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역과 조율법 편경은 십이율(十二律) 사청성(四淸聲)의 음으로 구성되는 점에서는 편종과 같고, 실제 음역은 편종보다 한 옥타브가 높다. 편경의 조율은 경을 제작할 때 경의 면을 깍고 갈아서 지정된 음고를 낸다. 『악학궤범』의 특경 조에는 고정음을 가진 특종, 특경, 편종, 편경의 음 맞추는 법에 대한 상세 설명이 부기되어 있다. ‘두꺼워서 소리가 높은 경우, 면을 갈아서 얇게 하고, 얇아서 소리가 낮은 경우 아래 끝을 갈아서 음을 맞춘다’, ’음이 고르지 못한 것은 다시 제작하는 쪽이 낫다‘고 하면서, 특히 경 조율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적 방법을 제시하였고 있다. 가령 황종을 다수로 만든 다음 한 개씩 율관을 불어 맞추면 다 같은 음이 나올 것 같지만, 대나무로 만든 율관에서 나오는 소리와 경을 쳐서 내는 소리의 차이 때문에 각 각의 황종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먼저 율관에 맞춰 황종음을 얻은 다음 음에 밝은 이가 경과 종의 음정이 맞게 조율한 뒤, 나머지 음은 그 경과 종의 황종을 근거로 나머지 음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악학궤범』에 기술된 이 같은 조율법 안내는 조율과 율관의 사용, 악기 재료에 따른 미세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한 실전에서 나온 방법론으로서 의의가 있다.
○ 구음과 표기법 악기의 구음은 없으며 율명으로 표기한다. ○ 연주법 편경은 두단으로 된 가자에 각각 8매씩 매달고, 연주자가 채의 끄트머리에 뿔을 끼워 만든 각퇴로 경의 고(鼓) 부분을 쳐서 소리 낸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음악의 계통에 따라 채를 쥐는 왼손, 오른손 사용이 지정되어 있었다. 즉, 아악(雅樂) 연주 시에는 황종에서 임종까지는 오른손, 이칙에서 청협종까지는 왼손으로 연주하고, 속악(俗樂)은 양손을 자유로이 쓴다는 것이다. 아악에서의 좌우 손 사용이 언제까지 유지되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고, 현재는 모든 악곡을 오른손으로만 연주한다.
아악인 <문묘제례악>과 세종조 신악에서 유래한 <종묘제례악> 및 여민라 계통의 악곡(〈여민락만〉, 〈여민락령〉, 〈해령〉), 당악계통의 〈낙양춘〉·〈보허자〉 등에 사용된다.
○ 제작 및 관리 방법 경을 제작하는 과정은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돌을 고르고 검수한다. 돌을 본격적으로 재단하기에 앞서 돌의 균열이나 잡석을 걸러내야 하므로, 눈으로 돌의 무늬를 보고 각퇴로 쳐서 소리를 들어보며 일정한 소리를 내는지 확인한다. 둘째, 본(本)을 그린다. 돌에 ‘ㄱ’ 자 형태를 그리는 작업으로, 『악학궤범』의 황종ㆍ임종ㆍ청협종 경석의 규격 기록에 의거하여 나무판을 재단해 경석 위에 올려 본을 그린다. 열다섯 개의 경석은 그 크기가 거의 같고 두께를 달리하여 음의 차이를 조절하나, 열여섯 번째 ‘청협종’만은 두께뿐 아니라 크기도 다른 경편과 다르다. 셋째, 경석을 자른다. 두 명이 쇠줄을 위아래로 움직임과 동시에 모래(금강사)를 뿌려가며 선에 맞게 자르는데, 석재를 절단할 때는 절단할 부위에 물을 뿌려가면서 진행한다. 물을 뿌리지 않으면 경석도 망가지고 고열로 톱날이 망가지기도 한다. 절단한 경석은 금강사를 묻힌 숫돌 수십 개로 그 면과 모서리를 미세하게 연마한다. 넷째, 경석을 가자에 매달 수 있도록 구멍을 뚫는다. 구멍을 뚫으면 경석의 음높이가 많이 내려가기 때문에, 이 작업은 조율 전에 진행한다. ‘ㄱ’자 돌 꼭짓점으로부터 가로 5cm, 세로 5cm 떨어진 지점에서 각각 수선을 그어서 만나는 점을 돌 재단용 대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다. 이때 물과 금강사 가루를 계속 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을 제작한 후에는 조율하여 음을 맞춘다. 전통적인 조율이 악기장의 청력과 감각에 주로 의존하였다면 현재는 표준화된 음고표와 조율 도구 등을 활용한다. 본래 경석을 연마할 때는 금강사를 묻힌 숫돌 수십 개가 사용되었고, 원하는 강도에 따라 거칠기 정도가 다른 숫돌을 사용하였다. 연마 시에는 옆면을 갈면 두께가 얇아져 음이 낮아지고 모서리 부분을 갈면 음이 높아지는 원리를 이용한다. 먼저, 편경의 옆면을 갈아서 음을 낮추는데 본음보다는 낮으나 근삿값에 가깝도록 연마한다. 그리고 고(鼓)와 고(股)의 모서리 부분을 갈아서 음을 높이면서 정확하게 조율한다. 각퇴로 쳐서 음의 높낮이를 맞추면서 여음과 배음을 잡는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한다. 현대적 방식의 조율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물을 사용하는 습식조율과 건조 후 이루어지는 건식조율이 있다. ○ 역사적 변천 대성아악 수용 이후, 편경은 대성아악의 제도에 따라 정성과 중성의 두 종류의 체계로 전승되었다. 고려 말 명으로부터 아악 수용 의지를 표명한 적이 있었으나 불발되었고, 조선 태종 때에, 명의 아악이 들어올 때 편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1425년(세종 7)에 경기도 남양에서 경석이 발견되면서 편경의 국내 제작이 이루어졌다. 1427년(세종 9)에 12매 편경(磬) 한틀이 제작된 후, 1426년(세종 8)부터 1428년(세종 10)까지 총 528매의 경이 생산되었다. 이로서 궁중의 각종 의례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과정에서 축적된 조선전기 편경 제작에 관한 총체적인 정보는 『악학궤범』에 도설되어 정리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악기의 파손 및 관리 소홀로 인한 음정 변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고, 조선후기에는 화재로 인한 손실이나 제례의 신설 사유에 따라 경의 조율 및 제작이 필요하게 되었다. 1744년(영조 20) 인정전 화재, 1776년(정조 즉위년), 사도세자를 위한 경모궁제례 시행, 1804년(순조 4)에는 사직서 화재가 있었을 때 각각 조성청을 설치하고, 필요에 따른 소량의 편경이 제작되었으며, 음정을 바로잡는 문제에 대한 지적 및 정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실록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20세기 이후로는 1935년에 이왕직아악부에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요청으로 편종․편경 한 틀을 만들어 만주국(滿洲國)의 건국기념 선물로 보낸 적이 있고, 20세기 중반부터는 국립국악원 및 국악전문 교육기관, 연주 단체의 필요에 따라 편경 제작이 이루어졌다. 2012년, 편종과 편경제작 기술이 국가무형유산 악기장의 종목으로 신규 지정되어 현재 김현곤이 보유자로 그 매을 잇고 있다.
이장원(李壯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