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락〉, 〈구장기별기〉, 〈답사행가무〉와 함께 고려 때 송나라의 교방악사(敎坊樂師)가 전한 당악정재이며, 1077년(문종 31) 2월 연등회에서 공연되었다. 1대가 55명으로 ‘군왕만세(君王萬歲)’ 또는 ‘천하태평’이라는 글자를 만드는 춤이다.
쉰다섯 명이 1대가 되어 군왕만세 또는 천하태평이라는 네 글자를 만든다. 세부 구성과 춤사위ㆍ음악ㆍ창사ㆍ복식ㆍ의물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역사적 변천
『고려사』 권71에 의하면, 1077년(문종 31) 2월 을미(乙未)일에 연등회를 할 때 왕이 중광전(重光殿)에 행차하여 악무를 관람하였는데, 교방 여제자 초영(楚英, ?~?)이 왕모대가무를 공연하였다고 한다. 1대가 쉰다섯 명으로, 군왕만세(君王萬歲) 또는 천하태평(天下太平)이라는 네 글자를 만드는 춤이다. 고려 이후에 이러한 가무가 지속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1999년 국립국악원이 ‘국립국악원 정재 제전’에서 재현하여 공연한 적이 있다. 당시 국립국악원 원로사범이었던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1987년 초안한 무보를 바탕으로 국립국악원 무용단 하루미가 안무하여 발표하였다.
권혜경(權惠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