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1938년도 활동부터 일간지에는 ‘
고전무용’의 용어가 사용되었다. 당시는 아직 ‘전통’에 대한 언급이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로, 한성준의 작품은 신무용 또는 권번의 예기 춤과 다른 양식의 민족적 정서를 지닌 춤으로서 ‘고전무용’이었다. 일제강점기 흩어졌던 우리의 문화 자원을 집대성하여, 전통적 방법론으로 재해석, 창작한 한성준의 다양한 공연 레퍼토리는 당대 뿐 만 아니라, 후대에 이어지는 새로운 전통의 재창출로서 의미가 깊다고 여겨진다. 명무이자 명고수로서 음악적 깊이와 춤의 폭을 융합하려 했던 한성준의 창작성이 단가무에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단가무는 한성준이 당시에 지향한 ‘고전무용’의 소재를 통해 민족적 정서를 지닌 새로운 표현형식의 춤을 창작하고자 만든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애제자를 중심으로 단가무를 올림으로써 자신이 창작한 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었음을 간접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