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변은 삼각형의 형태에 끈이 달린 형상을 한 관모에서 출발하였으나 조선시대 공인이 착용한 피변은 원통형의 모자에 겉에 노루가죽과 같이 털가죽의 형상을 그리고, 좌우에는 구리 운월아를 붙이고, 턱 밑에 청색 명주 끈을 단 관모이다.
유래
1433년(세종 15) 『세종실록』에 따르면 당나라와 송나라에서는 무무에 모두 평면(平冕)을 썼는데 이에 대해 진양(陳暘)은 면을 쓰고 간을 들고 춤을 추는 것은 천자의 예이므로 『예경』에서는 제후가 면을 쓰고 대무(大武)의 춤을 추는 것을 참람하다고 하였다. 무랑(武郎)이 평면을 쓰고 춤을 출 수 없다고 하여 작변(爵弁)으로는 문을 춤추고 위변(韋弁)으로는 무를 춤추는 것이 가하다고 하여 무무의 피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피변은 작은 모소자의 형태이며, 겉에 노루 가죽과 같은 무늬를 넣었으나 기본적인 틀은 종이를 배접하여 만드는 것으로 악인이 착용하는 복두ㆍ진현관ㆍ개책 등과 같은 방식으로 악인들의 관모를 제작하는 방식과 동일하며, 다만 형태에 차이를 둠으로써 제례에서의 역할을 표시한다. 이는 복식으로서 각 신분과 역할을 표현하고자 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고문헌
『세종실록』『악기조성청의궤』『악학궤범』
참고문헌
고부자, 「『악학궤범』 복식연구」, 『국악원논문집』 14, 2002.박가영, 「『악학궤범』 복식의 착용에 관한 연구」, 『국악원논문집』 16, 2004.이민주,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난 선잠제향 복식 검토」, 『포은학연구』 19, 2017.이은주, 이은주, 「종묘제례 악인(樂人)복식의 변천에 관한 연구, 『국학연구』 51, 2023.「장사훈, 「악복과 무복의 역사적 변천에 관한 연구-특히 악학궤범과 각종 진연의궤를 중심으로」, 『동양음악』7, 1985.
집필자
이민주(李民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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