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염양춘》은 《자진한잎》의 구성 중 계면조 선법에 속하는 모음곡으로, 가곡의 반주를 관악 중심의 기악으로 전환한 사관풍류(舍館風流)에 속한다. 군영과 관아 연회, 그리고 민간의 회갑연이나 축연에서 거상악(擧床樂)으로 연주되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감상용 기악곡으로 정착되었다.
○ 음악적 특징
《염양춘》은 한 장단이 16박인 가곡 장단의 악곡이며, 1분에 54박 정도의 빠르기로 연주한다. 선율 구성음은 이왕직아악부에서 국립국악원으로 이어진 것과 민간에서 전승된 것이 조금 다르다. 국립국악원의 〈계면두거〉 선율은 원곡인 가곡 계면조와 같은 황종(黃:E♭4)ㆍ태주(太:F4)ㆍ중려(仲:A♭4)ㆍ임종(林:B♭4)ㆍ무역(無:D♭5)의 5음 음계 구성이다. 반면 민간 전승의 〈계면두거〉는 무역(無:D♭5)음을 조금 낮게 연주하여 황종(黃:E♭4)ㆍ태주(太:F4)ㆍ중려(仲:A♭4)ㆍ임종(林:B♭4)ㆍ남려(南:C5)으로 사실상 우조(羽調) 음계인 황종평조(黃鍾平調)에 해당한다.

《자진한잎》의 기본 편성은 향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의 삼현육각이다. 그러나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이습회 목록과 음반에서 《염양춘》은 삼현육각 혹은 편성이 큰 관악합주나 독주로 연주되었다. 현대 국립국악원에서는 삼현육각 악기에 박ㆍ소금ㆍ아쟁 등을 추가하여 20인 이상 또는 거문고와 가야금을 넣어 관현합주로 연주하기도 한다. 《염양춘》은 흔히 피리나 대금ㆍ해금의 독주로 연주하거나 생황과 단소의 이중주인 생소병주로 연주하기도 한다.
○ 역사 변천 과정
《자진한잎》의 아명 체계는 20세기 초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확립되었다.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정기연주회인 이습회(肄習會) 연주 목록에는 《염양춘》이 〈계면두거〉 한 곡으로, 혹은 〈계면두거〉–〈농〉–〈계락〉–〈편1〉–〈편2〉 전곡으로 연주된 사례가 함께 보인다.
년도 |
일자 |
연주형태 |
악곡명 |
연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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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
04월 06일 |
피리독주 |
염양춘(계면잦은한잎) |
김보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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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
07월 05일 |
피리독주 |
염양춘 |
이복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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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
12월 05일 |
피리독주 |
염양춘 |
강명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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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
03월 05일 |
합주 |
염양춘 |
박노아, 이재천 |
봉해룡 |
왕종진 |
1936 |
07월 02일 |
피리독주 |
염양춘 |
이복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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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04월 01일 |
피리독주 |
염양춘 전곡 |
이재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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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08월 05일 |
피리독주 |
염양춘 전곡 |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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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07월 01일 |
피리독주 |
염양춘 전곡 |
주성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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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
01월 13일 |
피리독주 |
염양춘 전곡 |
박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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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
03월 03일 |
피리독주 |
염양춘 전곡 |
김진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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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
08월 04일 |
대금독주 |
염양춘 전곡 |
최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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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
11월 10일 |
대금독주 |
염양춘 전곡 |
유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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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
09월 07일 |
피리독주 |
염양춘 |
김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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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
11월 02일 |
피리독주 |
염양춘 |
주성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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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
03월 07일 |
대금독주 |
염양춘 |
김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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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
07월 04일 |
해금독주 |
염양춘 |
이덕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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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
09월 05일 |
해금독주 |
염양춘 |
이덕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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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
01월 09일 |
합주 |
염양춘 |
홍윤기 |
김기수 |
김만흥 |
또한 1906년 서울 악공들이 녹음한 빅터 유성기 음반(Victor 13546A)에는 〈계면두거〉가 ‘육각거상(六樂擧觴)’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1930년대 한성준(韓成俊) 고악단과 이왕직아악부 악사들이 콜롬비아 음반(Columbia 40216-A, 40642-A)에 같은 곡을 녹음하였다.
이로써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계면두거〉가 당시 관아와 민간에서 모두 거상악(擧床樂)의 대표곡으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복 이후 이왕직아악부의 《염양춘》은 국립국악원에 의해 계승되었고, 민간에서는 서울굿의 거상악으로 전승되어 ‘자진한잎’ 또는 ‘자진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진윤경(秦潤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