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승무는 관아의 교방(敎坊) 기녀들이 잔치 때 공연한 춤의 하나였다. 승무는 승려의 복식을 차려입은 중이 본분을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것을 풍자한 춤이므로, 중춤이라고도 했다. 중춤이라는 명칭은 김인겸(金仁謙, 1707~1772)의 『일동장유가』(1763)에 처음 등장하며, 2인무였다. 1848년 이유준(李有駿, 1801~1867)이 의주 관아 진변헌(鎭邊軒)에서 관람한 승무는 네 명의 기녀가 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의 『교방가요(敎坊歌謠)』(1872)에도 승무가 수록되어 있는데, 다섯 명이 배역을 나누어 맡아 연행하는 희극 성격의 춤이었다. 이러한 승무가 현재는 한량무로 불리며, 한량의 배역에 초점을 맞춘 명칭으로 바뀌었다. 극형식의 한량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1979)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2014)로 등록되었다.
조선시대 승무는 지방 교방을 중심으로 전승되다가 1906년과 1913년의 고종탄신 축하연에서는 기녀가 어전에서 공연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 권번 기녀에 의해 승무는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했고, 1930년대에는 신무용(모던댄스)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무대 공연 형식의 새로운 예술춤이 되었다.
특히 1938년 ‘조선무용음악연구회’의 고전무용대회에서 한성준의 연출로 기녀 출신 이강선(李剛仙)이 부민관에서 공연한 승무[바라무]는 현대 승무의 전형이 되었다. 이 춤은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韓英淑, 1920~1989)과 제자 강선영(姜善泳, 1925~2016), 김천흥(金千興, 1909~2007) 등 여러 유명 무용가에게 전수되었고,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유준이 관람한 승무에서 중의 겉모습은 머리로부터 백납과 가사를 착용하고 어깨에는 백팔염주를 걸치고 손에는 석장을 지녔다‘고 되어 있다. 백납은 흰색 납의(衲衣; 승려가 있는 옷)를 말하는데, ’영락없이 태백산 속에 사는 한 도승의 모습‘이라고 묘사하였고, 『교방가요』의 승무 그림에 묘사된 승려의 복식도 흰색인 점으로 볼 때 이 복식은 조선 후기 승려의 일반적인 복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사의 색은 명시되지 않았으나, 고대본 『교방가요』 승무 화보에는 노승이 홍색 가사를 착용한 모습이다. 기녀는 붉은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었고, 풍류랑은 갓을 쓰고 두루마기 위에 청색 쾌자를 입고 한삼을 낀 모습이다.
현재 소매 길이가 긴 승무의 장삼은 흰색, 옥색, 검정색, 회색 중 선택하여 입는다. 고깔은 대개 흰색으로 만드는데, 이매방과 조갑녀는 고깔의 안감과 겉감 사이에 글자나 꽃무늬를 삽입하여 멋을 내었다. 장삼 위에는 오른쪽 어깨에 홍색가사를 걸쳐 왼쪽 아래로 드리워서 매듭을 묶는다. 남성무용수는 장삼 안에 흰색 혹은 옥색 바지저고리를 입는다. 여자의 경우, 한영숙류는 남색 치마에 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이매방류는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법고를 위한 북과 북틀이 필요하며, 무용수의 양손에 잡은 북채는 북을 두드릴 때와 장 삼을 흩뿌리고 감는 장삼 놀음을 할 때 사용된다.
이종숙(李鍾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