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 볼리는 소리(밭 밟는 소리라는 제주어)
제주도에서 밭에 좁씨 등을 뿌린 후,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말이나 소를 밭 안에 몰아넣은 후, 밭을 밟도록 몰면서 부르는 토속 노동요
밭 밟는 소리는 한 명의 선소리꾼이 마소 떼의 앞에서 우두머리 격의 한 마리 말(또는 소)을 이끌면서 선소리를 부르고, 보조자들은 마소 떼의 뒤 혹은 옆에서 마소 떼를 몰면서 뒷소리를 부른다. 마소 떼의 움직임에 따라 노래 단락의 변화가 비교적 자주 발생하는 형태의 자유리듬으로 되어 있는 민요이다.
제주도에는 예로부터 조를 많이 재배하였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바람이 많다. 따라서 조 씨앗을 뿌리면 바람에 날아가 밭 구석으로 몰리게 되어 씨앗이 밭 전체에 고르게 자라나지 못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씨를 뿌린 후, 말이나 소를 밭에 몰아넣고 밭을 골고루 밟는 매우 독특한 노동을 하였다. 밭을 밟는 일에는 말이나 소가 적으면 두세 마리에서, 많으면 수십 마리까지 동원되었다. 이때 우두머리 격의 말이나 소를 이끄는 사람이 선소리를 메기고, 나머지 사람이 후렴을 받는 민요로 발전한 것이 이 민요이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조의 씨앗은 대개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뒤 5월 말~6월 초 무렵에 파종하는데, 이 민요는 이 시기에 주로 부른다. 제주도 전역에서 조 농사를 하였기 때문에, 이 민요는 제주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다.
○ 음악적 특징
밭 밟는 소리는 가창자나 노동 상황에 따라 가락과 형식의 변화가 비교적 자주 발생하는 민요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민요의 음계는 전형적인 펜타토닉 음계인, ‘도(do)-레(re)-미(mi)-솔(sol)-라(la)’로 되어 있고, 종지도 도(do)로 한다. 다만 도(do)음을 반음 위로 상향하면서 종지(終止)하는 경향이 있다. 맷돌질소리 등 제주도 토속민요에 나타나는 종지적 특징이 이 민요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성음은 ‘도(do)-레(re)-미(mi)-솔(sol)-라(la)-도(do′)’로 배열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감정 기원적 선율형(pathogenic melody)인, 이른바 역(逆) 프라이다크 삼각형의 선율형(꼴베는홍애기소리 항목 참조)을 이루고 있다.
세요성(細搖聲)이 자주 사용되며, 떨지 않는 평성으로 길게 부르는 음도 자주 나타난다. 창법과 기교는 제주 토속민요의 전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소를 잘 몰아야 하기 때문에, 선소리꾼의 목청은 매우 유창하고 큰 것이 특징이다. 규칙적인 박절 없이 자유 리듬으로 부르는 민요이지만, 가락의 단락은 비교적 일정하게 형성되어 있다. 다만 마소 떼를 모는 일의 특성상, 마소 떼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따라 이 민요의 빠르기나 단락짓기도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 형식과 구성
밭 밟는 소리는 메기고 받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마소 떼의 급격한 움직임에 의해 가락이 헝클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가락으로 되어 있으나, 사설의 길이에 따라 그 단락이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 후렴은 ‘월월월월’ 하는 식으로 소를 모는 여음(餘音)을 뒷소리꾼들이 받는다. 이 민요의 형식구조는 A+B의 선소리와 A’+B’의 뒷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박절 민요로 치면 두도막 형식에 해당하는 셈이다. 가창자와 상황에 따라서는 후렴의 A’부분을 생략하고 B’부분만 노래하는 경우도 많다.
밭 밟는 소리의 노랫말은 마소를 몰면서 밭을 밟는 노동과 관련된 사설, 노동이나 인생살이의 고통, 경제적 어려움에 관한 신세 한탄 등의 내용이 많고, 가정불화나 시집살이의 고통에 관한 내용도 나타난다. 노랫말 내용이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밭 밟는 소리의 선소리는 다양한 노랫말을 메기고, 뒷소리는 일정한 후렴구를 반복한다. 이 민요의 노랫말의 예는 아래와 같다. [밭 밟는 소리의 노랫말] <후렴> 어려러 어 / 어러러어양 / 오호 어 월월월월....... / 월 월 월 월 하량 <선소리> 한라산이 산목이 르민 / 흘안에 / 오홍 / 비가온다 헌다 비가올듯허는구나 어 / 비가오민 / 설뢍 볼리지븐 / 못헐거낭 드르에 나강보민 / 태역밧디 / 거미줄이 / 동골동골 집을 지스면 그날 일은 아니 민다 / 허는구낭아 어 / 전이는 아침 상고지에 / 비가온댕 해여도 요즘은 아침 상고지가 사도 / 비가 아니 / 오는구나 엉 / 어허야 이선 말 이끄는 아이야 어 / 신나게 마랑 / 구석더레 / 쑥쑥 디려사라 요 아적 전후 새날이 되민 / 씨가 뒤웅박에서 / 재기 나쟁 / 춤을 춘다 헌다 우리 덜아 / 오늘은 앞장 사그네 / 이 구석 저 구석 / 조근 조근 라 간다 허는구나 저 산 앞에 / 안개가 지며는 / 새 장남 두 일뢰 논다 / 허는 구나 요 몰덜아 발톱마다 / 꼭꼭 지엉그넹에 / 요 조 코고리가 / 잘두나 나는구나 어찌해야 이 팔자에 이 몸이 / 이 들을 끄서그넹에 / 이 조팟을 다 / 볼리는구나 뱅뱅돌고 돌아보라 / 요 밧 안이서 / 멧 고비나 / 도는구나 요 산중에 요 ᄆᆞ쉬덜아 / 어서어서 돌고돌아 / 이 밧 ᄒᆞ나 돌며는 / 해가 지는구나 지석 할마님아 이 조 령 나사거들랑 / 조 코고리낭 두자 두치썩만 / 내워줍써 / 허는구나 지석 할마님아 낭대기랑 두자 두치썩 내왔주마는 / 조코고리랑 막게만썩 / 덩두렁 막게썩만 / 내와 줍써 이 덜아 저 저 / 다 령 밧 베낏디 나가거들랑 / 물도 먹고 도 먹곡 / 쉼도 허자 허는구나
밭 밟는 소리는 제주도 농업요를 대표하는 민요이다. 제주도 전역에 걸쳐 가장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제주도 토속적인 음악적 특징과 제주도민의 생업과 삶의 애환이 잘 드러나는 민요이다. 종지음을 반음 가까이(서양 음계 상의 정확한 반음은 아님)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맷돌질 소리 항목 창조), 세요성(細搖聲)이 발달한 점, 평성으로 긴소리를 뻗어내는 점 등은 음악적으로 제주적인 특성을 드러내며, 노랫말은 밭을 밟는 노동과 관련된 내용에 집중하면서도 제주 사람들의 애환을 잘 드러내는 특징이 이 민요의 중요한 의의라 할 수 있다.
제주농요: 제주도 무형문화재(2022)
조영배, 『북제주군 민요 채보 연구』, 도서출판 예솔, 2002. 조영배, 『제주도 노동요 연구』, 도서출판 예솔, 1992. 조영배, 『한국의 민요, 아름다운 민중의 소리』, 민속원, 2006. 조영배, 「제주도 민요의 음악양식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6.
조영배(趙泳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