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도
조선시대 궁중의 연향 때 음악을 연주한 악공들이 착용했다.
○ 구조 및 형태
복두의 기본구조는 모정이 2단으로 되어 있으며, 양각이 있다. 『악학궤범』에 수록된 화화복두는 양각의 끝부분이 타원형이고, 앞뒤와 양뿔에 채화를 그린다고 하였으나 현전하는 『진찬의궤』 화화복두의 도설에는 이마부분에만 꽃그림이 있으며, 뒷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양뿔에는 채화가 없다.
1828년(순조 28) 무자년(戊子年) 『진작의궤』에 수록된 화화복두는 2단으로 된 모정의 형태는 평평하고 각이 져 있으며 뒷단의 가운데 끈 장식이 있다. 양각은 밖으로 뻗어 나온 부분이 각진 형태이다. 1829년(순조 29) 기축년(己丑年) 『진찬의궤』에도 악공의 복식으로 화화복두와 홍주의, 오정대, 흑피리의 도설이 남아 있다.
○ 재질 및 재료
화화복두의 제작에 소용되는 물목은 1744년(영조 20) 갑자년(甲子年) 『진연의궤』에서 확인된다. 백휴지 3량, 정철사 1척5촌, 교말 1합(合), 송연 5분, 아교 2량, 명유 1사[夕]가 들어가는데 이는 2단으로 된 복두의 틀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양각은 흑초(黑綃)를 사용하는데 길이는 7촌, 너비는 1촌으로 2조각이 들어가며 양각의 뒤를 묶기 위한 것으로는 홍향사(紅鄕絲) 4분이 들어가고 끈으로 흑주(黑紬)를 사용한다. 길이는 8촌이고 너비는 5분으로 2조각이 좌우에 달린다. 이외에도 황단(黃丹)3분(分), 삼록(三碌) 5분, 진분 2분, 어교 5분, 정철사 2척 5촌, 탄(炭) 7두가 들어간다.
○ 제작방법
1848년(헌종 14) 무신년(戊申年) 『진찬의궤』에는 헌가 악공이 쓰는 화화복두 40건을 무역해 와서 사용했는데 후결차(車)로 자적색의 삼겹진사[三甲眞絲] 40척과 화화를 그리기 위한 당주홍(唐朱紅)ㆍ석록(石碌)ㆍ진분이 각 5전씩 들어으며, 연지 1편과 아교 5전이 들어갔다. 또 끈으로 사용할 흑공단의 길이는 2척이며 너비는 2촌이지만, 실제 들어간 비용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어 무신년에는 한 건당 8전(錢)이며, 자적삼겹진사의 가격은 1척당 2분 5리이고, 끈으로 쓸 흑공단의 가격은 2편에 3전 5분이 들어갔다.
그러나 1873년(고종 10) 계유년(癸酉年) 『진작의궤(進爵儀軌)』에는 화화복두 한 건당 가격이 1냥 2전 4분이며, 끈으로 사용한 공단은 건당 3전이다. 끈으로 사용한 영자의 직물에도 변화가 있어, 1877년(고종 14) 정축년(丁丑年) 『진찬의궤』에는 전상공인과 헌가악공의 화화복두에 사용한 궁초영자는 건당 9전으로 영자로 사용한 직물이 공단에서 궁초로 바뀌었으며, 가격에도 차이를 보인다.
○ 착장법
악공의 복식은 꽃을 채색한 화화복두에 홍주삼 또는 홍주의 등 홍색의 포를 입고 대를 두르고 흑색의 화를 착용한 차림이다.
○ 역사적 변천
834년(흥덕왕 9) 복식금제를 보면, 6두품은 세(繐)ㆍ라ㆍ견(絹)을, 5두품은 라ㆍ시(絁)견을 착용하였으며, 4두품은 시와 견을, 평민은 견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고려 초에는 백관의 공복으로 전각복두를 착용하였으며, 각의 길이는 어깨너비는 넘을 정도로 길었으나 말엽에는 점차 짧아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공복 착용이 줄어들면서 특별한 의식 외에는 착용하지 않았다. 다만 악공의 복식으로 복두의 착용은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악학궤범』에서는 복두로 통칭하고 있으며 악공의 관모로 앞뒤와 양 각에 채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화화복두로 이해할 수 있으나, 화화복두의 실체는 1719년(숙종 45) 기해년(己亥年) 『진연의궤』 전상공인(殿上工人)의 복식에서 확인된다. 현재는 착용하지 않는다.
<복두: 우방의 악사ㆍ악공 및 아악의 등가ㆍ도창악사가 착용하는 것으로 복두는 종이를 배접하여 만들고 안에 고운 푸를 바른 후 흑칠을 하며 각이 있다. 악공이 착용하는 것으로 전후 및 양각에 채화를 그린다. ©민족문화추진회>
<공인복식: 악공은 공적인 또는 사적인 행사에 참여하여 그 행사의 여흥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양각이 위로 꺾여 올라간 복두를 쓰고 홍포를 입고 오정대를 띠고 흑피화를 신고 있다. 공인의 허리띠를 맬 때에는 한쪽 끝의 갈고리를 허리띠 안쪽에 달린 보조띠의 구멍에 끼우고 바깥쪽에 달린 띠에는 타미 등을 장식하여 늘어뜨린다. 그림에서는 바깥쪽 띠 부분을 길게 만들어 위쪽으로 들었다가 허리 감는 부분의 안쪽을 통과하도록 끼워서 아래로 늘어뜨리도록 그려놓음으로써 ‘야(也)’자와 그 모습이 닮았다 하여 야자대 또는 야대라고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공인복식: 1719년(숙종 45) 4월 17일과 18일에 있었던 기사계회를 기념하여 만든 계첩이다. 기사는 70세가 넘는 정2품 이상의 중신들을 우대하기 위해 만든 모임으로 5폭의 행사도 가운데 경덕궁 내 경현당에서 베풀어진 연회 장면을 그린 것이다. 악공은 복두를 쓰고 홍포를 입고 오정대를 띠고 흑화를 신고 있다. ©호암미술관>
<화화복두: 화화복두는 1828년(무자년) 순조비인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40세 탄일을 맞아 거행한 2차의 진작의식에 악공이 착용한 관모이다. 도식 부분의 복식도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때 악공은 화화복두ㆍ홍주의ㆍ오정대ㆍ흑피화를 신는다. 전악의 복두와 달리 복두의 앞에 채화가 그려져 있으며, 모정 부분과 양각이 각이 져 있는 특징을 보인다. ©민족문화추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