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구성과 전개 <검무>는 신라 화랑 황창랑의 고사에서 비롯된 호국(護國) 정신과 무예를 숭상하는 상무(尙武) 정신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정의감에서 우러나오는 기개(氣概)를 뜻하는 '협(俠)'이라는 미의식을 성취한 춤이다.
춤의 구성은 도입-전개-절정-결말로 이루어진다. 도입부에서는 전립을 갖춘 무용수가 등장하여 좌중에 절을 하고 손춤(한삼춤이 아님)을 춘다. 이어 무용수는 바닥에 놓인 검을 마주하고, 검을 잡을지 갈등하는 듯한 '농검(弄劍)' 동작을 한 뒤, 쌍검을 잡은 무용수는 상대와 교전(交戰)하는 듯한 대무(對舞)를 펼치고 '연풍대(筵風臺)' 동작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춤의 결말은 본래 칼을 던지는 동작[擲劒]으로 춤을 마무리하며 검기(劍氣)를 강조하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 과정은 생략되고 춤 동작들이 순화되었다. 춤사위의 가장 큰 특징은 좌우 대열이 마주 보거나, 등을 맞대거나, 자리를 교차하며 추는 대무(對舞) 형식이다. 주요 춤사위로는 칼을 잡을 듯 어르는 '농검(弄劍)' , 검무에만 있는 동작인 '왁대' (손목을 마주 붙이고 펴는 동작) , 무대를 한 바퀴 도는 '연풍대(筵風臺)' , 그리고 칼이 돌아가며 소리를 내는 '칼돌리기' 등이 있다.
○ 반주 음악 악기는 삼현육각 구성이며, 대풍류 음악이다. 장단은 타령-자진타령-타령-자진타령이 기본 구성이지만, 지역에 따라 도입과정에 염불-도드리장단이 첨가되기도 한다. 해주검무는 등장에서 만가락(자진모리)을 사용한다. 대개 지역 음악의 특색을 갖고 있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복식은 치마저고리에 전복(戰服)과 전립을 갖추면서 무인(武人)의 특성을 드러낸다. 쾌자를 입고 전대(戰帶, 가슴띠)를 매며, 병사들이 쓰는 벙거지인 전립(戰笠)을 쓴다. 조선후기에 검무 무용수 2인의 치마저고리 색깔이 각각 다른데, 신윤복이 그린 〈쌍검대무〉 의 왼쪽 기녀는 녹두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었고, 오른쪽 기녀는 청녹색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었다. 〈평양감사환영도〉 중 연광정이나 선화당의 검무 모습에서도 두 무용수 복식의 색이 다르다.
이는 검무에서 대결을 하는 2인의 특성을 보여주기 위해 색깔을 대비시킨 것이다. 그러나 현행 검무의 복식은 지역별로 색깔에 차이가 있지만, 각 검무에서 모두 같은 색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전립은 지역마다 다르게 깃털이나 술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한다.
〈검무〉의 무구를 검기(劍器) 또는 무검(舞劍)이라 한다. 검기는 검 손잡이와 칼 몸으로 구성되며, 한 손에 한 개씩 들고 춘다. 조선후기에 검기의 길이는 팔 길이였으나, 조선 말에 팔꿈치 길이로 짧아졌다. 검 손잡이 끝과 칼등에 나비 모양의 장식인 유소가 달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칼의 몸이 돌아가도록 손잡이와 칼 몸 사이가 개조되고 구름 모양의 쇠조각이 끼워졌으며, 칼은 더욱 좁고 짧아졌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민간의 교방에서 추어지던 검무가 1795년에 궁중연향에서 추어지게 되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수원 화성에서 열린 봉수당 진찬에서 〈검무〉가 처음으로 포함된 것이다. 이후 1829년부터 궁중에서 <검기무(劍器舞)>라는 명칭으로 추어졌다. 일제강점기에도 검무는 전국의 기생조합과 권번의 기생들이 반드시 추어야 할 종목이었다. 『매일신보』 「예단일백인」(1914) 연재 기사와 『조선미인보감』(1918)에서도 기생의 대표 종목이었으며, 〈검무〉 사진도 다량 촬영되었다.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