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거지[翻巨知]
군복 차림에 착용하던 모자의 한 종류.
전립(氈笠)은 고려말부터 사용했고, 조선시대에는 병자(丙子)·정묘(丁卯) 전쟁 이후부터 털전립이 유행했으며, 이것을 군관들이 착용함에 따라 털전립을 전립(戰笠)이라고 했다. 조선후기에 군관들이 쓰던 군복용 모자인 이 전립을 검무ㆍ검기무를 추는 무용수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짐승 털에 습기와 열을 가하여 만든 이 모자는 시대에 따라 높이와 너비 등의 변화가 있었으며 색상은 검은 색이 일반적이었다. 검기무 무용수들이 쓰는 전립 역시 군복용 전립의 형태와 동일하였다.
1387년(고려 우왕 13)에 호복(胡服)을 혁파한 이후 명나라 제도에 의거하여 동서반의 7품이하 공복에 사용되었다. 향악정재 <검무>를 출 때도 전립을 착용했다. 검무는 18세기 초에 널리 유행했고,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 검무의 반차도가 수록되어 있으며, 『진찬의궤』(己丑, 1829년)의 복식도에 전립이 수록되어 있다.
○ 구조 및 형태
검기무의 전립은 군복용 전립과 같은 형태로, 시대에 따라 형태나 장식이 변화하였다. 전립은 모자 부분과 차양으로 구성되는데 초기의 전립 모자는 뾰족한 원뿔형이었으나 19세기 중기 이후 둥근 형태로 변하였으며 양태 역시 시대에 따라 너비가 변화하였는데 특히 20세기 이후 아주 좁아졌다. 정수리에는 장식용 꼭지인 정자(頂子)가 달렸으며, 그 끝의 고리에 공작털과 청우(靑羽)·홍색 상모(象毛)를 꽂은 은통(銀筩)을 달아 장식하였다. 모자와 차양의 경계에는 징도리(徵道里)라고 불리는 붉은 펠트끈[猩猩氈]을 두르고, 귀 양쪽에는 밀화 귓돈(蜜花耳錢) 또는 조금패 귓돈(造錦貝耳錢)이라 부르는 장식을 달았다. 오늘날 사용되는 검기무 전립 형태는 과거와 유사하나 구슬 턱끈이 길게 아래로 늘어지는 점에서 변화를 보인다.
○ 쓰임 및 용도 : 군관의 관모에서 비롯된 전립은 검무가 왕실 정재로 편입된 19세기 이후 검기무(劍器舞) 여령의 기본 복장으로 채택되었다. 여령들은 전복(戰服)·전대(戰帶)와 함께 착용하여 군사적 위용을 상징했다.
○ 재질 및 재료
전립은 본래 짐승의 털을 축융시켜 만든 털전립[氈笠]이었으나 군복용 관모로 사용되면서 ‘전립(戰笠)’이라 기록하였다. 1848년 무신년 진찬 이후부터 1902년 11월 임인년 진연까지의 『의궤』에서는 붉은 색[散紅毛] 전립을 사용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진찬⋅진연 《도병》에는 검기무 여령들이 모두 검은 색 전립을 쓴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현재도 검정색 전립을 사용하고 있다. 여령용 전립의 안감에는 남색 비단[藍漢緞]이나 남운문단(藍雲紋緞)이 사용되었고, 연습용 전립에는 남릉(藍綾)을 넣어 용도상의 차등을 두었다. 턱 밑을 묶는 끈은 궁초영자(宮綃纓子)라 불리는 비단끈으로, S자형 은고리[銀纓子]에 달아 모자 안쪽에 고정하였다. 정수리의 꼭지는 일반적으로 은정자(銀頂子)를 사용하였다. 한편 여령의 전립에는 본래 밀화끈(蜜花纓)이 없었으나 근래에는 인조 밀화구슬끈을 사용하고 있다.
○ 제작방법
전립은 동물의 털을 뜨거운 물과 잿물로 축융시켜 두꺼운 펠트를 만든 뒤, 원형 틀에 맞춰 성형하였다. 이후 염색으로 색을 내고 내구성을 높였다. 여령용 전립은 본래 흑색이었으나, 후기에는 홍색으로 변하고 장식이 더욱 화려해졌으며, 현대의 검기무에서는 다시 전통에 따라 흑색 전립으로 회귀하였다. 『봉수당진찬도』 등 회화에는 검은 전립이 묘사되지만,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 민속박물관의 자주색 벨벳 전립(20세기 북한 전립)을 볼 때, 19세기 이후 왕실 검기무에서는 홍색 계열 전립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모자와 차양의 연결 부위에는 붉은 펠트띠(징도리)를 감고, 은정자·공작털·청우·상모 등의 장식을 결합하였다. 은장식과 밀화 장식은 정교한 금속세공 및 구슬공예 기술이 함께 동원되었다.
○ 착장법
검무ㆍ검기무 무용수는 치마⋅견마기 차림 위에 또는 황초삼 차림 위에 군관의 주요 복장인 전복(戰服), 전대(戰帶)를 착용하였다. 그리고 머리에는 전립을 쓰는데 궁초영자(비단끈)를 턱 밑에서 묶고 그 위에 다시 짧은 구슬 턱끈을 사용하였으나 현재 검기무 무용수들은 의장미를 위해 긴 끈을 늘어뜨리고 있다.
○ 역사적 변천 전립은 고려말에 도입되어 동서반 7품 이하와 5·6품의 반방(飯房), 수방(水房), 등촉상소(燈燭上所) 등의 모든 공복에 전립이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후에는 금군(禁軍) 이하 공사천(公私賤) 모두에게 전립의 착용을 권장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청나라와 전쟁한 후로부터 털전립[毛戰笠]의 착용이 유행하여 사방으로 퍼지게 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에는 사대부도 이를 착용하였으며, 무인(武人)들은 대관들도 이를 착용함에 따라 털전립을 전립(戰笠)이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검무ㆍ검기무 무용수도 전립을 착용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무관용 전립에서 차용한 것이다. 전립을 쓰고 있는 기생이나 여령의 모습은 정조 대의 〈안능신영도(安陵新迎圖)〉를 비롯하여 신윤복의 〈쌍검대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검무 정재도 등에서 볼 수 있다. 장식물은 간략해졌으나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이나 지역의 검무, 검기무를 추는 무용수들이 전립을 사용하고 있다.
검무ㆍ검기무의 전립은 조선 후기 군관의 군복용 관모를 궁중 무용 복식으로 도입한 사례로서, 복식사적·공연예술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전립은 단순히 머리에 쓰는 모자가 아니라, 군무적 성격을 부여하고 무용의 상징성과 위엄을 시각화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검기무의 여령들이 남성적 복식 요소를 차용하여 착용함으로써, 전립은 성별의 경계를 넘어선 복식 표현의 확장이라는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국립대구박물관, 『선비의 멋, 갓』, 2020. 김영희춤연구소 편, 『검무 연구』, 보고사, 2020. 수원화성박물관 편, 『정조대왕의 수원행차도』, 2016. 진덕순⋅이은주, 「『의궤』를 통해 본 궁중 검기무 복식」, 『국악원논문집』 37, 2018.
이은주(李恩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