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막무>의 유래는 '홍문연 고사'를 소재로 삼아 연행되던 <항장무(項莊舞)>와 관련이 있다.
『(무자)진작의궤』의 공막무 항목에 "항장이 칼춤을 추자 항백이 소매로 막으며 '공막(公莫)'이라 말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는 『당서(唐書)』 「악지」 등 중국 고문헌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공막무'는 항백의 말("공막")에서 유래했으며, 이후 한(漢)나라 사람들이 항백의 '소매(袖)'를 본떠 '수건(巾)'을 들고 춘 것에서 '건무(巾舞)'가 되었다고 한다. 즉, 민간에서 <항장무> 등으로 연행되던 '홍문연' 고사를 궁중의 격식에 맞게 재구성하면서, 『당서악지』 등의 고전을 근거로 '공막무' 또는 '건무'라는 공식적인 명칭과 '충(忠)'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28년 초연 시 춤을 춘 무동은 신광협(辛光協)과 김명풍(金命豐)이었다.

〇 구성과 동작
<공막무>는 창사(唱詞) 없이 춤으로만 구성되며,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무예 정신을 표현한다. 2인의 무동이 고운계(高雲髻)를 쓰고 전복을 입으며, 쌍검을 들고 마주 보고 춘다. 『(갑오)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기』에 따르면, 춤의 구성은 <검기무>와 거의 동일하다. 무동이 먼저 맨손 춤을 추다가, 꿇어앉아 칼을 어르는 '농검(弄劍)' 동작을 하고, 칼을 잡고 일어나 '연귀소(燕歸巢)', '연풍대(筵風擡)' 등 역동적인 춤사위를 펼친다. 다만, <검기무>는 악사가 춤 시작 전에 칼을 배치하지만, <공막무>는 무동이 맨손 춤을 추는 중간에 악사가 들어와 칼을 배치하는 차이가 있다.

〇 반주 음악
여성 춤인 <검기무>와 동일하게 <무령지곡(武寧之曲)>이라는 아명의 곡명으로 반주하였다. . 이는 두 춤이 '무(武)로써 평안(寧)을 기원한다'는 동일한 주제를 공유함을 보여준다. 실제 연주곡은 <향당교주(鄉唐交奏)>였다. 현행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재현했을 때의 반주음악은 〈타령〉-〈자진타령〉-〈타령〉-〈자진타령〉으로 구성되었다.
〇 복식, 의물, 무구
<공막무>를 추는 무동은 머리에 '고운계(高雲髻)'라는 높은 구름 모양의 관(冠)을 쓰고, 석죽화(패랭이꽃)가 그려진 '초록석죽화 전복(戰服)'을 입었다. 무구인 검기는 한쪽 날이 선 긴 칼에 털과 유소(流蘇, 장식 술)를 달아 장식했다. 또 『(무자)진작의궤』 의 「부편ㆍ공령」에는 <공막무> 무동의 복식으로 은속대(銀束帶; 은장식이 달린 허리띠)와 호화(胡靴; 검은 색 가죽으로 만든 신)가 부기되었다.





〇 역사적 변천
1828년(순조 28) 초연된 이후, 1894년(고종 31) 고종의 진연에서 김천만(金千萬)과 이만수(李萬壽) 무동에 의해 연행된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궁중 연향에서 전승이 끊겼으나, 2014년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의해 재현되어 연행되고 있다.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