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앵전 연행 시 착용하는 여령의 표의(表衣)이다. 『(무자)진작의궤』에 무동의 춘앵전 복식이 아견모(砑絹帽)ㆍ백질흑선착수의(白質黑縇穿袖衣)ㆍ옥색질흑선상(玉色質黑縇裳)ㆍ녹사괘자(綠紗掛子)ㆍ홍한삼(紅汗衫)ㆍ오사대ㆍ호화(胡靴)로 기록되어 있다. 순조 29년(1829) 순조의 즉위 30주년과 보령 40세(40세 되던 해)를 기념해 열린 진찬 때에는 춘앵전을 여령이 연행 하였다. 『(기축)진찬의궤』의 기록에 의하면 여령의 춘앵전 복식은 화관(花冠), 황초삼(黃綃衫), 홍초상(紅綃裳), 초록하피(草綠霞帔),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 오색한삼(五彩汗衫), 홍금수구(紅錦繡韝), 초록혜(草綠鞋)로 구성된다. 1923년 5월14일 기자협회의 기자대회 축하 행사에서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와 춘앵전이 공연되었는데 당시 기사에 따르면 무용 천재인 16세의 이병우(李炳祐, 1908~1871)가 추는 춘앵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병우는 후에 당시에 부용관을 쓰고 단령과 각대를 착용하고 녹수화(綠繡靴)를 신었다고 회고 했다. 당시 기사(동아일보, 1923. 5. 15)의 사진을 보면 이병호의 회고대로 부용관과 각색 단령을 착용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병우의 회고에 따르면 이 공연에서 장생보연지무의 복식을 착용하고 그대로 춘앵전을 연행 했고 춘앵전의 복식을 위와 같이 기억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에는 궁중 정재가 체계적으로 기록되거나 전승되지는 못했을 것이고 구전(口傳)으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무동의 단령이 춘앵전의 복식으로 기억되고 유생복의 앵삼과 혼동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춤 이름에 들어가는 꾀꼬리 ‘앵’자와 같은 이름의 유생복인 앵삼 역시 복색(服色)에서 연유한 꾀꼬리 ‘앵’자를 사용한 점 등이 혼합되어 춘앵전 앵삼이 여령 황초삼의 또 다른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미 무동의 춘앵전 복식이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자 용수가 여령의 복식을 혼합하여 착용하면서 황초삼 보다 앵삼의 명칭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68년 3월 19일 동아일보 ‘전통예술의 계승자들 수제자(首弟子) (6) 정재무(呈才舞) 윤령(尹鈴)여사’의 기사에 보면 앵삼에 하파(霞波)를 걸쳤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춘앵전 복식으로 앵삼의 명칭이 황초삼 보다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하파는 하피(霞帔)의 오기인데 다른 자료에서 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러한 일은 아직 궁중무용의 전수와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발생한 것으로 현재는 의궤와 고문서 등의 연구를 통해 정재 복식의 고증과 재연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 및 가치
춘앵전의 앵삼은 황초삼을 이르는 것으로 현대에 생겨난 명칭이다. 이는 유생 복식인 앵삼과 혼동되어 잘 못 전해진 명칭이지만 춘앵전의 춤 이름과 어울려 춘앵전 복식의 명칭으로 더 선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