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수오방무(垂楊手五方舞)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팔을 휘두르며 오방(五方)에서 춤을 춘다’는 뜻이다.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처용무〉의 수양수오방무는 5자 처용이 오방대형에 서서 무대 가운데 황 처용이 북쪽에 선 흑처용, 동쪽에 선 청처용, 남쪽에 선 홍처용, 서쪽에 선 백 처용과 차례로 마주보고 추는 춤이다.
『악학궤범』에는 〈처용무〉에서 수양수오방무를 출 때 여러 규칙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궁중정재의 기본법례에 따라 추어지는 동작으로 5인의 무용수가 선 위치별로 드는 손 위치가 다르다. 무대 가운데 황 처용은 오른손을 먼저 들고, 나머지 흑처용ㆍ청처용ㆍ홍처용ㆍ백처용은 왼손을 먼저 든다.
1930년 영친왕(英親王) 내외가 한국에 잠시 귀국한 것을 기념한 환영식에서 〈처용무〉를 선보였고, 1931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궁중정재를 조선무악이라는 흑백 무성영화로 기록하였는데, 이 영상에서 〈처용무〉의 동작인 수양수오방무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추어지는 수양수오방무 춤동작은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처용무〉를 재현할 때 안무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이 내용이 『궁중무용무보』제1집에 전한다. 〈처용무〉에서는 수양수오방무를 두 가지 동작으로 춘다. 또한 공연의 성격에 따라 무용 구성을 달리하여 오방대형에 선 4자 처용이 무대 중앙의 황 처용과 차례로 대무하기도 하고, 5자 처용이 동시에 추기도 한다.
현재 추어지는 수양수오방무①은 도드리 장단에 맞춰 오른발을 앞으로 힘차게 딛으며 주먹 쥔 오른팔을 위로 치켜들고, 왼발을 앞으로 힘차게 딛으며 주먹 쥔 왼팔을 위로 치켜들고[1장단], 다시 오른발을 앞으로 힘차게 딛으며 주먹 쥔 오른팔을 위로 치켜들고, 양손을 둥글게 휘둘렀다가 오른 소매를 위로 뿌려 머리 위로 들면서 등을 돌린다[1장단]. 오른발을 앞으로 딛으며 오른 소매를 위로 뿌려 오른쪽 허리에 대고, 이어 왼 소매를 위로 뿌려 왼 허리에 갖다 대며 몸을 돌려 황 처용을 바라본다[1장단].
수양수오방무②는 도드리장단에 맞춰, 양팔을 좌우로 휘둘러 감으며 오른팔과 왼팔을 차례로 사선 앞으로 힘차게 뿌리고, 이어 양팔을 나란히 모아 좌우 사선 앞으로 힘차게 뿌리고, 다시 양팔을 나란히 앞으로 뿌린 다음 둥글게 휘둘러 허리로 모은다.
○ 반주 음악 <처용무>에서 추어지는 무릎디피무의 반주음악은 조선전기에는 봉황음(鳳凰吟) 중기(中畿)에 춘 것으로 『악학궤범』에 기록되었고, 조선후기에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 추어진 것이 『정재무도홀기』에 전한다. 현재 추어지는 〈처용무〉는 수양수오방무를 도드리장단에 춘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처용무〉는 모란꽃과 복숭아 열매와 나뭇가지가 달린 가면 [사모(紗帽)]를 쓰고, 방슬(方膝)에 녹단(綠段)으로 두른 홍단(紅段)ㆍ흑단(黑段)을 무릎에 댄 군(裙)을 입고, 상(裳: 치마)을 허리에 두른다. 소매가 긴 한삼이 달린 의(衣)와 앞자락은 짧고 뒷자락이 긴 청색ㆍ홍색ㆍ흑색ㆍ백색ㆍ황색 단의(段衣)를 입고, 천의(天衣)를 어깨에 두르고, 대(帶)를 허리에 두르고 가죽으로 만든 신발[혜(鞋)]을 신는다.
손선숙(孫善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