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부터 1949년까지 이왕직아악부 및 구왕궁아악부에서 다루어진 다양한 문서를 책자 형태로 묶어 놓은 자료집.
『조선아악』은 일제 강점기 이왕직에서 보관되어 온 아악부 관련 문서를 거칠게 묶어 책자 형태로 구성한 자료이다. 작성 주체, 시기, 경위, 목적이 각기 달라 문서의 내용과 성격, 지질(地質), 기록 방식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자료에는 이왕직의 관리 감독 아래에 있던 아악부의 조직과 운영, 연주 및 공연 활동, 교육과 연구, 그리고 상급 기관과의 관계 등이 드러나 있어, 당시 아악부의 실상을 상세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1911년 조선 왕실의 사무를 담당하기 위한 일본 궁내성(宮內省) 산하의 이왕직이 설치되면서 아악부 관련 문서들도 생산되기 시작한다. 아악부에서 담당했던 다양한 사무와 그에 따른 문서의 전체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남아있던 문서들이 어느 시점에 묶이면서 ‘조선아악’이라는 표제를 갖게 되었다. 문서 중에 포함된 김채봉의 1949년 글을 근거로 볼 때, 해당 문서들은 미군정 시기인 1949~1950년 이후에 합철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 구왕궁재산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하던 왕실 자료는 1955년에 창경원사무청으로 이관되었으며, 1969년에는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로, 1981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관리되고 있다.
○ 자료 체제
1책(1冊) 242장(張). 26.5cm × 18.3cm
○ 자료 정체
소장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3-590)이다. 1913년부터 1949년까지의 이왕직아악부 문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1949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합철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별적인 문서들을 하나로 묶고 ‘조선아악’이라는 표제를 붙인 주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자료의 맨 뒷장에 ‘1972년 12월에 표지를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 구성 및 내용
『조선아악』을 구성하는 문서의 성격과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간략한 표나 단일 페이지로 이루어진 문서부터 수십 쪽에 달하는 자료까지 그 분량도 제각각이다. 악보, 연주회 팸플릿, 악기 해설서, 레코드 녹음 관련 자료, 교수 시간표, 공문서, 사문서 등 내용과 형식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부 자료는 제책 과정에서 묶이지 않고 별도의 문건으로 남아 있거나 문서 사이에 끼워진 형태로 존재한다. 대부분의 문서는 필사본으로, 붓이나 펜으로 작성되었으며, 이왕직인찰지가 사용된 경우도 많다. 먹지나 등사 방식으로 제작된 문서도 있어 동일한 문서가 여러 벌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서의 관리 목적에 따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아악부에서 직속 상급 기관인 이왕직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이며, 다른 하나는 이왕직이 그 상급 기관인 총독부 또는 궁내성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이다. 문서의 내용에 따라 다음의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① 아악부의 조직 및 운영에 대한 문서: 아악대(1911~1925)에서 담당했던 왕실 음악의 내용을 보여 주는 「아악대장악표(雅樂隊掌樂表)」, 아악부원들의 명부 및 조직, 관리 등에 대한 문서인 「아악부원명부(雅樂部員名簿)」, 「이왕직아악부일람(李王職雅樂部一覽)」, 「관리복무기율(官吏服務紀律)」등이 대표적이다.
② 아악부의 연주, 공연, 음반 녹음에 관한 문서: 1913년 9월 8일의 고종 탄신연의 기념 공연 내용이 상세하다. 주악 순서 및 필요한 물품, 정재 참여자, 아악대 구성원들의 역할, 가창 종목 등에 대한 내용과 관련 공문도 있다. 이 밖에 이왕직아악부의 공연 활동에 관한 기록으로 팸플렛 및 가사지 중에 <황화만년지곡>도 있다. 1928년 아악부에서 취입한 유성기 음반을 재편집하는 내용이 담긴 「레코드 이표조합표(レコ-ド裏表組合表)」도 있다.
③ 교육 및 연구 관련 문서: 1919년 설립된 아악부원 양성소의 전체 5년 과정 교과목명이 정리되어 있는 「교수시간배당표(敎授時間配當表)」가 대표적이다. 악기와 악곡, 정재 등에 대한 내용을 일본어 혹은 우리말로 정리한 문서도 몇 건 있다. 이는 이왕직에 보고된 내용이기도 하지만 자체의 교육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기록이다. 「조선아악악기연혁(朝鮮雅樂樂器沿革)」, 「조선악기 악곡 정재의 약력(朝鮮樂器 樂曲 呈才ノ略曆)」, 이 밖에도 가곡 노랫말을 일어로 소개한 내용 등이 있다. 「아악채보예정표(雅樂採譜豫定表)」는 당시 아악부에서 계획했던 채보 작업과 관련하여 해당 악곡의 편성 악기별로 채보량과 채보 일정이 정리되어 있다. 아악부의 촉탁으로 근무했던 안확(安廓)이 음악사와 음악 이론서 편찬의 필요성을 주장한 「아악정리지의견(雅樂整理之意見)」도 있다.
④ 상급 기관인 총독부 및 궁내성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문서: 1921년 예식과장이던 이항구(李恒九)가 이왕직 차관 앞으로 보낸 기밀 공문서 「아악대에 관한 건」과 1936년 아악사장 함화진(咸和鎭)의 일본 궁내성 악부 출장 보고서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아악』은 일제 강점기 제도권 내 유일한 전통 음악 기관이었던 아악부의 조직과 운영, 교육 및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비롯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이 문서는 20세기 시민 사회에 적응해 가는 왕실 음악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동시에, 식민 통치기 복잡하고 중층적인 행정 구조 속에서 아악부가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 문서의 대부분은 아악부 내부의 활동이나 조직 내 보고용으로 작성된 것이며, 이왕직의 상급 기관인 궁내성이나 총독부에서 결재한 명령이나 지시, 혹은 다른 기관의 협조를 요청하는 형식적인 공문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비록 파편적인 문서들의 집합이지만, 유일본이 많고 희귀한 자료를 다수 포함하고 있어 근대 음악사 연구 분야의 중요한 1차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장서각에서 각각 제책본(K3-590:01)과 해책본(K3-590:02)의 원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권도희, 「장서각 소장 「朝鮮雅樂」의 해제와 근대 음악사료적 가치에 대한 고찰」, 『동양음악』 26, 2004. 김영운, 「조선아악」 해제, 한국중앙연구원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논문, 2015.
김인숙(金仁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