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성 사선무의 전개는 국립국악원 소장 『(계사)정재무도홀기』에서 볼 수 있다.
우선 ① 꽃을 든 2인이 등장하여 춤춘 후, 4인이 등장하여 좌대와 우대로 나누어 선다. ② 좌무 우무 4인이 창사하고, 병창도 한다. ③ 좌대와 우대의 무용수가 대무(對舞)와 배무(背舞)를 하거나, 좌대와 우대가 각각 대무와 배무도 한다. ④ 회선하여 무원들이 제행일렬을 만들며 춤춘다. ⑤ 좌대와 우대가 동서로 서로 대를 바꾸고, 다시 원 위치로 바꾸기도 한다. ⑥ 팔수무를 추고 처음 대열로 만든다. ⑦ 대수(擡袖)하며 춤추고 물러나면 악이 그친다.
○ 창사 창사는 1829년 효명세자의 예제(睿製; 왕세자가 직접 지은 시)한 악장을 부른다. 그런데 창사가 한문과 국문이 섞여 있으므로 의궤에 기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국립국악원 소장 『(계사)정재무도홀기』에 사선무의 창사와 병창의 가사가 남아있다. 창사는 다음과 같다.
[원무 창사 편] 어와 성대(盛代)로다 해동금일성대(海東今日盛代)로다 나대(羅代)에 노든 사선(四仙)이 이졔 와 다시 노니 봉래(蓬萊)로 오시는가 영주(瀛洲)로 오시는가? 옥제(玉帝)게 명(命)을 바다 성주(聖主) 수(壽)를 빌냐 오대(鰲臺)로 좃차와셔 봉궐(鳳闕)에 조하니 북극(北極) 빗난 별을 옥작(玉爵)에 더으고져 태평(太平)으로 민 기상(氣象) 오날와 보단말가? 남산고한수장(南山高漢水長)이 황도(皇都)에 근본이니 천추만세(千秋萬歲) 이졔곰 무강(無疆)다. 경풍도국상서(慶豊圖國上瑞)를 다시곰 비옵노니 춘대옥촉(春臺玉燭)에 만물(萬物)이 소휘(蘇彙)로다. 동악(東岳)을 향(向)올가? 서악(西岳)을 향(向)올가? 남악(南岳)을 향(向)올가? 북악(北岳)을 향(向)올가? 중악(中岳) 놉흔 뫼이 삼각(三角)이 아니가? 만년진국(萬年鎭國)야 제업(帝業)을이 되시거다. 어와 우리들은 중악(中岳)에 노라옵자 삼각산(三角山) 상상봉(上上峯)에 서운(瑞雲)이 총울(葱鬱)니 금궐옥전(金闕玉殿)에 보좌(黼座)가 빛나셰라. 왕모부인(王母夫人) 청조(靑鳥)ㅣ 먼져 와 뎐 말이 천세반도(千歲蟠桃)을 마여 드리리라. 생소선악(笙簫仙樂)으로 헌천수(獻天壽) 노니 요지(瑤池)에 츄든 츔을 예와 다시 츄엇거다. 비노니 해옥주(海屋籌)에 만세(萬歲)를 더으고져 만세(萬歲)를 더은 후에 억만세(億萬歲) 더으고져 억만년(億萬年) 장춘(長春)으로 태평(太平)을 즐기놋다.
[원무 창사편 번역] 어와, 성대(盛代)로다. 해동(海東)의 오늘이 성대로다. 신라 때 놀던 사선(四仙)이 이제와 다시 노니 봉래(蓬萊)로 오시는가, 영주(瀛洲)로 오시는가. 옥황상제로부터 명(命)을 받아 성주(聖主)께 장수를 빌려고 오대(鰲臺)[신선이 사는 곳]로부터 찾아와 대궐에 문안을 여쭈니, 북극(北極)의 빛난 별을 옥(玉)술잔에 더하고저! 태평(太平)으로 꾸민 기상(氣象) 오늘 와서 본단 말인가? 남산 높고 한강물 긴 것이 황도(皇都, 서울)의 근본이니 천추만세(千秋萬歲) 이제 더욱 끝이 없다. 경풍도(慶豊圖)와 같은 나라의 상서로움 다시금 비옵나니 사람마다 장수하는 태평성대에 만물이 소생하네. 동악(東岳)을 향하올까? 서악(西岳)을 향하올까? 남악(南岳)을 향하올까? 북악(北岳)을 향하올까? 중악(中岳) 높은 산이 삼각산이 아니던가? 만년토록 나라를 안정시켜 제왕의 사업을 이루셨다. 어와 우리들은 중악(中岳)에서 놀아보자 삼각산 상상봉(上上峯)에 상서로운 구름이 빽빽하니 금 같고 옥 같은 대궐에 어좌가 빛나는구나. 왕모부인(王母夫人)[선녀인 서왕모]에게 청조(靑鳥)가 먼저 와 전하는 말이 천세반도(千歲蟠桃)를 장차 드리리라 생황과 단소[簫], 선악(仙樂)으로 헌천수(獻天壽) 노래하니 요지(瑤池)에서 추던 춤을 여기 와서 다시 추는도다. 비노니 해옥(海屋)[바다의 신선이 사는 곳]의 산가지에 만세(萬歲)를 더하고져! 만세(萬歲)를 더한 후에 억만세(億萬歲) 더하고져 억만년(億萬年) 한결같이 태평성세를 즐기노라.
[원무 병창 편] 산하일월(山河日月)에 옥력장(玉曆長)시니 보록영창(寶籙永昌)이소셔 극채휘영요준중(極彩耀暎堯樽中) 성수만년(聖壽萬年)이쇼셔
[원무 병창편 번역] 산처럼 강처럼 해처럼 달처럼 옥력(玉曆)[나라의 운수]이 길고 기니, 왕실의 미래 영원히 번창하시기를! 지극히 찬란한 빛이 요준(堯樽)[요임금이 내놓은 술동이]에 빛나니 성수(聖壽)는 만년을 누리소서.
- 원문 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 번역: 강명관
○ 반주 음악 반주곡의 아명은 〈선려지곡(仙呂之曲)〉이지만, 실제는 〈향당교주〉이다. 창사는 가곡(歌曲)의 〈 편(編)〉가락에 맞추어 부른다. 향당교주 후 춤 장단은 도드리, 잦은도드리, 타령, 잦은타령, 타령으로 이어진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1829년 진찬에서 무동은 복두(幞頭)를 쓰고, 남포(藍袍)·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에 홍야대(紅也帶)를 띠고 흑화(黑靴)를 신었다. 1901년 7월 진연에서 여성무용수는 화관을 쓰고, 녹초단삼(綠綃單衫)을 입고, 안에는 남색상(藍色裳), 겉에는 홍초상(紅綃裳)에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매고, 오채한삼(五彩汗衫)을 손에 끼고 초록혜(草綠鞋)를 신었다. 무구로는 연화(連花)를 든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1829년 기축 진찬 이후 1892년 임진 진찬, 1901년 신축 5월 진찬, 신축 7월 진연, 1902년 임인 4월 진연, 임인 11월 진연에서도 추었다. 사선무는 여성무용수인 기녀도 추었고, 무동(舞童)도 추었다. 일제강점기에 이왕직아악부에서는 연행하지 않았으나, 민간에서 활동한 기녀들이 사선무를 추었다. 1975년 이청자무용발표회에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사선무를 안무해서 공연했고, 1981년 김천흥이 주도한 국립국악원의 전통무용발표회에서 재현되었다. 현재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전승하고 있다.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