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양금보』 〈양양가〉는 현행 제3장 8장단까지의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아양금보』 이후 선율이 단순화되는 과정을 거쳐 현행에 이르고 있다.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은 〈양양가〉를 〈처사가〉ㆍ〈매화타령〉ㆍ〈수양산가〉와 함께 격조가 낮다고 하여 이왕직아악부 아악생들에게 지도하지 않았다. 하규일이 언급한 격조는 노랫말에 의한 구분이 아니고, 선율과 창법에 의해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 노랫말 〈양양가〉의 노랫말은 이백의 시 〈양양가〉를 그대로 옮기고, 우리말로 토를 단 것이다. 〈양양가〉에는 양양의 옛 인물인 산간(山簡, 253~312)과 양호(羊祜, 221~278)가 등장한다. 제3장에 나오는 산옹(山翁)은 널리 인재를 양성한 인물로 노래에서는 질펀하게 취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웃게 하였고, 제7장에 나오는 양공(羊公)은 양양에서 신망을 얻었고,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이 몹시 슬퍼했던 내용이 담겨있다. 산간(山簡)과 양호(羊祜)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술을 예찬하는 내용이다.
| 장 | 노랫말 | 해설 |
| 1장 | 낙일(落日)이 욕몰현산서(欲沒峴山西)허니 도착접리화하미(倒着接䍦花下迷)라 |
지는 해 현산의 서쪽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흰 모자 거꾸로 쓰고 꽃 아래서 헤매네 |
| 2장 | 양양소아제박수(襄陽小兒齊拍手)허니 난가쟁창백동제(攔街爭唱白銅鍉)라 방인(傍人)은 차문소하사(借問笑何事)오 |
양양의 아이들 일제히 손뼉 치며 길 가로막고 다투어 <백동제>를 부르니 옆 사람들 무엇 대문에 웃는가 묻네 |
3장 | 소쇄산옹취사니(笑殺山翁醉似泥)라 노자작앵무배(鸕鶿杓鸚鵡盃)로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을 |
우습구나 산옹이여 곤드레 취했도다 노자작과 앵무배로 백 년 삼만 육천 일 동안 |
4장 |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杯)라 요간한수압두록(遙看漢水鴨頭綠)허니 흡사포도초발배(恰似葡萄初醱醅)라 |
하루에 마땅히 술 삼백 잔은 기울여야지 아득히 바라보이는 한수는 오리 머리처럼 푸르니 마치 포도주 처음 걸러낸 듯하네 |
5장 | 차강(此江)이 약변작춘주(若變作春酒)면 누국(壘麯)을 편축조구대(便築糟丘臺)라 천금준마(千金駿馬)로 환소첩(喚少妾)허여 |
이 강물이 변하여 봄술이 된다면 쌓여 있던 누룩이 바로 술지게미 언덕 되리라 천금짜리 좋은 말로 젊은 첩과 바꾸어서 |
6장 | 소좌조안가락매(笑㘴彫鞍歌落梅)라 거방(車傍)에 측괘일호주(側掛一壺酒)허고 봉생용관(鳳笙龍管)행상최(行相催)라 |
잘 꾸민 안장에 웃음 짓고 앉아 <낙매곡> 노래하네 수레 옆엔 비스듬히 술 한병 걸려 있고 봉황 모양 생황과 용무늬 피리가 서로 길을 재촉하네 |
7장 | 함양시상(咸陽市上)에 탄황견(歎黃犬)이 하여월하(何如月下)에 경금루(傾金壘)오 군불견진조양공일편석(君不見晋朝羊公一片石)헌다 |
함양 저잣거리에서 누런 개를 떠올리며 한탄한 건 달빛 아래에서 금 술잔을 기울인 것과 어떠한가 그대는 진나라 양공의 한 조각 비석을 보지 못하는가 |
8장 | 구두박락생매태(𪛃頭剝落生苺苔)라 누역불능위지타(淚亦不能爲之墮)요 누역불능위지추(淚亦不能爲 之墮)요 심역불능위지애(心亦不能爲之哀)라 |
비석의 거북머리 다 떨어져 이끼만 끼었네 눈물 역시 그를 위해 흘릴 수 없고 마음 역시 그를 위해 슬퍼할 수 없네 |
9장 |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불용일전매(不用一錢買)허니 옥산(玉山)이 자도비인퇴(自倒非人頹)라 서주작역사당(舒州酌力士鏜)으로 |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살 수 있고 옥산은 절로 무너졌지 사람들이 무너뜨린 것 아니라네 서주의 술국자와 장사 새겨진 술 거르는 솥이여 |
10장 | 이백(李白)이 여이동사생(與爾同死生)을 양왕운우금안재(襄王雲雨今安在)오 강수동류원야성(江水東流猿夜聲)을 |
나 이백은 너희들과 함께 죽고 살리라 양왕의 구름과 비는 지금 어디 있는가 강물은 동으로 흐르고 원숭이는 밤에 소리 내어 우네 |
※노랫말 출처: 이양교ㆍ황규남 공편, 『십이가사전』,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이양교 전습소, 1998.
김창곤(金昌坤),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