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승(疊勝)
조선 후기 효명세자가 창제한 향악정재로, 궁중의 첩첩이 쌓인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한 칠언이구(七言二句)의 한시(漢詩) 악장을 열 첩(疊)에 걸쳐 노래하며 추는 춤.
첩승무는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창제한 향악정재(鄕樂呈才)이다. 여섯 명의 협무가 당 현종과 양귀비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담아낸 궁중의 풍류(風流)와 아름다운 정경을 제일첩부터 제십첩까지 노래하고 춤춘다. 춤은 노래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대열의 규칙적인 변화를 통해 십첩의 긴 창사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효명세자의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향악정재의 예술적 확장성을 보여준다.
첩승무는 1828년 6월 1일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보령 40세를 기념하는 무자년 진작례(進爵禮)에서 처음 연행되었다. 창덕궁 연경당에서 거행된 이 진작례에서는 17종의 정재가 공연되었는데, 그중 11종의 정재가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예제(睿製)한 악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효명세자가 지은 악장은 짙은 정치적 색채를 담았던 조선 초 악장과 달리 자연과 사물을 관찰하고 감상하여 얻은 감흥을 담아내는 등 예술적인 색채가 한층 돋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첩승무의 창사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창사 제칠첩과 제구첩에서 "興慶池(흥경지)에 아침 해가 비추고 이원 제자들이 새 가사를 노래하며", "비빈들이 옥당(玉塘)에 봄나들이 나오니 이원에서 여지향(荔支香)을 연주하네"라고 읊어,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일화를 비유하여 궁궐 내 임금, 왕비, 궁녀들이 예술과 풍류를 즐기는 아름다운 정경을 노래로 담아낸 궁중정무임을 알 수 있다.
‘첩승(疊勝)’은 첩첩이 쌓여있는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첩승무는 제목 그대로 궁궐의 정경(情景)이 겹겹이 쌓인 듯한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풍류의 분위기를 열 첩의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것을 주제로 한다.
○ 절차와 구성
첩승무는 죽간자 등의 의물을 사용하지 않고 무용수가 직접 등장하고 퇴장하는 향악정재의 형식을 따른다. 제일첩(第一疊)부터 제십첩(第十疊)까지 창사를 노래하고 대열을 규칙적으로 변화시키며 전개된다.
도입부는 음악이 시작됨과 동시에 춤을 추며 등장한다. 6인의 무용수가 전대에 1인, 중대에 4인, 후대에 1인이 서는 전후복합대형(前後複合隊形)으로 배열한다.
전개부는 제일첩(第一疊)부터 제십첩(第十疊)까지 열 번 반복되는 노래와 춤의 순환 구조를 통해 진행된다. 이는 노래를 중심으로 대열의 규칙적 변화를 꾀하며 십첩의 긴 창사를 표현하는 첩승무의 핵심이다. 전개는 여섯 협무가 춤추며 나가서 선 후 제일첩의 사를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이첩부터 구첩까지는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무용수들이 상대(相對)·상배(相排), 회선(回旋), 좌우 선전(旋轉) 등 다양한 대형 변화를 진행하며 춤추다가, 악이 그칠 때마다 해당 첩의 창사를 노래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 이첩에서는 둘씩 짝지어 상대·상배 및 회선하며 춤을 추고, 삼첩에서는 두 대(隊)로 나뉘어 좌우로 회선한 후 남북으로 상배한다. 끝으로 십첩에서는 무용수들이 나란히 줄지어 무진(舞進)·무퇴(舞退)하며 춤추고 원래의 열(列)로 돌아가 춤을 마무리한 후, 제십첩의 사를 노래하며 전개부를 마친다.
종결부는 악이 연주됨과 함께 무용수들이 무퇴(舞退)를 진행하는 동작으로 춤을 마친다. 이는 향악정재의 간결한 형식을 따른 것이며, 무용수들이 등장과 퇴장을 통해 춤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알리는 구성을 완성한다.
○ 창사 창사는 칠언이구(七言二句)의 한시로 구성된 총 십첩(十疊)의 사(詞)이다. 6인의 협무가 춤추면서 전 첩의 창사를 노래하며, 당 현종과 양귀비의 풍류와 궁중의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한다.
| 원문 | 해설 | |
| [일첩 창사] | 翠樓春日捲珠簾, 紫鷰雙飛近畫簷. 취루춘일권주렴, 자연쌍비근화첨. | 봄날 비취빛 누각에서 주렴을 걷으니 꽃 그림 처마 근처 작은 제비 짝지어 나네. |
| [이첩 창사] | 雕欄灼爍百花光, 畫院春深十二香. 조란작삭백화광, 화원춘심십이향. | 아로새긴 난간은 온갖 꽃 환하게 빛을 뿜고 봄 깊은 화원(畵院, 花院’의 오자)에는 갖은 향기 그윽하네. |
| [삼첩 창사] | 春近昭陽殿裡人, 仙裙風動好輕身. 춘근소양전리인, 선군풍동호경신. | 봄 가까워지자 소양전(少陽殿,, 춤 잘 추던 飛燕이 살던 궁전)의 여인 고운 치마에 바람 이니 춤사위 날렵하네. |
| [사첩 창사] | 玉樓春月正遲遲, 碧繡簷前花影移. 옥루춘월정지지, 벽수첨전화영이. | 옥 누각에 봄 달 천천히 떠오르자 푸른 빛 고운 처마에 꽃 그림자 비치네. |
| [오첩 창사] | 玉礎花甎築歌臺, 玳瑁盤中軟舞來. 옥초화전축가대, 대모반중연무래. | 옥 주춧돌 꽃 벽돌로 가대(歌臺)를 쌓아놓고 대모반(玳瑁盤)[바다거북을 그린 춤추는 무대] 안에서 춤사위 나긋나긋. |
| [육첩 창사] | 春光先到百花樓, 宮女雙雙弄彩毬. 춘광선도백화루, 궁녀쌍쌍농채구. | 온갖 꽃 어우러진 누각에 봄빛 먼저 이르자, 궁녀들 쌍쌍이 채구(彩毬)를 갖고 노네. |
| [칠첩 창사] | 朝日曈曈興慶池, 梨園弟子奏新詞 조일동동흥경지, 이원제자주신사. | 아침 해가 흥경지(興慶池)[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모란을 감상하던 연못]를 환히 밝히니 이원(梨園) 제자들 새 가사를 노래하네. |
| [팔첩 창사] | 弟子部中奏新樂, 沈香亭上半捲箔 제자부중주신악, 침향정상반권박. | 이원(梨園) 제자 부중(部中)에서 새 음악을 연주하고 침향정(沉香亭)[흥경지에 있던 정자] 위엔 발을 반쯤 걷었구나. |
| [구첩 창사] | 妃子春遊臨玉塘, 梨園新奏荔支香. 비자춘유임옥당, 이원신주여지향. | 비빈들 옥당(玉塘, 연못)에 봄나들이 나오니 이원(梨園)에선 새로이 여지향(荔支香)[당나라의 악곡 이름]을 연주하네. |
| [십첩 창사] | 羯鼓聲崔御苑花, 紫衣宮女按琵琶. 갈고성최어원화, 자의궁녀안비파. | 갈고(羯鼓) 소리 어원(御苑)의 꽃 피라고 재촉하고 자색 옷 궁녀는 비파를 뜯네.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춤사위 첩승무의 춤사위는 『정재무도홀기』에 전한다. 춤사위 용어들은 춤의 대무 방식이나 대형을 의미하는 용어와 팔의 움직임이나 팔의 위치에 붙인 춤사위의 명칭이다. 상향이무(相向而舞)ㆍ상배이무(相背而舞)ㆍ회선이무(回旋而舞)ㆍ분2대 좌우 선전이무(分二隊 左右 旋轉而舞)ㆍ분남북상배이무(分南北相背而舞)ㆍ상대이무(相對而舞)ㆍ분동서 상향이무(分東西 相向而舞)ㆍ상배환대이무(相背換隊而舞)ㆍ환복기대이무(還復基隊而舞)ㆍ북향이무(北向而舞)ㆍ번수이무(翻袖而舞)ㆍ제행무진무퇴(齊行舞進舞退)ㆍ팔수이무(八手而舞)ㆍ좌우 두 명 수전대이무(左右二人 隨前隊而舞)ㆍ좌우 세 명 수두대이무(左右第三人 隨二隊而舞)ㆍ북향이무(北向而舞)ㆍ염수而舞)ㆍ제행진퇴ㆍ환복초열ㆍ무진이립이 기록 되어있다. ○ 반주음악 첩승무의 반주는 홀기에 따라 〈태평춘지곡(太平春之曲)〉ㆍ〈응상지곡(凝祥之曲)〉ㆍ〈경춘화지곡(慶春和之曲)〉 등으로 전해지는데, 이들은 모두 〈향당교주(鄕唐交奏)〉에 붙여진 아명(雅名)으로 추정된다. 첩승무는 한 곡의 음악으로 연행되지만, 악(樂)-창사-악(樂)의 방식으로 십첩의 사가 진행될 때까지 반복하여 연주된다. ○ 복식·의물·무구 무동 복식은 머리에 아광모(啞光帽)를 쓰고, 상의로 홍라포(紅羅袍)와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線中單衣)를 입는다. 허리에 주전대(珠鈿帶)를 두르고 흑화(黑靴)를 신는다. 『(무자)진작의궤』(1828)에 도식으로 전한다.
여령의 복식은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상의는 황초단삼(黃綃單衫)을, 하의는 홍초상(紅綃裳) 등을 입는다. 허리에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띠고, 손에 오색한삼(五色汗衫)을 매고 발에는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 『(임인)진찬의궤』(1892)에 각무 정재여령 복식의 도식이 수록되어 있다. 첩승무는 당악정재와 달리 죽간자 등의 의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무용수가 직접 착용하는 오색한삼 외에 별다른 무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첩승무는 1828년(순조 28) 무자년 진작례(進爵禮)에서 초연된 후, 1892년(고종 29) 임진년 진찬, 1901년(고종 광무5년) 신축년 7월 진연, 1902년(고종 광무6년) 임인년 4월과 11월 진연에서 추어졌다. 그리고 2021 국립국악원 개원70주년 기념 무용단 정기공연 ‘춤으로 빚은 효’에서 첩승무가 재현되었다.
첩승무는 조선 후기 효명세자의 뛰어난 문학적·예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 궁중정재의 정치적 색채에서 벗어나 문학적·예술적인 양식으로 새롭게 정립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또한 독자적인 예술성을 강조한 악장을 창제하였고, 무동이나 여령 6인이 십첩의 사(詞)를 노래하며 춤추는 합창 춤의 형태와 규칙적인 대형 변화를 통해 조선 후기 향악정재 중에서 독특한 구성의 정재를 보여주었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송방송,「대한제국(大韓帝國) 시절의 진연(進宴)과 관기(官妓)들의 정재공연(呈才公演) -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의 정재여령(呈才女伶)을 중심으로-」, 『무용역사기록학회』 1, 2003. 이의강,「樂章으로 읽어보는 孝明世子의 ‘呈才’ 연출 의식 - 純祖朝 戊子年(1828) 연경당진작(演慶堂進爵)의 경우 -」, 『漢文學報』12, 2005. 조경아, 「순조대 효명세자 대리청정시 정재(呈才)의 계승과 변화」, 『민족무용』5, 2004. 이흥구ㆍ손경순, 『한국궁중무용총서』13, 보고사, 2010.
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