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4월 23일자 『조선일보』에 소개된 「전조선향토연예대회(全朝鮮鄕土演芸大会)」 중 5월 2일 오후 7시 부민관(府民館) 대강당에서 올려지는 「고전무용대회(古典舞踊大會)」의 기사에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12개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여기에 급제무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고려시대부터 조선의 과거(科擧)는 “한번 남자로서 출세하는 바로큰길”이고 “과거에 급제하고나서 경하스러운 잔치가 베푸러지지안을수 업고 또한 흥을 못니기는 춤이 벌러지지안을수 업다”고 하면서 “가장 호화로운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출연자 또한 화려한데, 선배관원(先輩官員) 한성준, 신급제(新及第) 이정업(李正業), 창우(唱優) 김봉업(金奉業), 김세준(金世俊), 김광채(金光彩), 육각세적(六角細笛) 김만삼(金萬三), 이충선(李忠善), 대령(大笭) 방용현(方龍鉉), 해금(奚琴) 김덕진(金德鎭), 장고(長鼓) 한희종(韓喜宗), 기생(妓生) 홍경숙(洪敬淑), 박진홍(朴珍紅) 총 12명이었다. 춤과 음악의 대가인 한성준과 줄타기와 해금의 명수인 이정업, 팀을 이뤄 오랜 기간 활동했던 방용현(대금)과 김덕진(해금), 한성준의 자제이자 한영숙의 부친인 한희종, 줄타기 재주꾼인 김봉업과 소리꾼이자 고수인 김세준 그리고 시나위 연주도 하며 재담꾼인 김광채 등, 출연진의 예술적 행로와 깊이만으로도 매우 기대되는 무대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더불어 창우 3인이 만들어내는 흥과 기생 2인의 무대가 펼쳐지는 화려한 가무극이 연상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급제무를 연극적, 음악적 요소가 가미된 고전무용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당대의 일간지에 사진으로 기록되었을 뿐,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1938년 6월 19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조광회 주최 「고전무용대회(古典舞踊大會)」의 급제무 소개에는 “급제를 제재로 하야 성주푸리를 노래하면서 새로 급제한 사람의 축하연이 벌려집니다”라고 되어 있다. 삼현육각과
남도잡가를 토대로 한 한성준의 창작적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후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는데, 1940년 2월 27일 부민관의 「도동기념공연(渡東記念公演)」 기사에 전원 출연으로 게재된 것으로 보아, 규모 있는 가무극 형태의 작품으로 공연되었던 것으로 유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