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의 고달픈 신세를 자탄하는 내용의 서도잡가.
서도 지역에서 발생한 어업노동요로, 민요ㆍ잡가ㆍ대악부(극)로 불렸으며, 일제 강점기를 거쳐 서도잡가의 한 곡으로 정착되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풍랑을 겪으면서 고기를 잡는 고달픈 어부의 생활상을 주제로 변형 유절 형식으로 노래한다.
서도잡가 배따라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불렸는지 알 수 없으나, 사설은 1914년 『신구잡가』에 처음 수록되었고, 음원은 1912년 이정화ㆍ문영수가 〈평앙주달타령〉ㆍ〈해상주달타령〉의 곡명으로 취입된 것으로 보아 1912년 이전부터 불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 역사적 변천과 과정
1914년 『신구잡가』 이후 1915년 『정정증보신구잡가』, 『증보신구잡가』, 『고금잡가편』, 『무쌍신구잡가』 등, 1920년대 『신정증보신구잡가』, 『가곡보감』 등, 1930년대 『정선조선가요집』, 1950년대 『대증보무쌍유행신구잡가Ⅱ』 잡가집에 꾸준히 수록되어 전해진다. 1912년 최초의 음원 발매 이후, 1920~1930년대 양우석ㆍ표연원ㆍ이진봉ㆍ최순경ㆍ박월정ㆍ김칠성 등 다양한 서도 창부 및 예기들에 의해 꾸준히 음원이 취입되었고, 해방이후에는 장학선ㆍ이정렬ㆍ김춘홍, 1970년대에는 오복녀 등에 의해 꾸준히 녹음되었다. 현재 불리는 배따라기의 사설은 김정연 악보에 근거를 두고 있다.
○ 연행시기 및 장소
배따라기는 191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불리고 있는 악곡으로, 광무대ㆍ장안사ㆍ단성사 등의 극장에서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연행된다.
○ 음악적 특징
음 구조는 레(re)-미(mi)-솔(sol)-라(la)-도(do′)’의 5음음계로, ‘레-라-도’가 주요선율골격을 이루고 ‘레’ 음에서 종지하고 ‘라’ 음은 위로 치켜 떨어주듯이 요성하는 전형적인 수심가토리에 해당한다. 박자구조는 3소박 세마치장단을 기본으로 하지만 각 절의 시작 부분에서 3소박 2박이 혼용되어 불규칙한 장단으로 구성되며, 특히 이 부분에서 헤미올라 리듬이 자주 사용된다.
○ 연주 악대 및 악기 편성 장구 반주에 맞추어 앉아서 노래한다. ○ 형식과 구성 후렴구가 있고, 절이 구분되지만 각 절의 길이 및 선율이 달라지는 형태로 불분명한 유절 형식으로 구성된다. 오복녀 창 <배따라기>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3절 구성으로 도입부분-후렴구-1절-후렴구-2절-후렴구-3절-후렴구로 구성된다.
배따라기의 사설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락은 뱃사람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 두 번째 단락은 바다에 나갔다 풍랑을 만나 어렵게 살아돌아오는 장면, 세 번째 단락은 가족과 극적 상봉한 후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는 장면이다. 윤회/윤색은/다지나/가고/ 황국/단풍이/다시돌아/오누나 에/지화/자/좋/다/ 천생만민은/필수지업이/다각각/달라/ 우리는/구태여/선인이/되어/ 먹는밥은/사자밥이요/자는잠/은/칠성판/이라지/ 옛날노인/하시던/말씀은/속언/속담으로/알아를/왔더니/ 후략... 오복녀 노래, <인간문화재 <오복녀 서도소리 제3집>(좌창)>, 서울음반, 1994.
배따라기는 1910년대에 제작된 음원이 남아 있는 악곡으로,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서도잡가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배따라기는 1910년대 평양날탕패가 서울 중앙무대에서 불렀던 대표적 악곡으로, 당시 서도 명창들이 중앙무대에 진출하여 흥행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용적으로도 뱃사람들의 어려움을 서사체로 풀어낸 작품으로 높은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8. 김종진, 「배따라기의 존재 양상과 문학 교육적 의미」, 『우리문학연구』 28, 2009. 이성초, 「서도잡가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이성초(李星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