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천정은 1402년(태종 2) 6월 9일, 하륜이 태종의 덕을 칭송하는 「근천정」과 「수명명(受明命)」 악장 두 편을 지어 올린 데서 시작되었으며, 이 사실은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근천정이 정재로 연행된 사례는 1432년(세종 14) 5월 회례연에서 동남(童男; 무동)들이 〈무고(舞鼓)〉와 더불어 근천정을 연행했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개요
근천정(覲天庭)은 '천자의 조정(하늘의 조정, 명나라)에 문안 인사를 올린다'는 의미이다. 악장의 내용은 태종이 왕자 시절 명나라에 들어가 황제의 오해를 풀고 은총을 받고 돌아온 일에 관한 것이며, 조선 초 왕조의 정당성과 안정을 도모하는 정치적 효용을 목적으로 창작되었다. 춤은 태종이 잠저(潛邸, 왕위에 오르기 전) 시절 중국 조정에 들어가 황제의 오해를 풀고 나라의 백성이 이를 기뻐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는 악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절차와 구성
근천정은 당악정재의 형식을 따르며, 죽간자가 무용수를 이끌고 등장하고 퇴장하는 명확한 회귀의 순환 구조로 연행된다. 춤의 진행은 집박 악사의 박(拍)을 신호로 전환된다. 『악학궤범』 권4에 초입배열도, 작대도와 함께 술어(述語)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도입부
봉족자(奉簇子) 한 명과 봉죽간자(奉竹竿子) 두 명이 전대(前隊)에 일렬대형으로 늘어서서 족도(足蹈) 하며 앞으로 나간다. 죽간자가 진구호(進口號)를 노래하여 춤의 시작을 알리고, 족자는 그 자리에 남고 죽간자는 좌우로 갈라선다.
- 전개부
후대(後隊)의 선모(仙母) 한 명과 협무 두 명이 족도하며 나가서고, 선모와 협무가 오른손을 치켜들고 치어(致語를 한다. 치어가 끝나면 선모와 좌·우 협무는 <금전락령> 악절에 따라 염수족도하며 「근천정사」를 부른다. 창사를 마친 후, 좌협무부터 순차적으로 나와 선모와 대무(對舞) 및 배무(背舞)를 하고 물러나 복위(復位)하며, 우협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춤추는 이시성(異時性) 대칭의 반복 구성을 보인다. 이후 북쪽을 향하여 춤추며 나간다.
-종결부
죽간자 두 명이 족도하며 전대로 나와 족자의 양옆으로 되돌아간다. 음악이 그치면 죽간자가 퇴구호(退口號)를 하고 전대에 늘어선 족자와 죽간자가 물러간다. 이어서 선모와 좌·우 협무가 협수무(挾手舞)로 춤추며 물러나 퇴장함으로써 춤을 마친다.
○ 연행적 특징 (춤사위, 반주음악, 창사)
근천정은 전후대형으로 무진(舞進)·무퇴(舞退)하며 진행하며, 선모와 협무의 대무(對舞)와 배무(背舞)로 대형 변화를 꾀한다. 좌협무와 우협무가 시차를 두고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이시성 대칭이 특징이다. 『악학궤범』에는 족도ㆍ염수족도ㆍ무진ㆍ팔수무(八手舞)ㆍ대무ㆍ배무ㆍ협수무(挾手舞)ㆍ무퇴(舞退)ㆍ퇴수무(退手舞) 등의 춤사위 명칭이 전해진다.
○ 반주 음악
근천정의 반주음악은 당악곡을 사용한다. 악학궤범에는 <오운개서조인자>-진구호-<오운개서조인자>-치어-<최자령>-<금전락령>-<금전락령>-<중강령>-퇴구호-<오운개서조인자>의 순서로 연주된다. 창사는 기존 음악인 <금전락령>에 붙여 불렀다.
○ 복식·의물·무구
『악학궤범』에 근천정의 무동관복(舞童冠服)과 여기복식(女妓服飾)이 도식(圖式)으로 전한다. 무동은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오방색(황, 녹, 자, 남, 도홍)의 비단 포(袍)를 입는다. 포 안에는 흰색 중단과 예복용 치마인 상(裳)을 갖추어 입고 화(靴)를 신는다. 여기는 머리에 수화, 잠, 금채를 장식하고, 남적고리와 보로(甫老) 위에 단의를 입고 흑장삼(黑長衫)을 덧입는다. 발에는 단혜아(段鞋兒)를 신는다.




근천정은 당악정재의 특징에 따라 많은 의물이 사용된다. 족자(簇子) 1개, 죽간자(竹竿子) 2개, 인인장(引人仗) 2개, 정절(旌節) 2개, 용선(龍扇) 2개, 봉선(鳳扇) 2개, 미선(尾扇) 2개, 개(蓋) 3개 등이 사용된다.

○ 노랫말
근천정의 창사는 진구호, 치어, 사(詞), 퇴구호의 네 편을 부른다. 진구호와 퇴구호는 춤을 여닫는 구호로 죽간자가 부르고, 치어는 태종에 대한 칭송을 선모가 노래한다. 「근천정사」는 협무가 <금전락령>의 악절에 붙여 부르며, 태종의 외교적 업적과 덕망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는다. 악장은 태종이 왕자 시절에 명나라의 태조를 만난 일을 노래하고 있다. 「근천정사」는 시간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과 끝은 태종에 대한 칭송이고, 중간에는 태종의 업적을 노래한다. 창사는 태종이 명나라 조정에 나아가 천자를 뵈었던 일을 주제로 하여, 태종이 왕으로서의 덕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원문 |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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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자 진구호] |
利覲天庭, 承帝眷之優渥. |
천정(天庭, 명나라)에 문안 인사를 올려 |
[치어] |
太宗以潛邸入覲天庭, |
태종(太宗)께서 왕위에 오르시기 전 안부를 여쭈러 천정(天庭, 明의 황제)에 들어가서 황제로부터 은총과 예우를 받고 돌아오시매, 온 나라의 늙은이와 어린이가지 기쁨에 넘쳐 함께 노래 부른 것입니다. |
[창사] |
「창 근천정(覲天庭)사 일성」 |
「창 근천정(覲天庭)사 일성」 |
[죽간자 퇴구호] |
德維善政, 方聞九功之歌. |
그 덕으로 선정(善政)을 베푸시려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근천정은 1402년(태종 2) 악장으로 창작된 후, 1411년(태종 11) 태종이 정도전이 지은 기존 악장 대신 하륜의 「근천정」과 「수명명」을 악장의 첫머리로 삼을 것을 명하여 이 악장의 위상을 높였다. 세종조(世宗朝) 초기에 정재로 연행되었으며, 『세종실록』에 1432년 회례연에서 연행된 기록이 전한다. 이후의 전승 기록은 명확히 발견되지 않아 20세기 초반에는 연행이 단절되었다. 현대에 와서 『악학궤범』의 기록을 토대로 김천흥의 재현 안무를 거쳐 복원되었으며, 1982년 10월 13일 국립국악원의 전통무용발표회에서 공연된 이후 현재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