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치물 및 참여 인원 환궁하는 길인 연도(輦道)에 침향산(沈香山) , 지당판(池塘), 화전벽(花氈壁) 탁자 등을 설치한다. 이 행사에 악공 50명 (전부고취 50명, 후부고취 인원 별도 포함)과 100명이 넘는 기녀들이 참여하였다. 침향산은 산 모양을 만들어 사탑, 승불, 고라니, 사슴 등으로 꾸미고 앞부분에 연화통을 설치한 화려한 구조물이었다. 참여 여기는 가요함을 받드는 연소기, 도기, 박, 백학, 청학 등을 제외한 100명으로 구성되었다. - 절차 (가요축 봉헌) 대가가 탁자에 이르면, 전부고취 악공 50명이 연주를 시작하고 , 기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가요축을 임금에게 올리는 의식이 행해졌다. 도기(都妓)가 가요축을 받들어 나아가 앉으면 기녀 전체가 앉는다. 가요축은 승지(承旨)와 내시(內侍)를 거쳐 임금에게 올린다. 도기가 춤추고 물러난 후, 기녀 전체가 족도(足蹈)하면 음악이 그치며 가요축 봉헌 절차가 완료된다. - 연행 음악 및 춤 가요축 봉헌 후에는 각종 정재(呈才)가 선보였다. 악공이 <여민락령(與民樂令)>을 연주하면 기녀들이 노래를 불렀으며 , 이때의 노래는 「용비어천가」의 일부 장(1~4장, 125장)에 해당되는 <여민락>이었다. 가가 행진하면 <생가요량(笙歌寥亮)> 등의 행악을 연주하고, 대가가 정지하면 <별곡>을 연주하여 번갈아 반복하였다. 가요축 봉헌 후에는 <학무(鶴舞)>, <연화대(蓮花臺)>, <금척무> 등의 정재가 연행되었다. <학무>는 환궁하는 길에 세속의 잡된 기운을 정화시키는 의미를 지닌 상징적인 춤으로, 연행의 중요 요소였다.
○ 역사적 변천 교방가요는 부묘의(祔廟儀)와 함께 국가 전례 중 흉례 의식으로 자리 잡았으나 , 인조(仁祖) 대에 왕명을 내려 부묘 후 환궁 시 가요를 올리는 행사를 중단시키면서 차츰 연행되지 않게 되었다. 결국 1744년(영조 20)에 이르러 영구 혁파되었다.
김경숙(金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