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 민요인 〈본조아리랑〉이 형성되기 이전에 불리던 경기 지역의 아리랑
구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 생겨난 이후에 부르기 시작한 악곡명으로, 이전부터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부르던 〈아리랑〉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1910년대 서울ㆍ경기 지역에서 불린 〈자진아리랑〉을 말한다. 이 곡은 경기 지방 〈긴아리랑〉의 영향을 받아 발생된 악곡으로,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5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음들 중 생략되는 음 없이 골고루 사용하여 선율을 구성하고 있으며, 주로 순차 진행한다. 또한 다섯 개의 구성음 중 음계의 최저음인 ‘솔(sol)’로 끝을 맺는 진경토리로 이루어져 있고, 세마치장단에 맞춰 연주한다.
〈구조아리랑〉은 경기도에서 불린 아리랑의 하나로, 강원도 등 지역에서의 아리랑과 달리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의 『만천유고(蔓川遺稿)』와 황현(黃玄, 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 등을 통해 문헌적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만천유고』 〈농부사(農夫詞)〉 중 “아로롱 아로롱 어희야~”란 문구가 나오는데, ‘아로롱’이 ‘아리랑’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이 무렵에 〈아리랑〉이 불렸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이 노래가 어느 지역의 것인지? 음악적으로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문헌의 노래가 어떤 곡인지 알 수 없다. 이후 『매천야록』에는 “임금은 매일 밤마다 전등을 켜놓고 광대들을 불러 ‘신성(新聲)의 염곡(艷曲)’을 연주하게 했는데, 아리랑타령(阿理嫏打令)이라 일컫는다. ~ 〈중략〉 ~ 이일은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가 대궐을 침벌할 때에 이르러서야 중지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1893년 오토리 게이스케가 대궐에 침입하였기 때문에 〈아리랑타령〉은 1893년 이전까지라 볼 수 있다. 또한 〈아리랑타령〉을 ‘심성의 염곡’ 즉 ‘새로운 소리의 고운 노래’라고 설명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서울을 중심으로 불린 노래가 아닌 새로운 노래라 인식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리랑타령〉이 궁궐에서도 연주되었다는 점이다. 음악적으로 즉 악보로 아리랑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1896년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박사가 「Korean Vocal Music(조선의 성악)」이라는 논문을 영문 잡지인 『The Korean Repository(코리안 리포지터리)』에 〈아리랑〉을 오선보에 채보하고, 그 아래 영문 가사를 적어 수록함으로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아리랑〉은 현재 경기명창들에 의해 연주되는 〈구조아리랑〉과 그 선율이 유사하다. 또한 이 글에서 〈아리랑〉은 1883년부터 유행했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경복궁 중건 때 필요한 목재를 나르기 위하여 강원도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출발하여 남한강까지 뗏목을 활용하였는데, 현재 강원도에 전승되고 있는 〈뗏목아리랑〉을 통해서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부른 〈뗏목아리랑〉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경기도 일대에서 불리면서 경기 음악어법으로 바뀌면서 경기도의 아리랑이 만들어 졌으며, 아마 이것이 헐버트에 의해 채보된 아리랑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의회도서관에 소장된 1896년 7월 24일 녹음된 〈아리랑〉 역시 서울ㆍ경기 지역의 〈구조아리랑〉에 해당하는데, 이 노래는 그 당시 한국 유학생들 대부분이 불렀던 점으로 보아 일반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이렇듯 경기도의 〈구조아리랑〉은 강원도 〈아리랑〉을 경기 음악어법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며, 문헌자료나 헐버트의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893년까지는 연주되었다는 점 등을 통해 본다면 19세기 후반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구조아리랑〉은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5음음계이며, 음계를 구성하는 다섯 개의 음을 골고루 사용한다. 그리고 선율은 순차진행하며, 노래가 끝날 때에는 하행하면서 음계의 최저음인 ‘솔(sol)’로 종지함으로, 경기 지방 민요의 특징 중 진경토리에 해당하는 악곡이다. 장단은 3소박 3박의 세마치장단에 맞추어 연주한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3. 아리랑 고개 넘어 아라수 건너 아리랑 아리세계 찾어가네 4. 사람의 한평생 사연도 많고 굽이굽이 감돌아드는 얘기도 많다 5. 우리네 인생이 짧다고 해도 이어지면 천년이요 손잡으면 만년이라(후략)
〈구조아리랑〉은 경복궁 중건 때 강원도의 목재가 뗏목을 활용하여 남한강 수운으로 이동할 때 이들에 의해 강원도의 아리랑이 서울·경기지역에 전파되면서 경기도의 일반적인 음악어법인 진경토리로 변화되어 불렸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헐버트 채보의 〈아리랑〉이 〈구조아리랑〉이다. 뿐만 아니라 폴리돌음반에서 1933년 김운선(金雲仙, 명:난초(蘭草), 호:죽파(竹坡), 1911~1989)이 가야금병창으로 녹음한 바도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구조아리랑〉은 19세기 말 무렵 발생된 이후 20세기 초까지 다양한 형태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받았던 곡으로 보인다.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6. 한국문화재단, 『아리랑』, 그래픽코리아, 2021. 김영운, 「〈아리랑〉 형성과정에 대한 음악적 연구」, 『한국문학과 예술』 7, 2011. 이보형, 「아리랑소리의 根源과 그 變遷에 관한 音樂的 硏究」, 『한국민요학』 5, 1997. 이용식, 「강원도 〈아라리〉의 음악적 특징과 원형적 특질」, 『한국민요학』 25, 2009.
이윤정(李侖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