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에서는 죽간자가 나아가 구호(口號) 후 물러나면 무용수들이 입장하여 춤추며 노래한다. 전개부에서는 각 시대별로 변모하였다. ① 고려시대에는 16명이 4대로 나뉘어 각 대가 회무(回舞)를 세 바퀴 돈 뒤 하여 줄지어 선다. 각 대의 선두가 마주 보거나 등을 돌려(相對·相背) 춤추며,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땅을 짚는 동작이 이어진다. 이후 다른 대가 차례로 같은 춤을 반복하고 끝나면 각 대 네 명이 제자리에서 상대·상배하며 춤춘다. ② 조선 전기에는 협무 8명이 좌·우대로 나누어 마주 보며 회무를 세 바퀴 돌아 사방작대(四方作隊)를 이룬다. 북대(北隊)의 두 명이 상대(相對)·상배(相背)하며 춤추고, 나머지 다른 대도 순차적으로 이를 반복하고 전·후대는 북향무-환대이무(換隊而舞)-배무(排舞)하며 춤춘다. ③ 조선 후기에는 사방대형을 유지하되, 각 대가 순차적으로 춤을 추던 춤을 생략하고 모든 협무가 동시에 동일한 춤을 추는 방식으로 단일화되었다. 또한 동·서, 남·북 대가 서로 자리를 바꾸며 춤추는 환대이무와 회선(回旋)하여 처음 자리(初列:초열)에 서서 북향무-환대이무-배무로 춤춘다. 종결부에서는 죽간자가 퇴구호 후 물러나면, 협무가 마무리 춤을 춘 뒤 퇴장한다.
〇 창사 수연장의 창사는 죽간자의 진구호와 퇴구호, 협무의 「동운영채색사(彤雲映彩色詞)」와 「청춘옥전사(靑春玉殿詞)」 등으로 이루어진다. 죽간자는 상서로운 궁전에서 이원(梨園) 악부가 연주한다는 내용을, 협무는 천년의 왕통과 만년의 태평을 축원하고, 신선의 술인 유하주(流霞酒)가 금잔에 가득 차 임금의 덕으로 태평성대를 이루기를 염원하는 노래한다. 창사는 직접적으로 군왕의 장수를 기원하기보다 상서로운 흥취에 중점을 둔다. 연향의 성격에 따라 무동정재에서는 죽간자의 구호를 생략하기도 하며, 현행 공연에서는 상황에 따라 창사의 일부만을 부르거나 생략하기도 한다. [죽간자 진구호] 流虹耀殿布禎祥, 瑞氣雲霞暎聖光. 유홍요전포정상, 서기운하영성광. 萬方歸順來拱手, 梨園樂部奏中腔 만방귀순래공수, 이원악부주중강. 무지개처럼 흘러내린 별들 궁전 위에 반짝여 길조를 널리 알리고 서기 가득한 구름과 노을 거룩한 빛을 비추나이다. 만방에서 찾아와 두 손 모아 축하하고, 이원(梨園) 악부(樂部)가 중강(中腔)을 연주하나이다. 「미전사(尾前詞)」 - 동운영채색사(彤雲映彩色詞) 彤雲暎彩色相映, 御座中天簇簪纓. 동운영채색상영, 어좌중천족잠영. 萬花鋪錦滿高庭, 慶敞需宴歡聲. 만화포금만고정, 경창수연환성. 붉은 구름, 밝고도 고운 빛깔 서로 섞였는데, 하늘 복판 어좌를 마련하자 높은 벼슬아치가 몰려드네. 온갖 꽃 비단 펼친 듯 높은 뜨락에 가득한데 경사로 차린 큰 잔치상에 환호성 드높구나. 「미후사(尾後詞)」 天齡啓統樂功成, 同意賀元珪豊擎. 천령계통낙공성, 동의하원규풍경. 寶觴頻擧俠羣英, 萬萬載樂昇平 보상빈거협군영, 만만재낙승평. 천 년 왕통을 여시어 공을 이루신 것 기뻐하며 한마음으로 새해를 하례하며 규풍(珪豊, 옥으로 만든 술잔받침)을 받들어 올리니, 호협(豪俠)한 뭇 호걸들은 술잔을 자주 들어 만만년 이 태평시절을 즐기리라. 「청춘옥전사(靑春玉殿司)」 靑春玉殿和風細, 奏簫韶絶繹. 청춘옥전화풍세, 주소소절역. 瑞遶行雲飄飄曳, 泛金樽流霞艶溢. 서요행운표요예, 범금준유하염일. 瑞日暉暉臨丹扆, 廣布聖德震遐邇. 서일휘휘임단의, 광포성덕진하이. 願聽歌聲舞綴, 萬萬年仰瞻宴啓. 원청가성무철, 푸르른 봄날 옥 궁전에 따스한 바람 솔솔 불고 통소 소리 끊길 듯 이어지네. 상서로운 고운 구름 바람결에 떠가고 유하주(流霞酒)는 금 술잔에 남실남실 하는구나. 상서로운 해는 반짝반짝 단의(丹扆, 왕이 치는 병풍)를 비추고, 널리 펴신 성덕(聖德)은 천지사방을 울리네. 노랫소리 춤사위를 듣고 보기 원하옵고 만만년 뒤에도 이런 잔치 열리면 우러러 보겠나이다. [죽간자 퇴구호] 太平時節好風光, 玉殿深深日正長. 태평시절호풍광, 옥전심심일정장. 花雜壽香薰綺席, 天將美祿泛金觴. 화잡수향훈기석, 천장미록범금상. 시절이 태평하니 풍광도 좋을시고 깊고 깊은 옥 궁전에 하루 해 정말 기네. 꽃은 만수향(萬壽香)[사람을 장수하게 하는 향] 섞은 듯 연회석에 향기롭고 하늘은 미록(美祿)[술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복록(福祿)]을 금 술잔에 찰랑찰랑 따
- 원문 출처: 『악학궤범』 권5. <수연장>
〇 춤사위 수연장의 핵심은 전개부의 회무(回舞)에 있으며, 시대에 따라 그 구성이 점차 발전하였다. 고려에서는 다수의 무용수가 참여하였으나 대체로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구성이었고, 조선 전기에는 인원수가 축소되고 사방작대와 전·후대의 환대 구성이 추가되어 공간적 입체감이 강화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반복적 구성이 생략되고, 무용수 전원이 동시에 춤추는 형식으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수연장이 단순한 축수의례를 넘어, 정재의 공간적 구성과 무대미학이 발전해 간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 전기 『악학궤범』에는 수연장의 세부적인 춤사위가 기록되어 있다. 절화무(折花舞)·팔수무(八手舞)·사수무(四手舞)·금척무(金尺舞)·파자무(破子舞)·협수무(挾手舞)·퇴수무(退手舞) 등이 대표적이다. 절화무는 꽃을 꺾는 듯한 손동작이고, 팔수무와 사수무는 손을 여러 방향으로 펴거나 접는 동작이다. 반면 금척무·파자무·협수무·퇴수무 등은 구체적인 동작이 전하지 않아 형태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후기 『정재무도홀기』에는 수수이무(垂手而舞)·거수상대이무(擧手相對而舞)·상배이무(相背而舞)·북향이무(北向而舞)·환대이무(換隊而舞)·팔수무(八手舞) 등 구체적 동작이 기록되었다. 특히 회무를 통해 대형의 변화를 주는데, 좌대(左隊)는 서쪽을 향해 안쪽으로, 우대(右隊)는 동쪽을 향해 바깥으로 돌며 사방의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회전은 질서·조화·순환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핵심적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〇 반주음악 고려시대에는 〈연대청인자〉·〈중강령〉·〈파자령〉을 쓰고, 조선 전기에는 〈연대청인자〉·〈중강급박〉·〈중강령청평악〉을 연주했다. 조선 후기에는 〈보허자령〉·〈중강령〉·〈향당교주〉의 음악을 연주하여 당악과 향악의 음악을 같이 연주하였다. 현재는 〈보허자〉· 〈도드리〉·〈타령〉·〈자진타령〉 등을 연주한다. 〇 복식·무구·의물 수연장의 복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검은색 삼[皂衫]을 입었다. 조선시대에는 수연장 복식에 대한 별도의 기록은 없고, 1828년(순조 28)의 자경전 진작에서만 네 사람의 무동의 복식이 전하는데 두 명은 <향발무> 복식을 입고 한 명은 〈광수무〉 복식, 한 명은 〈아박무〉 복식으로 네 명이 서로 다르게 착용하었다. <향발무〉 복식은 남색단령(藍色團領)·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이고, 〈광수무〉 복식은 부용관(芙蓉冠)·녹단령(綠團領)·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을·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裳)·두석녹정대(豆錫綠鞓帶)·화화흑화자(畵花黑靴子)이다. 〈아박무〉 복식은 흑단령(黑團領)·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이다. 현재는 조선 후기 여기의 기본 복식인 화관·초록단의·황초단삼에 안에는 남치마와 겉에는 홍치마를 입고, 홍단금루수대·오색한삼·초록혜를 착용한다. 수연장은 당악정재임에도 의물의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고려사』「악지」의 홀기에 “무대, 악관 및 여기의 의관과 행차는 앞(〈헌선도〉)의 의례와 같다”고 하여 의물의 배열이 〈헌선도〉의 경우처럼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와 수연장의 무용수 열여섯 명이 <진선(眞仙; 신선에 해당하는 인물의 역할)>이 아니라 단지 이원악부의 기녀이기 때문에 의물의 배열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〇 역사적 변천 및 전승 수연장은 20세기 초 이왕직아악부로 전승되어 1923년 순종 탄신 오순 경축연에서 이왕직아악부 무동에 의해 공연되었다. 1977년 국립국악원 춘계정기발표회에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에 의하여 재현되었고, 이후 『고려사』 「악지」·『악학궤범』·『정재무도홀기』와 192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정재를 기록한 성경린(成慶麟, 1911~2008) 소장의 『무의(舞儀)』를 근거로 재현하여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최경자(崔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