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레질은 조선 후기 이앙법이 이후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벼농사의 경우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논에 물을 퍼서 채우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아 논이 마르거나 특히 물이 있어야만 가능한 모심기 때에 논에 물을 충분하게 퍼 넣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장시간 용두레질을 해야 한다. 장시간 일을 하다 보면 지루함이 따르게 되고, 이 지루함과 힘듦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소리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역 사정에 따라 여러 명이 함께 일을 할 경우 함께, 혹은 혼자서 물을 퍼 올릴 경우에는 독창의 형태로 불리면서 지역 혹은 가창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불렸을 것이다. 지역마다 혹은 가창자별 동일한 유형의 사설을 얹어 부를지라도 약간의 차이가 나타났을 것이다.
논에 물을 퍼 올리던 작업은 1960년대 양수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이후 사라졌다. 따라서 소리 역시 작업이 없어지는 시점에 부르지 않게 되었으며, 과거 이 일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전하며, 지역에 따라 이를 보존하기 위하여 논농사와 관련된 소리와 함께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하고 있다.
(물들 퍼보세) (에!)
(메)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간다(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물줄은 하난데 용두렌 열 쌍일세(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이월 초하루 쥐불 놓는 달(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삼월 삼일은 제비가 오구요(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셨나(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오월 단오날 그네를 뛰며는(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모기가 안 물어 잠자기 좋구나(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육간 대청에 전후퇴 달구요(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호박 주초(主礎)에 푸녕 달구요(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건드럭지 게도 잘도 사났네(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팔월 한가위 달도 밝구나 (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구월 구일은 제비가 떠나네(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여나믄 시절에 잘 먹고 놀았건만(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동지 팥죽은 맛도 좋구나아아(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아아 일년은 열두달 다 지나 가누나(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큰아기 나이는 이구나 십팔 일세(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딸도 스무살 사위도 스무살(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메) 궁합이 좋아서 잘들 사누나 (받) 어허야 용두레 물 올라가누나
(아 잘 올라간다)
이윤정(李侖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