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도
피변은 무무를 출 때 정(旌) 잡이와 무무원이 착용하는 관이다. 무무는 궁중의 사직, 선농, 선잠, 우사, 문묘와 같은 아악을 연주하는 제례에서 추는 무무[昭武之舞]와, 종묘제례를 봉행할 때 추는 무무[定大業之舞]의 두 종류가 있다. 종묘제례의 무무에는 1897년 이전부터 피변을 착용하지 않고 복두를 착용하고 있다.
○ 구조 및 형태
피변은 삼각형 모양의 모자에 끈을 달아 만든 관모로 변형(弁形)의 형상을 본따 만든 모자의 총칭이지만 이후 조선시대에는 형태가 삼각형이 아닌 원통형으로 구조가 바뀌었으며, 겉 표면에 얼룩 노루가죽 무늬를 그리고 양쪽에 운월아를 달고 청색 명주끈을 달았다.
○ 제작방법
『악학궤범』에 수록된 피변의 제작방법을 보면 피변의 옛날 제도는 칠포(漆布)로 각(殼)을 만들었는데, 지금의 제도는 종이를 배접해서 만들고 안에는 세포(細布)에 흑칠을 한다고 하여 제작 방식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바깥에는 모피의 모양을 그려 마치 얼룩진 노루 가죽과 같이 만들고, 좌우에는 동으로 만든 운월아(雲月兒)를 붙이고 청주(靑紬)로 만든 끈을 달았다. 운월아는 조선 후기 귓돈[耳錢]이라고 하는 것으로 귀 부위에 장식하는 조각이다. 후기에는 구름무늬뿐 아니라 매미, 나비 등 다양한 무늬로 장식했다. 재료로는 밀화, 옥 등을 사용하였으나 세종대에는 공인ㆍ상인ㆍ천인ㆍ하례들에게는 운월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피변에 사용한 운월아의 재료는 구리이지만 〈정대업〉을 추는 여기가 썼던 피변의 운월아는 도금(度金)한 것으로 보인다.
○ 재질 및 재료
1777년(정조 1) 간행된 『악기조성청의궤』에서 피변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물목을 보면, 백휴지(白休紙) 2량(兩), 안감으로 사용할 생포(生布) 1척 2촌, 정철(正鐵中絲) 1척 2촌, 어교 1전, 주토(朱土) 3전, 황단(黃丹) 2분, 진분(眞粉) 5분, 아교 2전, 명유(明油) 2사[夕], 탄 5홉[合], 흑주(黑紬) 길이 1척, 너비 5분 2조각이 들어간다. 이 역시 개책이나 진현관을 제작하는 방식과 같으며 다만 주토와 황단, 진분이 더 들어가는 것으로 이는 피변의 무늬를 그리기 위한 물목으로 보인다. 1765년(영조 41) 간행된 『경현당수작시등록(景賢堂受爵時謄錄)』에는 피변관을 보수할 때 각 건당 6분이 든다고 하였다.
○ 착장법
피변은 무무 공인의 관모로,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아악 무무에는 피변에 조주의를 입고 백주중단ㆍ백주군ㆍ금동혁대ㆍ백포말ㆍ오피리를 신으며, 〈정대업〉에는 피변에 상의로는 남주의를 입고 하의로는 검은색 연을 두른 적상(赤裳)을 입고, 적말대를 두르고 백포말에 오피리를 신는다. 적상은 조선전기에는 남주의 위에 착용하였으나 19세기 중반부터는 남주의 안에 착용하였다.
○ 역사적 변천
조선시대 궁중 제례악 연주복식에 관한 논의는 1433년(세종 15)에 있었고, 이후 무무[昭武之舞]를 출 때는 피변을 착용했다. 1463년(세조 9)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했지만, 무무인 <정대업>을 출 때 여전히 피변을 착용했다. 이후 형태에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아부(雅部) 제례의 무무에는 현재도 피변을 착용한다. 종묘제례의 무무에는 1897년(광무 1) 이전부터 복두를 착용하고 있다.



이민주(李民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