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적벽가》 중 적벽화전(赤壁火戰)에서 패해서 달아나던 조조(曹操)가 길에 서 있는 장승을 보고 놀라 장승을 벌하려 하자 장승이 조조의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토로하는 내용의 대목.
장승타령 대목은 조조가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패하여 화용도로 들어가는 부분에 삽입되어 있다. 이 대목은 《적벽가》 이본들 대부분에 나타나고 있으며,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나무로 쓰일 수 있는 중요한 용도를 노래하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장승의 형상과 불운한 처지를 말하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무죄에 대한 호소와 방송(放送)의 기원을 노래한다. 음악적인 내용은 창자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된다. 장단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등이 사용되고 있으며, 평조 ‘레(re)-미(mi)-솔(sol)-라(la)-도(do′)’, 우조 ‘솔(sol)-라(la)-도(do′)-레(re′)-미(mi′)’, ‘미(mi)-솔(sol)-라(la)-(시)-도(do′)-레(re′)’의 선율이 나타난다.
장승타령 대목은 원전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없는 부분으로, 판소리 《적벽가》에서 노랫말과 음악 모두 새롭게 형성된 곡으로 볼 수 있다. 이 대목은 『박헌봉본』과 『이창배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창본과 필사본에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패졸(敗卒)을 이끌고 쫓겨 가던 조조는 소리 없이 서 있는 장승에서 관우(關羽)의 형상을 발견하고 착각하여 크게 놀란다. 그러나 그것이 화용도 이수(里數)를 표시한 장승인 것을 알고 장승이 자신을 속였다고 분개하여 잡아들이도록 명령한다. 이에 장승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낸다. 이 대목의 음원은 1935년에 녹음한 이동백(李東伯, 1866~1949)의 소리가 현재 전하고 있으며, 이후 임방울(林芳蔚, 1904~1961), 김연수(金演洙, 1907~1974), 박봉술(朴奉述, 1922~1989), 정권진(鄭權鎭, 1927~1986) 등의 소리가 전해진다.
장승타령 대목은 적벽강에서 달아나 화용도로 들어간 조조가 장승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란 것에 화가 나서 군졸을 시켜 장승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조조의 꿈에 장승이 목신으로 현신(現身)하여 조조와 직접 대담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승은 조조의 처사가 잘못된 것이므로 분간방송(分揀放送)하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장승 자신의 신세를 하소연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보면, 이 대목은 일종의 신세타령의 성격을 갖는다. 원전의 소설이 판소리화되면서 생긴 변화는 민중들의 삶에 대한 애환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인데, 장승타령 대목 역시 그러한 성격의 연장선에 있다. 또한, 조조로 대표되는 집권층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신재효본에서 정욱(程昱)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강조함으로 장승은 무서워 보이면서도 어리숙함을 내재하고 있는 민중의 속성을 잘 반영하는 대상물이며 이러한 이중적 성격을 통해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위하는 집권층에 대한 비판이 효과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 음악적 특징
장승타령은 노랫말과 음악 모두 《적벽가》에서 새롭게 형성된 대목이다. 이 대목은 조조의 꿈에 장승이 목신으로 현신하여 조조와 직접 대담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김연수는 장승타령 대목을 4개의 부분(진양조→자진모리→진양조→중모리)으로 구성하고 있고, 나머지 창자들은 한 대목으로 부르고 있다.
‘장승을 잡아들이는’ 내용을 임방울ㆍ정권진ㆍ박봉술 등은 아니리로 구성하고 있는 반면에 김연수는 우조 ‘솔(sol)-라(la)-도(do′)-레(re′)-미(mi′)’ 선율의 자진모리장단으로 소리한다. 이어 목신으로 현신한 장승이 자신의 내력을 이르는 대목을 김연수는 진양조와 중모리장단의 2대목으로, 임방울ㆍ정권진ㆍ박봉술 등은 중중모리장단으로 구성하고 있다. 장승타령 대목 중 장승 내력 부분의 선율구성은 창자에 따라 평조 ‘레(re)-미(mi)-솔(sol)-라(la)-도(do′)’, 우조 ‘솔(sol)-라(la)-도(do′)-레(re′)-미(mi′)’, ‘미(mi)-솔(sol)-라(la)-(시)-도(do′)-레(re′)’의 선율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장승타령 대목의 노랫말은 내용상 크게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나무로 쓰일 수 있는 중요한 용도를 말하는 부분이다. 집이나 배를 만들고 악기를 만드는 등 나무가 쓰이는 바를 역사적으로 나무가 쓰여온 용도,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례를 ‘구목위소, 작주거, 오현금, 비파, 춘흥, 동량목, 관판목, 신주’ 등으로 열거하여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장승의 형상과 불운한 처지를 노래하는 부분이다. ‘무죄한 몹쓸 놈들’에 의해 장승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주먹코, 방울눈, 주토칠, 판자 없는 사모, 품대’ 등 장승의 외형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 번째는 무죄에 대한 호소와 방송의 기원을 담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을 보고 놀란 것은 조조의 잘못일 뿐 자신에게는 죄가 없으므로, 선처를 바라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사물들도 오래되되 보면 신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니리) “네 이놈들! 사생이 유명커늘 너희들 왜 우는고! 다시 우는 자 있으면 군법으로 참하리라.” 초원 산곡 아득한데 두세 번 머물러 낙후패졸(落後敗卒) 영솔하야 한 곳을 당도하니 적적산중 송림간에 소리없이 키 큰 장수 노목(怒目)을 질시(叱視)하고 채수염 점잔헌데 엄연히 서 있거늘 조조 보고 대경 질겁하야, “여봐라 정욱아, 나를 보고 우뚝 섰난 저 장수 누기냐 좀 살펴봐라.” “그거 장승이요.” “장승이라니, 장비네 한 일가냐.” 정욱이 여짜오되, “화용도 이수(里數) 표한 장승이온데.” “그럴테지 저 놈이 영웅 나를 속였구나. 네 그 장승놈 잡아들여 군법으로 시행하라.” ‘“예이.” 좌우 군사 소리치고 장승 잡아들일 적에 조조가 잠깐 조우더니 비몽사몽간에 목신(木神)이 현몽을 하는데, (중중모리) 천지만물 삼겨날 제 각색초목이 먼저 나 인황(人皇)씨 신농(神農)씨 구목위소(構木爲巢)를 하얐고, 헌원(軒轅)씨 작주거(作舟車)에 이제불통(以濟不通)을 하얐고, 석상(石上)의 오동목(梧桐木)은 오현금 복판 되야 대순 슬상(膝上)에 비껴 누워 남풍가(南風歌) 지어내어 시르렁 둥덩 탈 제 봉황도 춤추고 산조도 날아드니 그 아니 태평이며, 문왕지 감당목(甘棠木)은 비파성 띄어 있고, 사후영혼 관판목(棺板木)은 백골신체 안장허고, 신발실당 하올 적에 율목(栗木)은 신주(神主)되야 사시절사(四時節祀) 기고일(忌故日)에 만반진수(滿盤珍羞) 설위하고 분향헌작(焚香獻酌) 독축(讀祝)허니 그 소중이 어떠하며, 목물(木物) 팔자가 다 좋으되 이 내 신세 곤귀하야 화산장승이 몇 해련고. 궁궐 동량(棟樑) 못될진대 차라리 다 버리고 대관이나 바랬더니마는 무지한 어떤 놈이 가지 찍어 방천말과 동동이 끊어내야 마판 구수 작도판 개밥통 헛간 가래 소욕(所慾)대로 다헌 후에 남은 것은 목수시켜 어느 험귀(險鬼) 얼굴인지 방울눈 다박수염 주먹코 주토(朱土)칠 팔자 없는 사모풍대 장승이라고 이름지어 행인거래 대도상에 엄연히 세워두니 입이 있으니 말을 하며 발이 있으니 걸어갈까. 유이불문(由而不問)하고 대진하며 기군찬역(欺君簒逆) 아닌 나를 무죄행형(無罪行刑)이 웬일이요. 분간방송(分揀放送) 하옵기를 천만 바래내다.
박봉술 창 《적벽가》 중 장승타령 대목
김진영 외 편저, 『적벽가 전집1』, 박이정, 1998.
장승타령 대목은 노랫말과 음악적 구성 모두 판소리 《적벽가》에서 새롭게 형성된 대목이다. 특징적인 점은 음악적인 면에서 창자별로 다양한 장단과 선율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군사설움〉 대목과 함께 민중들의 삶에 대한 애환을 반영하고, 조조로 대표되는 집권층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동시에 지배자들의 횡포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김진영 외 편저, 『적벽가 전집1』, 박이정, 1998. 이기형, 『필사본 화용도 연구』, 민속원, 2003. 고영화, 「《적벽가》 ‘장승타령’대목의 이본 연구」, 『고전문학과 교육』 5, 한국고전문학교육학회, 2003. 김기형, 「적벽가의 역사적 전개와 작품세계」,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3. 양옥경, 「판소리 《적벽가》 添入대목의 音樂的 具現 樣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이성권, 「적벽가 사설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서정민(徐玎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