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盲人)이 경문(經文)을 읽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신앙 의례의 하나.
맹인독경은 시각장애인이 사제자(司祭者)가 되어 경문을 읽음으로써 양재초복(禳災招福)하는 전통적 신앙의례이다. 고려시대 불교와 도교를 배경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조선후기에 토착신앙을 아우르며 민간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맹인독경은 오늘날에도 충청, 경상, 강원, 경기 등 여러 지역에 나타나나 맹인들의 조직을 기반으로 여전히 단체를 이루어 독경 의식을 행하는 전통은 서울에 남아 있다.
맹인독경은 고려시대의 맹승(盲僧)의 독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고려시대 맹승(盲僧)은 도교(道敎)와 불교(佛敎)에 공히 나타나는데 이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점복과 음양풍수를 행하고 왕실의 치병기도와 기우제를 올리는 등 국가의 번영과 왕실의 안녕을 위한 의식을 수행하였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에서 맹인독경의 의례는 지속되지만 점차 공적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도교 의례는 조선 중기 소격서가 혁파된 이후 단절된다. 조선 초기 맹승들의 교육과 의례를 담당해 온 명통사(明通寺) 역시 폐지되지만 사찰의 맹승들은 이후 ‘맹청’을 통해 소극적으로나마 관의 보호를 받으며 독경의 명맥을 이어왔다. 유학자들도 맹인이 읽는 경문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입장이었는데, 무당의 출입을 금했던 서울 사대문 안에도 맹인들의 안택고사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 맹인독경은 국가의 공적 의례에서는 점차 자취를 감추었으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성행하며 불교와 도교, 점복, 무속 등 다양한 신앙적 요소를 습합한 독특한 형태의 의례로 전승되어 왔다.
○ 담당자
예부터 독경업에 종사하는 맹인들을 독경사(讀經師), 경무(經巫), 경장(經匠), 무격(巫覡)이라 했으며 지역에 따라 판수 혹은 법사라 칭했다. 전통시대 맹인이 종사한 직업은 대개 점복(占卜)과 독경(讀經)으로 이 둘을 겸하는 경우도 많았다. 맹인독경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갈 수 있으나 실제 독경을 맡은 맹승의 존재는 고려시대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맹인독경이 도교 과의(科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고려시대 맹승들이 재초(齋醮)는 물론 기우제와 같은 공식 행사에 동원된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독경은 불교의 전통이기도 하므로 불교의 맹승 역시 독경업을 이어왔다고 본다. 맹인독경은 조선 후기 맹청을 기반으로 조직과 단체 활동을 이어왔다.
○ 의식 형태
독경의 의식을 굿에 비교하면 춤이나 노래가 없고 상차림과 복식도 간소하다. 굿이 춤과 음식, 노래와 음악으로 신을 대접하고 복을 비는 의례라면 독경은 경문을 읽음으로써 신장의 힘으로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맹인독경은 형태적으로 불교 의례와 흡사한 모습을 보이는데, 불교 의식의 게송이나 진언, 염불 등이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 특히 경상도 지역의 맹인독경에 이와 같은 불교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 경문(經文)
독경의 주요 경문은 내용이 엄하고 성격이 강한 특징이 있다. 조선 성종 대의 『경국대전』에는 도류(道流)의 재초의식에 사용되는 『영보경(靈寶經)』과 『연생경(延生經)』, 『태일경(太一經)』, 『옥추경(玉樞經)』, 『진무경(眞武經)』 및 기우제에 쓰이는 『용왕경(龍王經)』 등 도교의 경전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맹인독경의 경문은 『옥추경(玉樞經)』, 『옥갑경(玉甲經)』, 『천지팔양신주경(天地八陽神呪經)』, 『불설조왕경(佛說竈王經)』, 『천수경(千手經)』, 『도액경(度厄經)』, 『삼재경(三災經)』, 『북두연명경(北斗延命經)』, 『명당경(明堂經)』, 『용왕삼매경(龍王三昧經)』, 『천룡경(天龍經)』, 『지신경(地神經)』, 『고왕경(高王經)』 등 도교와 불교 및 기복과 양재, 축사의 기능이 강한 밀교류의 경전까지 포괄하고 있다.
○ 음악적 특징
독경은 보통 북을 치면서 일정한 리듬으로 구절을 떼어 읽는 일명 ‘생기복덕 장단’이 두루 쓰인다. 이는 12/8(혹은 3소박 4박자)의 4박 계통으로 판소리의 자진모리장단과 흡사하다. 서울맹인독경의 경우 3인 이상이 함께 독송하는 조건에서 다양한 독송 방식이 활용되고 장단의 종류도 많다. 불교의 염불과 같이 혼자 읊는 부분이 있으며 민요와 같이 선후창으로 주고받기도 한다. 다라니나 특정 경문의 경우 여러 명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읽는 합독(合讀)도 종종 일어난다. 독경의 선율은 보통 해당 지역의 음악 어법을 끌어 쓰는데 염불과 같은 불교음악의 영향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 서울맹인독경의 경우 후반부에 불교의 화청이나 굿판의 뒷전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대목이 있다. 즉, 앉아서 의식을 행하던 독경인들이 선 채로 경문을 읽는데(이를 선경이라 한다) 이때 읽는 <제석선경>, <성주선경> 등의 경문이 한문이 아닌 우리말로 되어 있는 점 또한 특징이다.
서울의 맹인독경에 나타나는 음악적 변화와 다양성은 맹인들의 조직과 단체를 기반으로 3인 이상의 다수가 참여하는 독경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전의 독경은 주로 맹인이 담당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현재 시・도의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대전의 앉은굿’(대전광역시)과 ‘태안의 설위 설경’(충청남도), ‘전북의 앉은굿’(전라북도) 등이 모두 정안인(正眼人)의 독경이다.
맹인독경은 전통 신앙의 측면에서 깊은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의례의 하나다. 오랜 동안 시각장애인이 전담해 온 특수 분야로서 조선전기까지 국가의 보호와 통제 아래 그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다. 토착화되면서는 다양한 종교와 경전을 수용한 한국 고유의 전통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맹인독경은 전통음악 부문에도 영향을 끼쳐 20세기 전후 경서도의 재담독경소리가 크게 유행한 바 있다. 오늘날 독경은 맹인과 정인의 구분 없이 행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굿과 결합된 의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조직을 바탕으로 단체로 이루어지던 맹인독경은 현재 서울 지역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2017년)
『경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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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金仁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