科赤豆疑), 한 번 쪼다 덫에 걸려 죽어가는데(一啄中機紛幷落), 추운 산 마른 가지에는 잔 눈만 녹네(寒山枯樹雪殘時).”,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관극팔령(觀劇八令)」 중 “온 산에 눈 덮여 새조차 날지 않는데(雪積千山鳥不飛), 꿩이 어지럽게 내려앉아 셀 수 없네(華蟲亂落計全非). 까투리가 그토록 먹지 말라 부탁했건만(抛他兒女丁寧囑), 구복이 구구해 덫을 건드리고 말았구나(口腹區區觸駭機).”의 시구이다. 이로부터 당시의 판소리 《장끼타령》이 장끼의 비극적 죽음과 꿩 가족의 비참한 생활상을 주요하게 다루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한편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의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이유원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중고제 명창 염계달이 판소리 10년 공부를 작정하고 충청도 음성으로 가는 도중에 『장끼전』 한 권을 습득했다고 한다. 이후 《장끼타령》은 염계달의 장기가 되었다. 이로부터 염계달에 이르러, 《장끼타령》이 본격적인 판소리 작품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노식이 거론한 판소리 《장끼타령》의 또 다른 명창은 역시 중고제 명창으로 분류되는 한송학(韓松鶴, ?~?)이다. 한송학이 헌종, 고종 연간의 인물이었음에 근거해 보면, 판소리 《장끼타령》이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는 창과 사설이 온전하게 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조선창극사』에 수록된 한송학 더늠 〈까토리해몽〉은 실제 그가 부른 판소리 사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장끼전’ 서사는 19세기 후반 이후에도 가사나 소설 등으로 활발히 전승되었으나, 판소리로서의 전승은 단절되었다. 염계달과 한송학이 모두 중고제 명창에 속하므로, 중고제의 소멸과 함께 자연스럽게 판소리 전승도 단절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타 장르의 전승이 활발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판소리적 음악어법이 당대에 경쟁력을 잃은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후 1940년 김연수(金演洙, 1907~1974)가 구활자본 소설 『장끼전』을 저본으로 삼아 작창한 《쟁끼전》이 오케레코드에서 발매되었으며, 1970년대 박동진(朴東鎭, 1916~2003)이 역시 구활자본 소설 『장끼전』을 저본으로 하여 만든 《장끼타령》이 발표되었다. 타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의 직접적인 판소리 공연 여부는 확인되지 않으나, 동아방송이 1976년 1월 1일부터 1977년 3월 1일까지 제작하여 방송한 10편의 판소리 드라마 가운데 박동진 명창의 《장끼타령》 녹음에 기초한 〈장끼전〉이 포함된 데서 복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구성 및 세부 내용 《장끼타령》은 유랑민으로서의 장끼가 처한 비극적 삶과 까투리의 개가가 지니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우화적인 작품이다. 후대에 실창되어 판소리 사설의 전모는 확인할 수 없으나, 굶주린 장끼가 까투리의 만류를 무시하고 콩을 먹다가 덫에 걸려 죽고, 까투리는 뭇새들의 청혼을 받지만 결국 문상 왔던 홀아비 장끼와 재혼한다는 내용으로 짐작된다. 송만재나 이유원 등의 기록에 근거하면, 초기 판소리 《장끼타령》에서는 장끼가 덫에 걸려 죽는 장면까지를 기본 서사로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하층민의 고달픈 삶과 비극상에 초점을 둔 판소리 작품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판소리의 서사는 장끼에 대한 풍자나 비판적 시선을 바탕으로 전반부 서사를 확립하는 한편, 남겨진 까투리의 문제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판소리 《장끼타령》의 경우 창본 형태의 사설이 남아있지 않은 관계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타 장르의 서사 양상을 볼 때 까투리의 개가 문제도 후대에 판소리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1940년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한 김연수의 《쟁끼전》은 〈Okeh 20126 창극조(唱劇調) 쟁끼전(傳) (一)ㆍ(二) 김연수(金演洙) 장단(長鼓)정원섭(丁元燮)〉, 〈Okeh 20127 창극조(唱劇調) 쟁끼전(傳) (三)ㆍ(四) 김연수(金演洙) 장단(長鼓)정원섭(丁元燮)〉, 〈Okeh 20128 창극조(唱劇調) 쟁끼전(傳) (五)ㆍ(六) 김연수(金演洙) 장단(長鼓)정원섭(丁元燮)〉, 〈Okeh 20129 창극조(唱劇調) 쟁끼전(傳) (七)ㆍ(八) 김연수(金演洙) 장단(長鼓)정원섭(丁元燮)〉의 4매 1질로 구성되어 있다. 총 13장단으로 되어 있으며, 녹음 시간은 26분 30초 정도이다. 진양, 세마치,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중모리 등의 장단이 사용되었다. 음악적인 짜임이나 창법에 중고제나 고제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연수의 순수한 작곡임을 알 수 있으며, 이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작곡되어 음반으로 전하는 창작판소리라는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한편 1970년대에 복원이 완료된 것으로 보이는 박동진의 《장끼타령》은 그 사설이 이국자의 『판소리 연구』(정음사, 1988)에 수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공연 정보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창본은 아니리와 창(唱)으로 구분되며, 장단은 ‘진양, 중몰이, 중중몰이, 엇중몰이, 잦은몰이, 엇몰이, 성음’ 등으로 표기해 두었다.
판소리 《장끼타령》은 판소리에 앞서 민요가 선행하였고, 가사로도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판소리 작품의 전승 과정과 달리 독특한 지점이 발견된다. 판소리 외에도 설화ㆍ민요ㆍ한시ㆍ가사ㆍ소설 등 다양한 갈래로 전승되었으며, 판소리의 경우 19세기 후반 이후 중고제의 소멸과 함께 점차 창을 잃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창을 잃기 이전의 창본은 확인되지 않으나, 20세기 이후 김연수나 박동진과 같은 근현대 판소리 명창에 의해 《장끼타령》의 복원이 이루어진 사실을 의미 있게 볼 필요가 있다.
김종철, 「장끼전과 뒤틀림의 미학」, 『판소리의 정서와 미학』, 역사비평사, 1996. 이경아, 「김연수의 쟁끼전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이문성, 「박동진 창본 〈장끼타령〉의 복원과 판소리 콘텐츠의 확대」, 『한성어문학』 37, 2017. 최혜진, 「장끼전 작품군의 존재 양상과 전승 과정 연구」, 『판소리연구』 30, 2010.
송미경(宋美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