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높이가 다른 종(鐘)을 나무틀에 매달아 쇠뿔 망치로 쳐서 연주하는 금부(金部)의 유율 타악기
편종은 아악기의 팔음 분류 중 금부(金部)에 속하는 고정음을 가진 타악기로, 음높이가 다른 열여섯 개의 종을 2단 나무틀(가자)에 매달아 각퇴로 쳐서 연주한다. 1116년(고려 예종 11)에 송나라로부터 유입되었으며,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박연과 남급 등의 주도 하에 주종소(鑄鍾所)를 두고 두께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 옛 제도를 채택하여 자주적인 기술로 제작되었다. 십이율 사청성의 음으로 구성되며 편경과 함께 음률의 표준을 제시하고 ,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 등의 궁중 의례 음악에 사용된다.
편종은 중국 고대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제작되어 의례 음악 연주에 편성되어 왔다. 현전하는 중국 편종 유물 중에는 한틀에 매단 경의 수가 9개 13개 등으로 다양하고, 전국시대(기원전 약 433년경) 증후을(曾侯乙) 묘에서는 65개의 종이 3층으로된 받침대에 8그룹으로 분류되어 걸린 예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예종 11(1116)년에 북송의 대성아악의 일부로 수용되었는데, 12매의 ‘중성’ 종과, 16매의 ‘정성’ 종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 구조와 형태
편종은 16개의 종과 종을 매다는 2단으로 된 틀 ‘가자’로 구성되며, 종을 치는 채, 각퇴가 있다. 종의 모양은 중국 종과 달리 우리나라 편종은 상하가 직선이 아닌 둥그스름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밑 부분이 타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겉면에 마유(馬乳)라고 하는 작은 원형의 돌출 부분들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것은 종의 울림을 아름답게 하되 그 여운이 너무 길지 않게 하는 기능이 있다.
편종의 조율은 ‘두께는 같고, 길이를 달리하는 것’과, ‘길이는 같고, 두께를 달리하는 것’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북송 대의 두께로 조율하는 방법을 따르고 있다. 편종의 지름은 19cm, 높이는 27.5cm이고, 두께가 두꺼울수록 진동수가 높아 높은음을 내는 원리가 적용되어 최저음인 황종의 종 두께는 최저음인 황종의 종이 2mm, 최고음인 청협종의 종이 4mm 가량으로 가장 얇다.
가자는 두 개의 기둥 아래쪽에는 구멍을 뚫은 상자 모양의 방대와 사자 한 쌍을 올리고 기둥을 꽂아서 고정한다. 사자의 형상은 종소리의 웅장함을 상징한다. 이 틀의 양편에는 용두(龍頭)를 조각하고 세 개의 공작, 치미유소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가자의 아랫단에는 황종부터 임종까지, 윗단에는 이칙부터 청협종까지 배열되는데 아랫단은 맨 오른쪽에 낮은음을 매서 왼쪽으로 갈수록 음이 높아지게, 윗단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음이 높아지도록 종을 맨다, 종을 매달 때는 종 상단에 부착된 고리를 이용해 나무 틀에 고정시킨다. 『악학궤범』에 편종의 재료와 규격, 세부 장식, 색채 등이 포함된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
○ 음역과 조율법 편종은 십이율(十二律) 사청성(四淸聲)의 음으로 구성되는 점에서는 편경과 같고, 실제 음역은 편경보다 한 옥타브가 낮다. 편종의 조율은 종을 제작할 때 각각의 음고에 맞춘다. 『악학궤범』의 특경 조에는 고정음을 가진 특종, 특경, 편종, 편경의 음 맞추는 법에 대한 상세 설명이 부기되어 있다. ‘두꺼워서 소리가 높은 경우, 면을 갈아서 얇게 하고, 얇아서 소리가 낮은 경우 아래 끝을 갈아서 음을 맞춘다’, ’음이 고르지 못한 것은 다시 제작하는 쪽이 낫다‘고 하면서, 특히 경 조율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적 방법을 제시하였고 있다. 가령 황종을 다수로 만든 다음 한 개씩 율관을 불어 맞추면 다 같은 음이 나올 것 같지만, 대나무로 만든 율관에서 나오는 소리와 종을 쳐서 내는 소리의 차이 때문에 각 각의 황종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먼저 율관에 맞춰 황종음을 얻은 다음 음에 밝은 이가 종의 음정이 맞게 조율한 뒤, 나머지 음은 그 경과 종의 황종을 근거로 나머지 음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악학궤범』에 기술된 이 같은 조율법 안내는 조율과 율관의 사용, 악기 재료에 따른 미세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한 실전에서 나온 방법론으로서 의의가 있다.
○ 구음과 표기법 악기의 구음은 없으며 율명으로 표기한다. ○ 연주법 편종은 두단으로 된 가자에 각각 8매씩 매달고, 연주자가 채의 끄트머리에 뿔을 끼워 만든 퇴로 종의 ’수(隧)‘ 부분을 쳐서 소리 낸다. 이와 관련하여 『세종실록』 의 기사(세종 11년 11월 28) 에는 본래 중국의 편종에는 표시가 따로 없지만, ’수‘의 위치를 정확하게 치기 위해서는 별도로 ’수형(隧形)‘을 주조하여 연주자가 실수 하지 않도로 하자’는 논의가 받아들여진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편종이 정원형(正圓形)이 아니어서 그 종의 정면과 옆에서 나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편, 종을 칠 때는 『악학궤범』에 따르면 음악의 계통에 따라 채를 쥐는 왼손, 오른손 사용이 지정되어 있었다. 즉, 아악(雅樂) 연주 시에는 황종에서 임종까지는 오른손, 이칙에서 청협종까지는 왼손으로 연주하고, 속악(俗樂)은 양손을 자유로이 쓴다는 것이다. 아악에서의 좌우 손 사용이 언제까지 유지되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고, 현재는 모든 악곡을 오른손으로만 연주한다.
○ 연주악곡 아악인 <문묘제례악>과 세종조 신악에서 유래한 <종묘제례악> 및 여민라 계통의 악곡(〈여민락만〉, 〈여민락령〉, 〈해령〉), 당악계통의 〈낙양춘〉·〈보허자〉 등에 사용된다.
○ 제작 및 관리 방법 『악학궤범』에는 종의 규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편종과 달리 우리나라 편종은 열여섯 개의 크기가 같고 종의 두께가 다른 종을 사용해 음의 높낮이를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종의 제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종의 모형, 거푸집틀 목형 만들기 요즘은 종을 제작할 때 밀랍과 실리콘을 이용하여 거푸집을 만든다. 그러나 조선 초에 기록된 전통적인 제작방법은 이와는 다르다. 종의 모형과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은 나무로 제작하고, 거푸집은 고운 흙으로 만든다. 2. 흙으로 거푸집 만들기 거푸집 제작 틀에 목형을 얹고, 흰색의 이연제를 뿌린 뒤 황토와 소금을 섞은 고운 흙을 체에 걸러 제작 틀에 채워 모양을 찍어낸다. 이때 흙을 체로 거르는 이유는 고운 흙을 채워야 종의 모양이 선명하게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흙으로 만든 거푸집의 표면이 조금 더 곱고 단단해질 수 있도록 불로 그을음을 주어 겉의 거푸집을 완성한다. 이후 가운데 들어갈 중자 거푸집을 만들고, 그 위에 겉의 거푸집을 잘 맞추어 위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쇳물을 부으면 종에 구멍이 난다든지 삐뚤어지게 된다. 거푸집이 완성되면 쇳물을 붓는 주입구만 남긴 채 흙으로 거푸집의 사이사이를 꼼꼼히 막는다. 쇳물이나 가스가 새게 되면 종의 모양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3. 쇳물녹이기 종의 재료는 구리, 주석(놋쇠), 아연, 납, 인을 일정 비율로 섞어 사용하며 온도가 1200℃ 이상 되어야 쇳물을 녹일 수 있다. 쇳물을 푸는 바가지에는 흑연을 바르는데, 이는 쇳물을 붓는 동안 온도를 유지하고 바가지에 쇳물이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4. 쇳물붓기 재료를 넣고 쇳물이 끓기 시작하면 쇳물을 저어 떠오르는 불순물을 제거한 후 거푸집에 쇳물을 붓는다. 5. 거푸집제거 쇳물을 붓고 가스가 빠지면 바로 거푸집을 제거한다. 6. 외형다듬기 및 조율 거푸집을 제거한 종은 쇳물을 주입했던 쇳물 줄기를 제거하고 외형을 다듬는다. 이때 종의 안쪽을 다듬으면서 제1차 조율을 한다. 흙으로 만든 거푸집으로 인해 종의 표면이 거칠어 끌과 칼 등으로 긁어내는 외형 다듬질에 손이 더 많이 간다. 제1차 조율 시에는 갈아내는 부분이 많으므로 종의 온도가 많이 올라간다. 종의 온도가 올라가면 음높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도중에 식힌 후 음높이를 확인한다. 며칠 후 제2차 조율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정밀 조율하며 마친다.
○ 역사적 변천 대성아악 수용 이후, 편종은 대성아악의 제도에 따라 정성과 중성의 두 종류의 체계로 전승되었다. 고려 말 명나라에게 사신을 보내어 아악을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 적이 있었으나 불발되었고, 조선 태종 6년 명의 아악이 들어올 때 편종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종 대의 아악 정비 과정에서 제작 방법에 대한 상세한 고증과 논의가 진행되었고, 1429년(세종 11)부터 한강에 주종소를 설치하여 편종을 만들었다. 그 수량은 편종과 짝을 이루는 편경의 제작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전기 편종 제작에 관한 총체적인 정보는 『악학궤범』에 도설되어 정리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악기의 파손 및 관리 소홀로 인한 음정 변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고, 조선후기에는 화재로 인한 손실이나 제례의 신설 사유에 따라 종의 조율 및 제작이 필요하게 되었다. 1744년(영조 20) 인정전 화재, 1776년(정조 즉위년), 사도세자를 위한 경모궁제례 시행, 1804년(순조 4)에는 사직서 화재가 있었을 때 각각 조성청을 설치하고, 필요에 따른 소량의 편경이 제작되었으며, 음정을 바로잡는 문제에 대한 지적 및 정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실록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20세기 이후로는 1935년에 이왕직아악부에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요청으로 편종․편경 한 틀을 만들어 만주국(滿洲國)의 건국기념 선물로 보낸 적이 있고, 20세기 중반부터는 국립국악원 및 국악전문 교육기관, 연주 단체의 필요에 따라 편경 제작이 이루어졌다. 2012년, 편종과 편경제작 기술이 국가무형유산 악기장의 종목으로 신규 지정되어 현재 김현곤이 보유자로 그 매을 잇고 있다.
편종은 모두 십이율 사청성의 음으로 구성되어 편경과 함께 아악의 음률 기준을 확립하는 핵심적인 정음 악기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세종 대에는 편종의 제도적 근거와 제작 기술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주종소를 설치하여 궁중 의례에 필요한 수량을 제작·사용함으로써, 중국 음악에 의존하던 악기 체계를 벗어나 국가 음악 제도의 자주성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편종의 제작 규격과 조율법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악학궤범』에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과학적 악기 제작 기술과 음악 이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편종은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 등 국가적 의례 음악에 편성되어 유교적 이념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제작 과정에는 합금·주조·조율 등 고난도의 전통 공예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제작 기술은 2012년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종목으로 지정되어 전승기반을 마련하였다.
국립국악원, 『국악기 연구보고서』 2010, 국립국악원, 2010. 국립국악원, 『국악기 연구보고서』 2011, 국립국악원, 2011. 국립무형유산원,『악기장 편종ㆍ편경』, 민속원, 2016. 송혜진,『한국악기』, 열화당, 2001. 장사훈,『세종조음악연구 –세종대왕의 음악정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2. 장사훈,『한국악기대관』,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69. 국립국악원(https://www.gugak.go.kr)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
이장원(李壯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