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식ㆍ의물ㆍ무구 『악학궤범』에는 수명명의 무동관복(舞童冠服)과 여기복식(女妓服飾)이 도식(圖式)으로 전해진다. 무동(협무) 복식은 머리에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겉옷인 의(衣, 포)는 사(紗)나 라(羅)와 같은 비단으로 황·녹·자·남·도홍 등 오방색을 사용하며 발에는 화(靴)를 신는다. 가슴과 등에 흉배를 단다. 포 안에는 오방색 비단 중단을 입고 허리에 상(裳)을 갖춘다. 여기(선모) 복식은머리에 수화(首花), 잠(簪), 금채(金釵)를 장식하고 단혜아(段鞋兒)를 신는다. 복식은 백말군(白襪裙), 남적고리(藍赤古里) 위에 상(裳, 보로)을 입고 홍대를 맨 후 겉에는 단의, 그 위에 흑장삼(黑長衫)을 입는다. 의물은 족자 1개, 죽간자 2개, 인인장 2개, 정절 8개, 그리고 용선, 봉선, 작선, 미선 각 2개와 개(蓋) 3개 등을 사용하여 당악정재의 웅장함을 강조한다.
○ 노랫말 수명명에서는 총 네 번 노래가 불린다. 죽간자가 춤을 추기 전에 진구호를 하고, 구호 뒤에 선모가 태종에 대한 치어를 노래한 후, 협무가 〈보호자령〉의 악절에 따라 염수족도 하면서 「수명명사」를 부른다. 「수명명사」의 처음과 끝은 태종에 대한 칭송이고, 중간은 태종의 실제 업적을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춤을 모두 마치면 죽간자가 퇴구호 한다.
| 원문 | 번역 | |
| [죽간자 진구호] | 翼翼小心, 誕受維新之命. 익익소심, 탄수유신지명. 洋洋盈耳, 欣聞克諧之音. 양양영이, 흔문극해지음. 宗社重熙, 臣民胥悅. 종사중희, 신민서열. |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받자온 유신(維新)하라는 명이 넘실넘실 귀에 가득 하니, 기쁜 마음으로 조화로운 소리를 듣나이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대대로 찬란히 이어지리니 신민(臣民)들 함께 기뻐합니다. |
| [치어] | 「선모치어」 太宗事大以禮, 天子錫明命, 從以印章冕服. 國之大夫士, 懽欣感激, 相與歌之也. 태종사대이례, 천자석명명, 종이인장면복, 국지인부사, 환흔감격, 상여가지야. | 「선모치어」 태종이 예를 갖추어 사대(事大)하자, 천자가 밝은 명을 내리고 이어 인장(印章)과 면복(冕服)을 하사하시어, 우리나라의 대부(大夫)와 사(士)가 기뻐하고 감격해 함께 노래하였습니다. |
| [창사] | 「창 수명명 (受明命) 사(詞) 일성」 亹亹我王, 德明敬止. 미미아왕, 덕명경지. 孝友施政, 令望不已. 효우시정, 영망불이. 翼翼乃心, 事大惟一. 익익내심, 사대유일. 奉錫聲敎, 漸于出日. 봉석성교, 점우출일. 帝錫明命, 金印斯煌. 제석명명, 금인사황. 又何錫之, 袞衣九章. 우하석지, 곤의구장. 王拜受命, 天子聖明. 왕배수명, 천자성명. 臣民相慶, 宗祀與榮. 신민상경, 종사여영. 於樂我王, 荷天之休. 오락아왕, 하천지휴. 體仁保民, 壽考千秋. 체인보민, 수고천추. 於樂我王, 如日之昇. 오락아왕, 여일지승. 貽謨克正, 萬世其承. 이모극정, 만세기승. | 「창 수명명 (受明命) 사(詞) 일성」 부지런하신 우리 임금, 덕이 밝고도 경건하시어, 효우(孝友)로 다스리시니 아름다운 명성 그지없네. 삼가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사대(事大)하니, 크나큰 풍성(風聲)과 교화가 해 뜨는 동쪽까지 이르렀네. 황제께서 밝은 명 내리시매, 금빛 인장(印章) 찬란하네. 또 무엇을 내리셨나? 구장(九章)의 곤룡포로다. 임금께서 절하고 명을 받으시니, 천자의 영명하시고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신민이 서로 경축하니, 종묘사직도 더불어 영광이네. 아, 즐거울사 우리 임금, 하늘(=황제)의 아름다운 덕에 힘입고서 인(仁)을 체득하사 백성을 보호하시니, 천년토록 수를 누리시리. 아, 즐거울사 우리 임금, 떠오르는 저 해와 같으시다. 후손에게 물려주신 올바른 법 만세토록 계승할지어다. |
| [죽간자 퇴구호] | 知我初服, 實是無疆之休. 지아초복, 실시무강지휴 畜君何尤, 迺爲相悅之樂. 축군하우, 내위상열지악. 禮儀卒度, 德音不忘. 예의졸도, 덕음불망. | 첫 정사를 어떻게 할지 알고 계시니, 실로 한없는 복이로다. 임금께 간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랴? 이것이 곧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는 음악이라, 예의가 모두 법도에 맞아 덕 있는 말을 잊지 않을 것이로다.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역사적 변천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연행 상황에 대한 사료가 발견되지 않아 20세기 초반에는 연행이 단절되었다. 현대에는 『악학궤범』을 토대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재현 안무로 복원되었으며, 1982년 10월 13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국립국악원 전통무용발표회를 통해 처음 공연되었다.
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