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사 <연화대>에서 창사는 죽간자와 동녀가 부른다. 죽간자는 춤을 추기 전에 진구호(進口號)를 부르는데, 진구호는 “좋은 날 연꽃에서 아주 기묘하고 아리따운 춤을 추어 보인다”라는 내용이다. 동녀의 창사는 “봉래(蓬萊)에서 내려와 연꽃 술로 환생(幻生)하여, 군왕의 덕화(德化)에 감격하여 가무로써 그 즐거움을 가져다주러 온 것입니다”라는 「미신사(微臣詞)」를 부른다. 춤을 마친 후 죽간자의 퇴구호(退口號) “춤을 마치고 봉래산으로 다시 돌아간다”라는 내용이다. 현재는 죽간자와 동녀 모두 첫소절만 부른다. [죽간자 구호] 綺席光華卜晝開(기석광화복주개) 좋은 날 가려 화려한 잔치 여니, 千般樂事一時來(천반낙사일시래) 온갖 즐거운 일 한꺼번에 몰려드네. 蓮房化出英英態(연방화출영영태) 연꽃에서 나온 곱디 고운 자태에 妙舞姸歌不世才(묘무연가불세재) 묘한 춤, 고운 노래는 세상에 없는 재주지요. [동녀 창사 : 미신사(微臣詞)] 住在蓬萊(주재봉래) 봉래산에서 살고 있다가 下生蓮蘂(하생연예) 세상에 내려와 연꽃에서 태어났지요. 有感君王之德化(유감군왕지덕화) 임금님의 덕화에 감동하여 來呈歌舞之懽娛(내정가무지환오) 노래와 춤으로 즐거움을 바치나이다. [죽간자 구호] 雅樂將終(아악장종) 청아한 음악 끝나려 하니, 拜辭華席(배사화석) 잔치자리에 절하며 하직인사 올리고 仙軺慾返(선초욕반) 신선 수레 돌려 떠나고자 遙指雲程(요지운정) 멀리 구름 사이 길을 가리킵니다.
-원문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 -번역: 강명관
○ 반주 음악 『악학궤범』에 따르면, 조선전기에는 〈전인자(前引子)〉ㆍ〈후인자(後引子)〉ㆍ〈중선회인자(衆仙會引子)〉ㆍ〈헌천수만(獻天壽慢)〉ㆍ〈반하무(班賀舞)〉로 구성하였다. 『정재무도홀기』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는 〈보허자(步虛子)〉와 〈향당교주(鄕唐交奏)〉에 맞춰 춤추었고, 현재는 〈보허자〉ㆍ〈도드리〉ㆍ〈타령〉을 연주한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연화대> 동녀의 복식은 홍라단의(紅羅丹衣)ㆍ홍라상(紅羅裳)ㆍ홍초말군(紅綃襪裙)을 입고, 금화홍라대(金花紅羅帶)를 띠고, 방울[금령]이 달린 합립(蛤笠)을 머리에 쓰고, 유소(流蘇)를 늘어뜨리고 황홍장미(黃紅薔薇)를 꽂는 것으로 『악학궤범』에 전한다. 현재 동녀는 연두색 단의ㆍ붉은 치마ㆍ옥색 한삼을 착용하고, 협무는 노란색 단의인 황초단삼(黃綃丹衫)을 입고 오색한삼을 착용하고, 악사는 비란삼(緋鸞衫)을 입고, 복두(幞頭)를 쓰고, 기량대(起粱帶)를 허리에 두르고, 흑피화(黑皮靴)를 신는다. 죽간자는 당악정재에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의물(儀物)로서 대나무로 만들고 붉을 칠을 한다. 두 사람이 죽간자를 잡고 무용수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어린 여자 아이가 들기도 한다. 무구는 머리에 쓰는 연화관으로, 이것을 합립(蛤笠)이라고도 불렀다. 합립은 송사 악지에서는 호모(胡帽)라 하였는데, 이것은 원산지(原産地)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반면 합립과 연화관은 모자의 형태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연화대>는 한국전쟁 후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김천흥(金千興, 1909~2007)과 이흥구(李興九, 1940~ )의 재현 안무로 무대화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때의 <연화대> 내용은 『정재무도홀기』를 참고삼아 무대화한 것으로 문헌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때의 <연화대> 내용은 『궁중무용무보』제8집에 전한다. 현재 악사는 두 명으로 변화되었고, 죽간자의 구호나 동녀의 창사는 첫 소절만 부른다. 춤 또한 도약무를 2005년 이전에는 좌우 손을 각각 위로 들어 휘두르며 돌면서 추는 춤과 왼쪽으로 도는 주선(周旋)을 추고, 전대[북쪽]에 선 동녀와 후대[남쪽]에 선 협무가 서로 좌우 어깨를 끼고 돌며 제자리로 돌아와 서는 환복기대이무(還復其隊而舞)를 추었다. 반면 2005년 이후로는 도약무를 좌우 무용수가 두 팔을 양옆으로 펴 드는 무작(舞作)을 하고 서로 마주보고 뛰어 제자리로 돌아와 서는 환복기대이무로 추었다.
손선숙(孫善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