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여령이 궁중정재에 착용한 초록혜는 『악학궤범』에 여기복식으로 등장하는 유문홍단(有紋紅緞)으로 만든 혜아(鞋兒)와도 모양에 차이가 있다. ○ 역사적 변천 『악학궤범(樂學軌範)』 관복도설(冠服圖說)에 실린 여기(女妓)의 신은 혜아(鞋兒)인데 홍단으로 민든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림에는 발등에 묶는 끈이 없다. 조선 후기 궁중 정재를 올리는 여령(女伶)이 신는 신발의 종류도 춤에 따라 각각 홍단혜(紅緞鞋)ㆍ백피혜(白皮鞋), 또는 흑단수화(黑緞水靴)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각무(各舞)의 정재여령은 초록혜를 신는다고 기록되어 초록혜가 보편적으로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검기무>ㆍ<춘앵전>ㆍ<무고>ㆍ<집박>(執拍)과 정재의장(呈才儀仗)의 정재여령의 경우에도 의복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신은 모두 초록혜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내진찬(內進饌)때 시위(侍衛)와 각 차비(差備)에 대한 내용 중 악장사창(樂章司唱) 차비여령 역시 정재여령들과 비슷하게 화관(花冠)을 쓰고 황초삼(黃綃衫)에 안에는 남색치마〔藍裳〕 겉에는 홍색치마〔紅裳〕을 입고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착용하며 오채한삼(五彩汗衫)을 끼고 초록혜를 신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복식도에 수록된 그림도 정축년(1877) 진찬의궤부터 모든 복식도에 빠짐없이 초록혜(草綠鞋)가 나타난다.
이에 비해 동기(童妓)가 착용한 신발은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1902.11)에 초록혜라고 기록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수초혜(繡草鞋)로 쓰여 있다. 수초혜(繡草鞋)는 무늬를 수놓은 신을 의미하여, 신울을 대고 신의 코와 뒤축에 구름무늬를 수놓고 코에는 술장식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현재의 공연에서는 긴 치마로 인해 신발의 모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초록색 신을 착용한다.
홍나영(洪那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