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주자를 ‘공자 이후의 일인자’로 평가하여 그의 학설을 중시하고 있다. 정조는 “요ㆍ순ㆍ우ㆍ탕의 도는 공자가 태어남으로 밝혀졌고, 공자ㆍ증자ㆍ자사ㆍ맹자의 학문은 주자가 태어남으로써 전해진 것”으로 파악하였고 “이단이 소멸되고 민심이 안정되는 근본이 주자를 높이는 것”으로 보았다. 『악통』 권1에서 정조는 “나는 일찍이 주자와 채원정의 율려가 관현에 적용되지 않은 것을 천고의 한으로 여겼다…이 책을 지은 것은 대개 주자가 강론한 율려가 다만 『율려신서』라는 책에 글로만 남아 있게 하지 않고 실제로 활용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썼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악통』은 정조가 주자의 악론(樂論)을 실현하기 위해 지은 저술로서 주자학 옹호의 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 체재 및 규격
1책 31면. 세로 33.6cm×가로 21.8cm
○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奎1468
○ 편찬 연대 및 편저자 사항
정조의 저술을 모은 『홍재전서(弘齋全書)』 권61에 실려 있으며 1791년(정조 15)에 편찬되었다. 『홍재전서』는 정조의 저술을 모은 어정서(御定書)이므로 『악통』은 정조의 저술임을 알 수 있다. 정조는 1776년에 조선의 제22대 왕위에 올라 1800년까지 24년간 재위하였다.
○ 구성 및 내용
『악통』은 총론(總論)ㆍ악률(樂律)ㆍ악조(樂調)ㆍ악기(樂器)ㆍ악보(樂譜)ㆍ악현(樂懸)ㆍ악무(樂舞)로 이루어져 있다. 1권 1책의 필사본이며 서문과 발문은 없다. 총론에서는 ‘금악(今樂)으로 말미암아 고악(古樂)을 돌이켜 활용하려는 것’이 요지라는 점을 밝혔다. 악률 편은 악률의 기본이 되는 황종(黃鍾)의 직경(直徑)과 원위(圓圍), 장단(長短)이 척도에서 결정되는 것이라 하면서 역대의 설이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악조 편에서는 “현의 길이의 절반은 한 옥타브 높은 음이 나오지만 관의 길이의 절반은 한 옥타브 높은 음이 나오지 않으므로, 관율(管律)과 현음(絃音)이 다르다”는 점을 위정진(魏廷珍)의 『율려정의(律呂正義)』의 설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악기 편에서는 ‘큰 악기는 대체본형(大體本形)의 도분(度分)을 쓰고, 작은 악기는 소체본형(小體本形)의 도분을 쓴다’는 『율려정의(律呂正義)』의 설을 소개했다. 악보 편에서는 금슬보(琴瑟譜)의 대략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악현 편에서는 정조 당시의 악현 제도의 문제점을 논하고 고악(古樂), 즉 삼대(三代)의 악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또 고제(古制)를 따라 등가(登歌) 악현에서 관악기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악무 편에서는 정조대에 제향을 지낼 때 추는 일무(佾舞)에서 무표(舞表) 없이 한 곳에 서서 붙박이처럼 이동하지 않고 춤을 추는 제도는 잘못임을 지적하였다. 이는 읍양(揖讓)하고 힘차게 발을 딛는 뜻이 없으므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표식(表式)은 『주관(周官)』을 따르고, 춤추는 절도는 송(宋)의 제도를 좇아 국초의 옛 전장(典章)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지원(宋芝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