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 정재에서 북을 등지고 둥글게 돌며 북을 치는 춤동작
배고회선은 <무고> 정재에서 추는 춤동작이다. 조선후기 궁중춤이 기록된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그 명칭이 보인다. 배고회선 동작의 구체적인 내용은 순조 『(무자)진작의궤』(1828)ㆍ 고종 『(신축)진찬의궤』(1901)ㆍ고종 『(임인)진연의궤』(1902)를 비롯한 여러 의궤의 정재도에서 확인된다. 무고는 고려시대부터 궁중에서 추어진 춤으로, 북을 치며 춤추는 내용을 고려시대 『고려사』「악지」에는 “북채로 북을 친다”[퇴격고(槌擊鼓)]로, 조선전기 『악학궤범』에는 요고이무(繞鼓而舞) 혹은 격고(擊鼓)로, 조선후기 『정재무도홀기』에는 “배고회선”으로 기록하였다.
배고회선(背鼓回旋)은 ‘북을 등지고 돌면서 북을 치는 춤’이라는 뜻이다.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무고의 배고회선은 원무(元舞) 4인이 북채를 집어 들고 북의 사방(四方)에 서서 추는데, 북을 칠 때의 방향을 신체의 등[배(背)]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북을 등지고 북을 치며 둥글게 도는 방향을 조선전기에는 좌선[동쪽]으로 제시하였으나, 고려시대와 조선후기에는 도는 방향이 제시되지 않았다.
근대 이후 1930년 영친왕(英親王) 내외가 한국에 잠시 귀국한 것을 기념한 환영식에서 〈무고〉를 선보였고, 1931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궁중정재를 조선무악이라는 흑백 무성영화로 기록하였는데, 이 영상에서 〈무고〉의 동작인 배고회선을 볼 수 있다.
현재 추어지는 배고회선 춤동작은 한국전쟁 후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1980년대에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2000년 이후 이흥구(李興九, 1940~ )가 〈무고〉를 재현할 때 안무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김천흥이 안무한 배고회선은 『궁중무용무보제3집』에 전한다.
그리고 조선후기 <무고>의 무용수는 원무(元舞)와 협무(挾舞)로 구성되는데, 배고회선은 원무가 춘다. 현대에는 협무가 꽃을 들고 추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촬영한 조선무악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정재무도홀기』의 무고에는 협무가 꽃을 잡지 않는데, 이는 원행 『(을묘)정리의궤』(1797)․고종 정해 『진찬의궤』(1890)․고종 신축 『진연의궤』(1901) 등 여러 의궤의 정재도에서 확인된다.
현재 추어지는 무고의 배고회선은 공연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장단과 춤동작은 구성하여 춘다. 배고회선은 재현되면서 춤동작 내용이 다양하게 변화되었고, 2000년 이후 이흥구에 의해 재현된 무고의 배고회선은 타령과 자진타령에 맞춰 4가지 춤동작을 차례로 춘다.
배고회선 ①은 타령장단에 맞춰 북의 북쪽에서 북을 등지고 서서 오른손으로 북을 치고 몸을 돌려 북을 등지고, 양손을 위로 들어 둥글게 말아 돌리며 아래로 내리고[1장단], 북을 등지고 서서 왼손으로 북을 치고 몸을 돌려 양손을 위로 들어 둥글게 말아 돌리며 영상 관점에서 오른쪽으로[우선] 이동한다.[1장단] 같은 동작을 4회 반복하는데, 북의 4면을[북쪽-서쪽-남쪽-동쪽] 이동하며 춘다.
배고회선 ②는 타령장단에 맞춰 북을 등지고 서서 제자리에서 양팔을 가슴 위치로 올린 체 오른손ㆍ왼손으로 북을 치고, 양팔을 위로 들어 둥글게 말아 돌리며 뒷걸음치면서 영상 관점에서 오른쪽으로[우선] 이동한다[1장단]. 같은 동작을 4회 반복하는데, 북의 4면을[북쪽-서쪽-남쪽-동쪽] 이동하며 춘다.
배고회선 ③은 자진타령에 맞춰 제자리에서 북을 등지고 서서 양팔을 가슴위치로 올린 체 오른손ㆍ왼손ㆍ오른손ㆍ왼손으로 북을 4회 치고[2장단], 양팔을 위로 들고 오른손ㆍ왼손ㆍ오른손ㆍ왼손으로 북을 4회치고[2장단], 북을 바라보고 양손으로 면-변-면을 각각 친다[2장단].
배고회선 ④는 자진타령에 맞춰 양팔을 가슴위치로 올린 체 영상관점에서 오른쪽[우선]으로 2박1보로 이동하면서 북을 등지고 오른손ㆍ왼손 순으로 북을 치고[1장단], 이어 양팔을 위로 들고 영상관점에서 오른쪽[우선]으로 2박1보로 이동하면서 북을 등지고 오른손ㆍ왼손치고[1장단], 이어 북을 바라보고 면-변-면을 각각 친다[2장단]. 같은 동작을 2회 반복한다.
반주 음악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무고>의 배고회선 음악은 향당교주(鄕唐交奏)이다. 현재 무고의 배고회선은 공연의 성격에 따라 향당교주ㆍ도드리ㆍ자진도드리ㆍ타령ㆍ자진타령 등 다양한 장단을 구성하여 춘다.
복식ㆍ의물ㆍ무구 무구로는 북[鼓]과 북채[槌]를 사용한다. 한삼을 착용하는데, 조선후기 의궤 정재도 기록에 의하면 북채가 한삼 밖으로 나온 것이 확인된다.
『시용무보 정재무도홀기 (時用舞譜(全)呈才舞圖笏記)』, 국립국악원, 1989.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건원1400년 개원50년 국립국악원사』, 국립국악원, 2001. 『궁중무용무보제3집』, 국립국악원, 손선숙, 『궁중정재용어연구』, 민속원, 2008. 손선숙, 『조선왕조 의궤 정재도의 무용기록』, 역락, 2019. 이혜구 역주,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김영희, 「이왕직아악부의 궁중무 전승」 , 『무용역사기록학』 42, 2016. 위송이, 「심소 김천흥의 궁중무용 복원양상: <무고(舞鼓)>ㆍ<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를 중심으로」, 『무용역사기록학』 47, 2017. 국립국악원 아카이브(https://archive.gugak.go.kr)
손선숙(孫善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