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수명명사」를 노래하며 추는 조선 초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
수명명은 1402년(태종 2) 하륜(河崙 1347~1416)이 태종의 치세를 칭송하며 지은 악장(樂章)을 기반으로 창제된 당악정재이다. 악장은 태종이 예로써 중국을 섬겨(事大), 천자(황제)로부터 인장(印章)과 면복(冕服) 등 왕위 인준의 상징물을 받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춤은 선모(仙母)를 중심으로 협무(挾舞) 여덟 명이 좌우대형과 회무(回舞)를 반복하는 회귀의 순환 구조로 연행되며, 조선 초기 태종의 왕위 계승 정당성과 왕권 강화를 위한 외교적 치적을 예찬하는 정치적 목적을 지닌다.
수명명의 기원은 1402년(태종 2) 6월 9일로, 영사평부사 하륜이 『태종실록』에 태종의 덕을 칭송하는 수명명과 근천정 악장 두 편을 지어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재(呈才)로 만들어진 직접적인 계기는 1411년(태종 11), 태종이 정도전이 지은 도참설(圖讖說) 관련 악장 대신 하륜이 지은 근천정과 수명명을 악장의 수장(首章, 첫 장)으로 삼으라고 명하면서부터이다. 이후 『태종실록』에는 수명명의 악장이 노래나 관현악곡으로 연주된 사례가 전한다. 수명명 정재가 실제로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은 1432년(세종 14) 5월 회례연 기록이다. 이때 무동들이 무고와 근천정을 함께 연행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수명명 역시 함께 연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개요
수명명(受明命)은 '명(明)나라의 명(命)을 받다'라는 뜻으로, 명나라 황제로부터 조선 왕위를 공식적으로 인준받은 태종의 치세를 핵심 주제로 한다. 작품 내용은 명 황제와의 관계를 통해 태종의 왕위 계승 정당성과 백성을 아끼는 군주로서의 실덕을 칭송하며 국가 안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절차와 구성
수명명은 당악정재의 형식을 따르며 도입부, 전개부, 종결부의 3단계로 진행되고, 집박 악사의 박(拍)을 신호로 전환되는 회귀의 순환 구조를 갖는다.
도입부는 봉족자(奉簇子) 1명과 봉죽간자(奉竹竿子) 2명의 입장이다. 죽간자가 진구호(進口號)를 노래하여 춤의 개장을 알린 후, 족자는 중앙에 남고 죽간자는 좌우로 갈라선다.
전개부에는 선모를 중심으로 협무 8명이 두 대(隊) 좌우대형을 이루며 춤을 춘다. 음악이 바뀌면 선모는 제자리에서 주선(周旋)하고 협무는 회선(回旋)하여 원을 돈다. 선모가 앞으로 나와 치어(致語)를 한 후, 선모와 협무가 염수족도(斂手足蹈)를 하며 「수명명사」를 합창한다. 창사 후 춤이 진행되면 협무는 상대무(相對舞)와 상배무(相背舞)를 추다가 전원 북쪽을 향해 춤춘다. 춤의 고조에 이르면 선모와 협무가 다시 원을 그려 회선하며 처음의 좌우대형으로 되돌아간다.
종결부는 죽간자가 나와 퇴구호(退口號)를 하고 족자와 함께 물러난다. 선모와 협무는 나아갔다가 물러나는 동작으로 춤을 마친다.
○ 연행적 특징
수명명은 선모 1명과 협무 8명이 대형 변화를 주도하며 두 대 좌우대형에서 시작하여 두 방향의 회무 대형을 두 차례 반복한 후 다시 처음의 대형으로 돌아오는 회귀성이 돋보인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주요 춤사위 명칭으로는 족도, 주선, 회선, 염수족도, 상대무, 상배무, 절화무(折花舞), 사수무(四手舞), 광수무(廣袖舞) 등이 있다.
수명명의 반주 음악은 모두 당악곡(唐樂曲)을 사용하며, 『악학궤범』에 전하는 진행 절차에 따라 악곡이 순차적으로 연주된다. 창사(唱詞) 부분에서는 기존 악곡에 「수명명사」를 붙여 노래하는 특징을 보인다. 김천흥 재현 수명명의 반주 음악은 회팔선인자, 보허자령, 최자령, 금잔자만 등의 당악곡을 사용하여 구성된다.
『악학궤범』 권4에는 수명명의 초입배열도(初入配列圖) 및 작대도(作隊圖)와 함께 술어(述語)를 기록하여 춤의 진행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악학궤범』에는 수명명의 무동관복(舞童冠服)과 여기복식(女妓服飾)이 도식(圖式)으로 전해진다. 무동(협무) 복식은 머리에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겉옷인 의(衣, 포)는 사(紗)나 라(羅)와 같은 비단으로 황·녹·자·남·도홍 등 오방색을 사용하며 발에는 화(靴)를 신는다. 가슴과 등에 흉배를 단다. 포 안에는 오방색 비단 중단을 입고 허리에 상(裳)을 갖춘다. 여기(선모) 복식은머리에 수화(首花), 잠(簪), 금채(金釵)를 장식하고 단혜아(段鞋兒)를 신는다. 복식은 백말군(白襪裙), 남적고리(藍赤古里) 위에 상(裳, 보로)을 입고 홍대를 맨 후 겉에는 단의, 그 위에 흑장삼(黑長衫)을 입는다. 의물은 족자 1개, 죽간자 2개, 인인장 2개, 정절 8개, 그리고 용선, 봉선, 작선, 미선 각 2개와 개(蓋) 3개 등을 사용하여 당악정재의 웅장함을 강조한다.
○ 노랫말 수명명에서는 총 네 번 노래가 불린다. 죽간자가 춤을 추기 전에 진구호를 하고, 구호 뒤에 선모가 태종에 대한 치어를 노래한 후, 협무가 〈보호자령〉의 악절에 따라 염수족도 하면서 「수명명사」를 부른다. 「수명명사」의 처음과 끝은 태종에 대한 칭송이고, 중간은 태종의 실제 업적을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춤을 모두 마치면 죽간자가 퇴구호 한다.
| 원문 | 번역 | |
| [죽간자 진구호] | 翼翼小心, 誕受維新之命. 익익소심, 탄수유신지명. 洋洋盈耳, 欣聞克諧之音. 양양영이, 흔문극해지음. 宗社重熙, 臣民胥悅. 종사중희, 신민서열. |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받자온 유신(維新)하라는 명이 넘실넘실 귀에 가득 하니, 기쁜 마음으로 조화로운 소리를 듣나이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대대로 찬란히 이어지리니 신민(臣民)들 함께 기뻐합니다. |
| [치어] | 「선모치어」 太宗事大以禮, 天子錫明命, 從以印章冕服. 國之大夫士, 懽欣感激, 相與歌之也. 태종사대이례, 천자석명명, 종이인장면복, 국지인부사, 환흔감격, 상여가지야. | 「선모치어」 태종이 예를 갖추어 사대(事大)하자, 천자가 밝은 명을 내리고 이어 인장(印章)과 면복(冕服)을 하사하시어, 우리나라의 대부(大夫)와 사(士)가 기뻐하고 감격해 함께 노래하였습니다. |
| [창사] | 「창 수명명 (受明命) 사(詞) 일성」 亹亹我王, 德明敬止. 미미아왕, 덕명경지. 孝友施政, 令望不已. 효우시정, 영망불이. 翼翼乃心, 事大惟一. 익익내심, 사대유일. 奉錫聲敎, 漸于出日. 봉석성교, 점우출일. 帝錫明命, 金印斯煌. 제석명명, 금인사황. 又何錫之, 袞衣九章. 우하석지, 곤의구장. 王拜受命, 天子聖明. 왕배수명, 천자성명. 臣民相慶, 宗祀與榮. 신민상경, 종사여영. 於樂我王, 荷天之休. 오락아왕, 하천지휴. 體仁保民, 壽考千秋. 체인보민, 수고천추. 於樂我王, 如日之昇. 오락아왕, 여일지승. 貽謨克正, 萬世其承. 이모극정, 만세기승. | 「창 수명명 (受明命) 사(詞) 일성」 부지런하신 우리 임금, 덕이 밝고도 경건하시어, 효우(孝友)로 다스리시니 아름다운 명성 그지없네. 삼가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사대(事大)하니, 크나큰 풍성(風聲)과 교화가 해 뜨는 동쪽까지 이르렀네. 황제께서 밝은 명 내리시매, 금빛 인장(印章) 찬란하네. 또 무엇을 내리셨나? 구장(九章)의 곤룡포로다. 임금께서 절하고 명을 받으시니, 천자의 영명하시고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신민이 서로 경축하니, 종묘사직도 더불어 영광이네. 아, 즐거울사 우리 임금, 하늘(=황제)의 아름다운 덕에 힘입고서 인(仁)을 체득하사 백성을 보호하시니, 천년토록 수를 누리시리. 아, 즐거울사 우리 임금, 떠오르는 저 해와 같으시다. 후손에게 물려주신 올바른 법 만세토록 계승할지어다. |
| [죽간자 퇴구호] | 知我初服, 實是無疆之休. 지아초복, 실시무강지휴 畜君何尤, 迺爲相悅之樂. 축군하우, 내위상열지악. 禮儀卒度, 德音不忘. 예의졸도, 덕음불망. | 첫 정사를 어떻게 할지 알고 계시니, 실로 한없는 복이로다. 임금께 간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랴? 이것이 곧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는 음악이라, 예의가 모두 법도에 맞아 덕 있는 말을 잊지 않을 것이로다.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역사적 변천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연행 상황에 대한 사료가 발견되지 않아 20세기 초반에는 연행이 단절되었다. 현대에는 『악학궤범』을 토대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재현 안무로 복원되었으며, 1982년 10월 13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국립국악원 전통무용발표회를 통해 처음 공연되었다.
수명명은 태종의 실덕을 명(明)과의 사대(事大) 관계 속에서 찾아 왕위 계승의 정당성과 왕권을 신료들에게 설득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재이다. 이는 조선 초기 예악사상이 실제 외교 및 통치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비록 후대로 내려오면서 수시로 변하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연행이 단절되었으나, 조선 초기 당악정재의 구성과 형식을 상세히 담고 있어 한국 무용사 및 악보 연구에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김종수, 「전통음악의 원류와 그 전개 ; 조선 초기 악장 연행양상 –수보록, 몽금척, 근천정,수명명-」, 『온지논총』18, 2008. 류창규, 「태종대 하륜의 악장 창작과 그 정치적 의미」, 『한국사학보』35, 2009. 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손선숙, 「조선초기 궁중정재의 대무, 배무검토」, 『무용역사기록학』34, 2014. 송방송. 「 조선왕조 건국초기의 정재사 연구」, 『음악과 현실』23, 2002.
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