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 절차는 <포구락>과 유사하다. 도입부는 ①악사가 기(妓) 두 명을 인솔하고 나와 보상반을 놓고 나가면 무용수 여섯 명이 좌·우 3대로 나누어 나와 창사를 부른다. ②악사가 채구를 좌·우에 놓고 나간다. 진행부는 ①1대 나와 꿇어앉아 채구를 어르다 잡고 일어나 창사를 부른다. ②서로 마주 보고 무진·무퇴하며 춤추다 왼쪽의 좌대((左隊)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 채구를 던져 들어가면 그 대는 다 같이 엎드렸다 일어나서 춤을 추고, 악사가 나와 머리에 꽃을 꽂아준다. ③채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바로 손을 모으고 서고, 악사가 볼에 먹점[묵점(墨點)]을 찍어준다. ④1대가 춤추며 물러나 3대의 뒤에 서고 2대와 3대가 차례대로 나와 앞의 절차와 같이한다. 종결부는 각 대열의 여섯 무용수가 모두 춤추며 무진·무퇴하면 음악이 그친다. 『정재무도홀기』에는 채구가 들어가면 머리에 꽃을 꽂아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는 무용수에게 직접 꽃을 주는 것으로 전승되고 있다.
〇 창사 보상무의 창사는 궁중의 성스러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성대한 연향과 채구 놀이의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묘사했으며, 왕실을 신선의 세계와 같은 이상향으로 형상화한다. 1828년 초연에는 효명세자가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의 가사를 좌·우 각대가 동일한 가사를 불렀으나, 1829년에는 좌·우대가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고 전원이 함께 부르는 창사가 추가되어 전체 창사 수가 두 배로 증가하였다. 새로 지어진 창사는 그해 연향에만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1828년의 가사가 전승되어 고종대(高宗代)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기 창사](전원) 翠幕華筵耀瑞日, 綺羅三隊好新粧. 취막화연요서일, 기라삼대호신장. 비취 장막 화려한 자리에 상서로운 해 비치고, 비단옷 입은 3대(隊)가 곱게 새 단장했네. [일대 창사] 五雲樓閣聞仙樂, 百寶欄干拂霓裳. 오운누각문선악, 백보난간불예상. 오색구름 속 누각에 신선의 음악 들리는데, 온갖 보화 꾸민 난간에 무지개 옷 스치네. [이대 창사] 錦帳初開彩袖色, 玉簾且犈繡毬香. 금장초개채수색, 옥렴차권수구향. 비단 장막 열리니 채색 소매 선명하고, 옥 주렴 걷자 비단 채구((彩毬, 오색 비단으로 묶은 공) 향기롭네. [삼대 창사] 花間簫鼓莫催曲, 只恐花身落舞場. 화간소고막최곡, 지공화신낙무장. 꽃밭에서 퉁소와 북으로 음악을 재촉 마오, 꽃봉오리 춤추는 자리에 떨어질까 저어하네.
- 원문출처: 『순조무자진작의궤』(1828)
〇 춤사위 보상무는 <포구락>의 절차에서 포구문 대신 보상반을 사용한 점이 다르고 내용은 거의 흡사하다. 대표적인 춤사위는 채구를 잡기 전에 꿇어앉아 ‘채구를 어른다’는 동작인 농구(弄毬)이며 이외의 동작은 자세한 춤사위보다는 무진·무퇴 등 공간이동이나 동작을 지시하는 용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왼손은 등에 대고 오른손은 공을 잡는다[좌우배우수집구(左手背右手執毬)]”, “즐겁게 어르다 공을 반의 중앙에 던진다[환농반중(歡弄盤中)]” 등의 표현이 사용된다. ○ 반주음악 반주음악은 〈향당교주(鄕唐交奏)〉이다. 현재는 삼현육각 편성으로 장구1·좌고1·대금1·피리2·해금1이며, 장단은 〈도드리〉·〈자진도드리〉·〈타령〉·〈자진타령〉을 연주한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초연시 무동은 아광모(砑光帽)를 쓰고, 벽라포(碧羅袍, 푸른색 도포)·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線中單衣, 흰색바탕에 흑색 선을 두른 중단의)·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 홍색 바탕의 남색선을 두른 치마)·학정대(鶴頂帶)·무우리(無憂履)를 착용하였다. 1829년에는 복두(幞頭)를 쓰고 남포(藍袍), 백질흑선중단의·홍야대(紅也帶)·흑화(黑靴)로 변화하였다.
여령의 복식은 일반 궁중 여령복식과 같으며, 화관(花冠)을 쓰고, 겉옷으로 초록단의(草綠丹衣)와 황초단삼(黃綃單衫)을 착용하였다. 안에는 남색 치마를, 겉에는 홍색 치마를 입고, 가슴에는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 홍색 바탕에 금실로 수놓은 가슴띠)를 둘렀다. 또한 손목에는 오색한삼(五色汗衫)을 끼고 초록혜(草綠鞋)를 착용하였다.
무구로는 보상반과 채구(공), 봉화의 꽃가지와 봉필의 묵필(墨筆)이 사용된다. 보상반은 육각이나 팔각으로 만들어진 상(床)으로, 중앙에 연꽃이 그려진 항아리를 올려 장식한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보상무는 20세기 초에는 이왕직아악부에 의해 1923년 순종 탄신 50주년 축하연과 1930년 영친왕 환국 축하연에서 공연되었다. 1981년 국립국악원에서 재현된 보상무는 『정재무도홀기』 와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 재직 시 학습한 전승 내용을 바탕으로 안무되었다. 1대와 3대는 『정재무도홀기』의 기록대로 춤추었고, 2대는 공을 잡고 일어나 무퇴하여 보상반을 등지며 반(盤)을 끼고 돌아[回舞] 원래 자리로 돌아와 공을 던지는 내용으로 이왕직아악부의 보상무 구성으로 안무되었다.
최경자(崔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