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역과 조율법 편종은 십이율(十二律) 사청성(四淸聲)의 음으로 구성되는 점에서는 편경과 같고, 실제 음역은 편경보다 한 옥타브가 낮다. 편종의 조율은 종을 제작할 때 각각의 음고에 맞춘다. 『악학궤범』의 특경 조에는 고정음을 가진 특종, 특경, 편종, 편경의 음 맞추는 법에 대한 상세 설명이 부기되어 있다. ‘두꺼워서 소리가 높은 경우, 면을 갈아서 얇게 하고, 얇아서 소리가 낮은 경우 아래 끝을 갈아서 음을 맞춘다’, ’음이 고르지 못한 것은 다시 제작하는 쪽이 낫다‘고 하면서, 특히 경 조율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적 방법을 제시하였고 있다. 가령 황종을 다수로 만든 다음 한 개씩 율관을 불어 맞추면 다 같은 음이 나올 것 같지만, 대나무로 만든 율관에서 나오는 소리와 종을 쳐서 내는 소리의 차이 때문에 각 각의 황종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먼저 율관에 맞춰 황종음을 얻은 다음 음에 밝은 이가 종의 음정이 맞게 조율한 뒤, 나머지 음은 그 경과 종의 황종을 근거로 나머지 음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악학궤범』에 기술된 이 같은 조율법 안내는 조율과 율관의 사용, 악기 재료에 따른 미세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한 실전에서 나온 방법론으로서 의의가 있다.
○ 구음과 표기법 악기의 구음은 없으며 율명으로 표기한다. ○ 연주법 편종은 두단으로 된 가자에 각각 8매씩 매달고, 연주자가 채의 끄트머리에 뿔을 끼워 만든 퇴로 종의 ’수(隧)‘ 부분을 쳐서 소리 낸다. 이와 관련하여 『세종실록』 의 기사(세종 11년 11월 28) 에는 본래 중국의 편종에는 표시가 따로 없지만, ’수‘의 위치를 정확하게 치기 위해서는 별도로 ’수형(隧形)‘을 주조하여 연주자가 실수 하지 않도로 하자’는 논의가 받아들여진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편종이 정원형(正圓形)이 아니어서 그 종의 정면과 옆에서 나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편, 종을 칠 때는 『악학궤범』에 따르면 음악의 계통에 따라 채를 쥐는 왼손, 오른손 사용이 지정되어 있었다. 즉, 아악(雅樂) 연주 시에는 황종에서 임종까지는 오른손, 이칙에서 청협종까지는 왼손으로 연주하고, 속악(俗樂)은 양손을 자유로이 쓴다는 것이다. 아악에서의 좌우 손 사용이 언제까지 유지되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고, 현재는 모든 악곡을 오른손으로만 연주한다.
○ 연주악곡 아악인 <문묘제례악>과 세종조 신악에서 유래한 <종묘제례악> 및 여민라 계통의 악곡(〈여민락만〉, 〈여민락령〉, 〈해령〉), 당악계통의 〈낙양춘〉·〈보허자〉 등에 사용된다.
○ 제작 및 관리 방법 『악학궤범』에는 종의 규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편종과 달리 우리나라 편종은 열여섯 개의 크기가 같고 종의 두께가 다른 종을 사용해 음의 높낮이를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종의 제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종의 모형, 거푸집틀 목형 만들기 요즘은 종을 제작할 때 밀랍과 실리콘을 이용하여 거푸집을 만든다. 그러나 조선 초에 기록된 전통적인 제작방법은 이와는 다르다. 종의 모형과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은 나무로 제작하고, 거푸집은 고운 흙으로 만든다. 2. 흙으로 거푸집 만들기 거푸집 제작 틀에 목형을 얹고, 흰색의 이연제를 뿌린 뒤 황토와 소금을 섞은 고운 흙을 체에 걸러 제작 틀에 채워 모양을 찍어낸다. 이때 흙을 체로 거르는 이유는 고운 흙을 채워야 종의 모양이 선명하게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흙으로 만든 거푸집의 표면이 조금 더 곱고 단단해질 수 있도록 불로 그을음을 주어 겉의 거푸집을 완성한다. 이후 가운데 들어갈 중자 거푸집을 만들고, 그 위에 겉의 거푸집을 잘 맞추어 위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쇳물을 부으면 종에 구멍이 난다든지 삐뚤어지게 된다. 거푸집이 완성되면 쇳물을 붓는 주입구만 남긴 채 흙으로 거푸집의 사이사이를 꼼꼼히 막는다. 쇳물이나 가스가 새게 되면 종의 모양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3. 쇳물녹이기 종의 재료는 구리, 주석(놋쇠), 아연, 납, 인을 일정 비율로 섞어 사용하며 온도가 1200℃ 이상 되어야 쇳물을 녹일 수 있다. 쇳물을 푸는 바가지에는 흑연을 바르는데, 이는 쇳물을 붓는 동안 온도를 유지하고 바가지에 쇳물이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4. 쇳물붓기 재료를 넣고 쇳물이 끓기 시작하면 쇳물을 저어 떠오르는 불순물을 제거한 후 거푸집에 쇳물을 붓는다. 5. 거푸집제거 쇳물을 붓고 가스가 빠지면 바로 거푸집을 제거한다. 6. 외형다듬기 및 조율 거푸집을 제거한 종은 쇳물을 주입했던 쇳물 줄기를 제거하고 외형을 다듬는다. 이때 종의 안쪽을 다듬으면서 제1차 조율을 한다. 흙으로 만든 거푸집으로 인해 종의 표면이 거칠어 끌과 칼 등으로 긁어내는 외형 다듬질에 손이 더 많이 간다. 제1차 조율 시에는 갈아내는 부분이 많으므로 종의 온도가 많이 올라간다. 종의 온도가 올라가면 음높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도중에 식힌 후 음높이를 확인한다. 며칠 후 제2차 조율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정밀 조율하며 마친다.
○ 역사적 변천 대성아악 수용 이후, 편종은 대성아악의 제도에 따라 정성과 중성의 두 종류의 체계로 전승되었다. 고려 말 명나라에게 사신을 보내어 아악을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 적이 있었으나 불발되었고, 조선 태종 6년 명의 아악이 들어올 때 편종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종 대의 아악 정비 과정에서 제작 방법에 대한 상세한 고증과 논의가 진행되었고, 1429년(세종 11)부터 한강에 주종소를 설치하여 편종을 만들었다. 그 수량은 편종과 짝을 이루는 편경의 제작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전기 편종 제작에 관한 총체적인 정보는 『악학궤범』에 도설되어 정리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악기의 파손 및 관리 소홀로 인한 음정 변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고, 조선후기에는 화재로 인한 손실이나 제례의 신설 사유에 따라 종의 조율 및 제작이 필요하게 되었다. 1744년(영조 20) 인정전 화재, 1776년(정조 즉위년), 사도세자를 위한 경모궁제례 시행, 1804년(순조 4)에는 사직서 화재가 있었을 때 각각 조성청을 설치하고, 필요에 따른 소량의 편경이 제작되었으며, 음정을 바로잡는 문제에 대한 지적 및 정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실록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20세기 이후로는 1935년에 이왕직아악부에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요청으로 편종․편경 한 틀을 만들어 만주국(滿洲國)의 건국기념 선물로 보낸 적이 있고, 20세기 중반부터는 국립국악원 및 국악전문 교육기관, 연주 단체의 필요에 따라 편경 제작이 이루어졌다. 2012년, 편종과 편경제작 기술이 국가무형유산 악기장의 종목으로 신규 지정되어 현재 김현곤이 보유자로 그 매을 잇고 있다.
이장원(李壯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