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타는 대목
흥보가 중 흥보 또는 놀보가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에서 나온 박을 타며 노래하는 대목
박타령은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준 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에서 복을 얻고, 놀보는 같은 방식으로 박을 타다 화를 입는 대목이다. 돈, 쌀, 비단, 집 등이 나오는 흥보 박과, 초라니패, 사당패 등이 나와 재물을 빼앗고 장비에게 혼비백산하는 놀보 박이 대조되어 권선징악의 주제를 드러낸다. 박을 타는 장면은 노동요로서 진양조, 중모리, 휘모리 등의 장단과 계면조 선율이 어우러져 중심을 이루며, 급박하고 다채롭게 전개되는 극적 상황과 긴밀하게 맞물려 구성된다. 재담소리의 성격이 강해 과거에는 다소 경시되었으나, 오락성과 대중성을 지닌 소리로서 오늘날에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흥보가에서 흥보와 놀부가 박을 타는 대목은 신재효의 사설집을 비롯한 여러 창본과 이본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박 사설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내용에 따라 현실의 경험 세계를 반영한 부분과 이상적 소망의 세계를 그린 부분으로 구분된다. 놀보 박에 등장하는 사당패·초라니패·풍각장이패·무당 등은 판소리 창자층이 접했던 당시의 예능 집단과 관련이 있다. 한편 의·식·주 등 인간 생활의 기본 요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은 흥보 박 사설은 하층민이 염원한 이상적 세계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타령은 착한 흥보가 복을 받는 내용을 담은 ‘흥보 박’과 악한 놀부가 벌을 받는 내용을 그린 ‘놀보 박’ 대목이 있다. 일반적으로 흥보가를 ‘박타령’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어 열린 박을 타며 부르는 대목을 가리킨다. 더 좁은 의미로는 박을 직접 톱질하면서 하는 ‘박타는 소리’를 가리킨다.
현재 전승되는 흥보가는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 동편제는 송만갑(宋萬甲)-김정문(金正文)·박봉래(朴奉來)-박록주(朴綠珠)·강도근(姜道根)·박봉술(朴奉述)로 이어져 왔으며, 서편제는 김창환(金昌煥)-김봉학(金鳳鶴)-오수암(吳守岩)·정광수(丁珖秀) 계통이다. 이밖에 김연수(金演洙)-오정숙(吳貞淑)이 있고, 박동진(朴東鎭)바디는 김창환제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김정문은 ‘놀보 박’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소리 계보를 잇는 박록주·강도근·박송희의 창에는 이 대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놀보 박 대목을 새로 배우거나 간략하게 재구성하여 부르는 시도를 하였으며, 이는 현대 판소리 전승에서 박 타는 대목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흥보 박은 일반적으로 세 통으로, 각각에서 돈, 쌀, 비단, 집이 나온다. 이는 의식주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함과 동시에 흥보를 큰 부자로 만들어 준다. 반면 놀보 박의 수는 흥보의 박보다 많으며, 가장 많은 경우인 경판본(25장본)에서는 13개에 이른다.
○ 음악적 특징 흥보가 타게 되는 박 중에서 첫 번째 박을 중심으로 살펴보되, 박록주와 박초월의 소리에 나타나는 음악적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두 창자 모두 계면조로 시작하여 계면조로 마친다. ② 박록주는 =52~60의 빠르기로 노래하고, 박초월은 =40~44로 불렀다. ③ 박록주는 장단의 끝을 짧게 끊어내었고, 박 혹은 대강 사이에 여운을 둔 뒤 다음으로 넘어가는 형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반대로 박초월은 장단 내에 사설을 성글게 붙이는 경우가 많이 나타났으며, 박 혹은 대강 사이에 여운을 주며 넘어가는 형태를 즐겨 사용했다. ④ 박초월의 시김새 사용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⑤ 두 창자 모두 진양조 위주로 대목을 구성했으나, 박타기의 막바지에서는 박록주는 휘모리장단을 사용하였고, 박초월은 자진모리장단으로 구성하였다.
흥보는 총 세 개의 박을 타는데, 그 톱질하는 소리를 박봉술의 사설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박과 셋째 박은 진양조, 둘째 박은 중모리로 부르며, 마지막에는 모두 휘모리로 전환되어 박이 벌어지는 순간을 형상화한다.
| 박록주 사설 | 박초월 사설 |
| (아니리)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그리 울지만 말고, 저 지붕 위에 있는 박을 따다가 박 속은 끓여먹고, 바가지는 부잣집에 팔어다가 어린 자식들을 살리면 될 것이 아닌가?” 흥보가 박 세 통을 따다 놓고, 우선 먼저 한 통을 타는디 (진양조) “시르렁 실건 당거주소. 헤이여루 당거주소. 이 박을 타거들랑은 아무 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 통만 나오너라. 평생의 포한이로구나. 헤이여루 당그여라 톱질이야. 여보게 마누라. 톱소리를 어서 맡소.” “톱소리를 내가 맡자고 헌들, 배가 고파서 못 맡겄소.” “배가 정 고프거들랑은 허리띠를 졸라를 매소. 헤이여루 당거주소. 작은 자식은 저리 가고, 큰 자식은 내한테로 오너라. 우리가 이 박을 타서 박 속일랑 끓여먹고, 바가질랑은 부잣집에가 팔어다가 목숨 보명 살아나세. 당거주소. 강상에 떴는 배가 수천 석을 지가 싣고 간들, 저희만 좋았지 내 박 한통을 당헐 수가 있느냐? 시르르르르르렁 실건. 시리렁 실건 시리렁 실건. 당그여라 톱질이야.” (휘모리)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식 삭 톡 퀙 |
(아니리) 이 때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우지 마오. 아, 이렇게 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박이나 한 통 따다가, 박 솔은 끓여 먹고, 바가지는 부잣집에 가 팔어다가 어린 자식들 구환이나 헙시다.” 흥보 내외 박을 한 통 따다 놓고, 먼저 한 통을 타 보는디, (진양조) “시리르렁 실건 톱질이야 에여루 당겨주소.” “이 박을 어서 타서 박속일랑은 끓여 먹고, 바가질랑은 부잣집에다 팔어다가 목숨 보명을 허여 보세.” “실근 시리렁, 당겨 주소.” “여보게, 마누라. 톱소리를 맞어주소.” “톱소리를 내가 맞자고 헌들, 배가 고파서 못 맞겄소.” “배가 정 고프거들랑은 치마끈을 졸라매고 기운차게 당겨 주소.” “에여루 당겨 주소.” “이 박을 타거들랑은 아무 것도 나오지를 말고서 밥 한 통만 많이 나오느라. 평생에 밥이 포한이로구나.” “에여루 당거 주소.” “시르르르르르릉. 시리렁 실근 시리렁 실건 시리렁 실근. 당그여라 톱질이야.” (휘모리)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건 실건 실건 실건 시리렁 실건 실건 실건 실건 실건 식 싹 콕 칵 |
1) 첫째 박 (아니리) 흥보가 지붕으로 올라가서 박을 톡톡 튕겨 본즉 팔구월 찬 이슬에 박이 꽉꽉 여물었구나. 박을 따다 놓고, 흥보 내외 자식들 데리고 톱을 걸고 박을 타는디, (진양조) 시르렁 실근, 톱질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그어 주소. 이 밖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통만 나오너라. 평생으 밥이 포한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그어 주소. 시르르르르르르르르, 큰 자식은 저리 가고 둘째놈은 이리 오너라. 우리가 이 박을 타서, 박속일랑 끓여 먹고, 바가지는 부자집으 가 팔어다 목숨 보명 살어나자. 에이 여루, 톱질이로구나. 시르르르르르르르르, 여보소, 마누라. 예. 톱소리를 어서 맞소. 톱소리를 맞자 한들 배가 고파 못 맞겠소. 배가 정 고프거든 허리띠를 졸라 매고 기운차게 당거 주소.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당거주소. (휘모리)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식삭 시르렁 시르렁 실근 실근 식삭 실근 실근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식삭 식삭. 2) 둘째 박 (아니리) 한참 이리 놀다가 “여봐라, 박 한통 더 따오니라. 우리 타자.” 또 한 통을 들여다 놓고 타는듸, (중모리)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에이 여루 당거 주소. 이 박통에 나오는 보화는 김제만경 오야미뜰을 억십만금을 주고 사고, 충청도 소새 뜰은 수만금을 주고 사니, 부익부가 되이로구나. 시르렁 실근 당그여라. 강상으 둥둥 떴난 배는 수천석을 지가 실고 간들 내 박 한통을 당허더란 말이냐. 시르렁 실근 당그여라. (휘모리)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식삭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시르렁 식삭 식삭 식삭 콕 캑. 3) 세째 박 (아니리) “허어이, 자네는 똑 버들 속에 꾂l 새끼매이로 생겠겄구마. 자, 우리, 옷은 나중에 해 입기로 허고 마냐 한 통 타 베리자.” (진양조) 또 한 통을 들여놓고, 당그여라 톱질이야.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은금보화가 나오거드면 우리 형님을 드릴란다. 흥보 마누라 기가 맥혀 톱머리를 시르르르르 노며, 안탈라요 안 탈라요. 나는 이 박 안 탈라요. 당신은 형제간이라 잊었소그려. 엄동설한 치운 날으 어린 자식들을 맨발을 벗겨 몽둥이 무서워 쫓겨나던 일을 곽 속에 들어도 나는 못 잊겄소. 나는 나는 안 탈라요. 흥보가 화를 내며, 타지 마라 타지 마라, 타지 말어. 갑갑허구나, 이 계집아. 계집은 상하 의복과 같은지라 지어 입으면 되지마는 형제는 일신수족이라. 수족 한 번 똑 떨어지면 다시 잇지는 못허느니라. 우리 형님은 아차 한번 돌아가시면 조선 팔도 너른 곳에 어디를 가면 보겼느냐, 요년아. 안 탈라면 나 혼자 탈란다. 시르렁 시르렁 톱질이로구나. (휘모리)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식삭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식삭. 박이 반쯤 벌어 가니 박통 속에서 사람이 나달아오는듸, 괭이 든 놈, 호미 든 놈, 도찌 든 놈, 대짜구, 소자구, 대끌, 소끌, 먹통 등 놈, 대톱, 소톱, 대패 든 놈 그저 꾸역꾸역 나오더니, 터를 닦고 주추 놓아 지동을 세우고 들보를 얹어 상랑이 올라 달아간다. 어기야, 어기야.
박타령은 재담소리로서 판소리의 해학성과 극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보성소리 계열에서는 전승에서 제외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판소리가 대중 예술로 부상하고 서사적 완결성이 강조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판소리 공연 문화의 변화와 향유층의 요구를 반영하는 사례로서, 문화적·예술적 의의가 큰 대목이다.
강한영,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 민중서관, 1971.
김혜정, 「동편제 흥보가 박타령의 바디별 음악적 구조와 특성」, 남도민속연구 20, 남도민속학회, 2010.
서종문, 「흥보가 ‘박사설’의 생성과 그 기능」, 흥부전 연구, 집문당, 1991.
채수정, 『박녹주 박송희 창본집』, 민속원, 2010.
최난경, 『동편제와 서편제 연구: 박녹주와 박초월의 흥보가를 중심으로』, 집문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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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인간문화재 박초월(朴初月) 창 흥보가』, 신나라뮤직, 1998.
『한국전통음악시리즈 제4집 판소리 명창 朴綠珠 흥보가』, 지구레코드, 1994.
○ 부록
박송희 창 박타령 오선보 – 『박록주, 박송희 창본집』, 집문당,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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