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비파(鄕琵琶), 당비파(唐琵琶), 곡경비파, 직경비파
이형(梨形, 서양 배를 반으로 자른 듯한 형태)의 울림통과 긴 목이 연결된 동아시아의 류트형(plucked lute-type) 현악기.
비파는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에 유입된 이래 향비파와 당비파로 구분되어 궁중 음악의 향악과 당악에 각각 편성되었고, 민간에서도 향유되었다. 조선 전기에의 『악학궤범』에 구조와 용도, 활용사례를 상세히 알 수 있으며 도상자료 및 문학작품에 묘사된 내용을 통해 다양한 전승맥을 살필 수 있다.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향비파는 점차 퇴화되고 당비파가 그 역할을 대체하며 합주 및 독주 악기로 활용되었고, 『금합자보』 등에서는 비파 악보와 기보 방식이 일부 확인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승이 거의 단절되었으나, 현대에는 복원과 창작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중이다.
비파는 인도에서 기원한 악기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비파가 시차를 두고 들어왔는데, 먼저 유입되어 정착한 것이 곧은 목의 5현 향비파이며, 이후 중국 당나라를 통해 들어온 곡경의 4현 비파는 당비파라 불렸다. 『삼국사기』 「악지」에는 향비파와 당비파가 함께 소개되어 있으며, 향비파로 연주 가능한 곡이 212곡에 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문헌만으로는 각 악기의 정확한 유입 시기나 경로를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비파의 존재는 7~8세기 유물과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의 동생 차득공이 비파를 든 거사로 변장해 민정을 살폈다는 일화가 전하며, 문무왕 13년(673)으로 추정되는 <비암사 계유명 아미타불 부조>, 신문왕 2년(682)에 완성된 <감은사 청동제사리기> 등 불교미술품에서도 비파를 연주하는 비천상이 묘사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도상은 천상의 음악이나 불국토의 장엄함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악기가 실제 불교의식에서 사용되었는지를 문헌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비파 -향비파 ○ 형태 및 구조 비파는 유입 시기와 형태에 따라 향비파와 당비파로 구분된다. 향비파는 서역을 거쳐 고구려와 신라에 전해진 악기로, 곧은 목과 타원형 울림통을 지닌다. 곧은 목의 비파라는 뜻으로 '직경비파'라고 한다. 다섯 개의 줄과 열 개의 괘(지판 마디)를 갖추고 있으며, 술대를 이용해 줄을 퉁겨 연주한다. 울림통은 오동나무로, 뒷판은 밤나무로 제작된다. 반면 당비파는 중국 당나라를 통해 통일신라시기에 유입된 악기로, 굽은 목과 서양 배를 반쪽 갈라놓은 모양의 울림통을 특징으로 한다.굽은 목의 비파라는 뜻을 '곡경비파'라고 한다. 네 개의 줄과 열두 개의 괘를 갖추고 있으며, 연주 시에는 발목(撥木)이나 인조손톱(假爪角)을 사용한다. 향비파와 당비파는 구조적 차이뿐 아니라 음역과 조율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 제작 비파는 울림통의 재질과 구조, 괘의 배치 등에서 정교한 제작 기술이 요구되는 악기이다. 복판은 오동나무, 뒷판은 밤나무를 사용하며, 괘는 단단하고 음향 전달력이 뛰어난 회양목으로 제작된다. 울림통은 물방울 모양으로 깎아내어 공명을 극대화하며, 목과 울림통은 별도로 제작한 후 접합된다. 줄은 명주실이나 금속선을 사용하며, 주아(周兒)를 이용해 조율이 가능하다. ○ 음역과 조율 악기의 음역은 당비파와 향비파가 다르며, 『악학궤범』의 당비파 조율법에는 당악식과 향악식이 있다. 당악식은 상조(上調)와 하조(下調)로 나뉘며, 상조에서는 무현·대현·중현·자현이 각각 탁무역(B♭₂), 협종(E♭₃), 탁임종(G₂), 임종(G₃)으로, 하조에서는 탁남려(A₂), 태주(D₃), 탁임종(G₂), 임종(G₃)으로 조율된다. 향악식 조율에서는 개방현이 탁치, 궁, 궁, 치로 설정된다. 향비파는 일지에서 막막조까지 총 7가지 조현 방식이 있으며, 각 조현마다 무현·청현·대현·중현·유현의 개방현 음이 달라진다. 단, 평조와 계면조의 조현은 동일하다. ○ 연주법 비파의 연주법은 악기의 구조와 음악적 용도에 따라 향비파와 당비파로 구분된다. 향비파는 전통적으로 술대(거문고에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대나무 막대)를 사용하여 줄을 퉁기며 연주한다. 연주자는 악기를 가슴에 안고 왼손으로 괘 위의 줄을 짚어 음정을 조절하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이용해 줄을 튕겨 소리를 낸다. 향비파는 향악 편성에서 사용되며, 손가락으로 직접 줄을 퉁기는 방식도 병행되었다. 당비파는 연주 방식이 보다 다양하며, 당악과 향악에 따라 연주법이 달라진다. 당악을 연주할 때는 발목(撥木)이라 불리는 작은 나무 조각이나 인조손톱(假爪角)을 사용하여 줄을 퉁기며, 이는 보다 섬세하고 빠른 음색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향악을 연주할 때는 손가락으로 직접 줄을 퉁기며, 향비파와 유사한 방식으로 연주된다. 당비파는 구조적으로 괘가 더 많고 줄이 적기 때문에 음정 변화와 장식음 표현에 유리하며, 합주뿐 아니라 독주 악기로도 활용되었다. ○용도 비파는 궁중 및 민간의 상층사회 음악 일상에서 다양하게 향유되었다. 궁중음악에서 향비파와 당비파는 각각 당악과 향악에 편성되었다가, 조선후기에는 당비파가 향비파를 대체하면서 당비파의 용도가 확장되었다. . 또한 비파는 문인 음악과 풍류방 문화에서도 중요한 악기로 기능하였다. 『금합자보』에는 “거문고 차는 수법을 비파에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기술과 비파보 설명이 수록되었고, 수록되어 있고, 『양금신보』의 저자 양덕수는 비파 연주에 뛰어난 명인으로 평가된 점을 미루어 비파가 가곡 등 민간 지식층의 향유 악기로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 역사적 변천 고려시대에는 향비파와 당비파가 각각 향악과 당악에 편성되어 사용되었다. 『고려사』 「악지」에는 두 악기가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 궁중 음악 체계에서 각 악기가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향비파는 향악 편성에, 당비파는 당악 편성에 포함되어 궁중 연향악의 악기 체계가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에는 『악학궤범』에 비파의 구조, 명칭, 연주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당비파와 향비파의 용도가 분명하게 명시된 악기 편성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에는 비파가 궁중 음악뿐 아니라 문인 음악에서도 실연 악기로 기능했으며, 악보와 기보법을 통해 그 활용 양상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금합자보』에는 “거문고 차는 수법을 비파에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기술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파보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비파가 실연 악기로서 문인 음악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양금신보』의 저자 양덕수는 비파 연주에 뛰어난 명인으로 평가되며, 이는 비파가 궁중 음악을 넘어 가곡과 풍류방 음악 등 민간 지식층의 향유 악기로 수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향비파의 사용은 점차 줄어들고 당비파가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된다. 당비파는 향악과 당악을 넘나들며 합주 및 독주 악기로 활용되었고, 단독 연주 사례도 확인된다. 성현의 『합자보』 서문에는 거문고를 위한 합자기보 방식이 가야금과 비파에도 적용된다는 설명이 있으며, 실제로 『금합자보』에는 비파 악보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 시기의 음악일화와 고시조, 문학작품에는 비파 명인들의 활약상과 음악적 감성이 묘사되어 있으며, 풍속화에도 비파를 연주하거나 곁에 둔 인물상이 등장한다. 이는 비파가 문인 문화의 상징적 악기로 자리했음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궁중 음악의 해체와 전통 악기의 위축으로 인해 비파의 활용은 현저히 퇴색되었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전승이 거의 단절되기에 이른다. 다만 국립국악원의 악기 복원 및 재현 시도와 일부 개인 연주자의 활동을 통해 비파의 활로가 모색되고 있으며, 현대에는 개량된 당비파가 국악 합주와 창작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시 활용되고 있다.
비파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폭넓게 활용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향악과 당악의 악기 체계를 정교하게 구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향비파와 당비파는 구조와 음향, 조율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며, 각각의 음악적 특성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연주법이 발전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악학궤범』과 『금합자보』 등을 통해 비파의 구조, 조율, 악보 체계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고, 문인 음악과 풍류방 문화에서도 상징적 악기로 자리매김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승이 단절되었으나, 현대에는 복원과 창작을 통해 비파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악학궤범』 『허백당집』 『용재총화』 『금합자보』 『양금신보』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 악기연구소 개소기념 자료집』, 국립국악원, 2006. 『국악기 연구 보고서 2007』 국립국악원, 2007. 송혜진,『한국악기』, 열화당, 2001. 송혜진,『조선선비, 음악으로 힐링하다- 꿈꾸는 거문고』, 컬쳐그라퍼, 2017. 이혜구 역주,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5집: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허경진,『악인열전』, 한길사, 2005.
강영애(康英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