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빨라지는 장단 틀 안에서 다양한 선율 변화와 연주기교를 보여주는 대금독주곡
대금산조는 남도지방의 무속음악인 시나위와 판소리의 기악화 과정에서 생성된 대표적인 기악독주곡이다.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의 네 악장을 기본 형식으로 삼고, 후대로 전승되면서 호걸제, 메나리조 등 여러 조가 추가되고 변청과 변조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선율이 더해지면서 현재 박종기류, 한주환류, 한범수류, 이생강류, 서용석류, 강백천류, 김동진류, 원장현류 등 여러 유파의 산조가 전승되고 있다.
산조는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금옥총부(金玉叢部)』의 〈퉁소심방곡〉과 〈가야금심방곡〉기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초기 산조는 풍류방에서 연주되던 독주시나위 형태로 즉흥성이 강한 허튼가락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판소리》, 〈봉장취〉 등 여러 음악에 영향을 받으면서 산조는 차츰 악장과 조가 구성되고 선율이 정형화되면서 형식 체계를 갖추었다. 대금산조는 20세기 전기에 박종기와 강백천 등에 의해 형성되었고 후대로 전승되면서 가락이 늘어나고 시김새가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 역사적 변천 과정 대금산조는 1920~30년대에 소리더늠과 시나위더늠의 두 갈래로 형성되었다. 판소리를 근간으로 한 소리더늠 산조는 박종기(朴鍾基, 1879~1941)에서 비롯되었다. 박종기의 대금산조가 유성기 음반에 수록되면서 초기 산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에 박종기를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일컫는다. 박종기의 제자 한주환(韓周煥, 1904~1963)은 변청기법으로 다양한 선율을 새로 짜서 현행 대금산조의 모태가 되는 까닭에 그를 대금산조의 중시조라 일컫는다. 동시대에 한범수 역시 박종기 음악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산조를 구성하였다. 한주환의 산조는 서용석, 이생강 등에게 전해지면서 서로 각기 다른 개성을 담은 산조로 분화되었다. 한편,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는 강백천을 효시로 하며, 이 산조는 육자배기와 같은 남도민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강백천의 산조는 김동표에게 전승되며 유파의 명맥을 잇고 있다.
○ 음악적 특징 대금산조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장단의 네 틀 형식을 기본으로 한다. 1세대인 박종기 산조는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의 세틀 형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초기 산조의 형식을 보여주고, 2세대인 한주환 산조에서 중중모리가 추가되면서 현재와 같은 대금산조의 형식이 갖춰지게 되었다. 3세대인 이생강과 서용석에 이르러서는 다스름이 추가되고 일부 연주에서 엇모리, 동살풀이, 휘모리 등이 더해져 악장이 점점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대금산조는 우조, 계면조, 호걸제, 메나리조 등 판소리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조로 구성된다. 이 조는 성음과 선법을 지칭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성음은 소리의 음색을 가리키는데, 우조는 “꿋꿋하고 씩씩하게”, 계면조는 “애절하고 슬프게”, 호걸제는 “씩씩하고 호탕하게”, 메나리조는 우리나라 동부민요 스타일로 연주하라는 뜻이다. 선법은 음정관계와 음의 기능을 나타내는 용어로 우조는 솔(sol)-라(la)-도(do)-레(re)-미(mi), 계면조는 미(mi)-라(la)-도시(do)-레(re), 메나리조는 미(mi)-솔(sol)-라(la)-도(do)-레(re)의 음정관계를 의미한다. 우조ㆍ계면조ㆍ호걸제는 1세대 박종기 산조에서 이미 형성되었으며, 후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조가 추가되거나 세분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대금산조는 청(淸, 중심음)을 바꾸는 변청이나 조(調, 선법)를 바꾸는 변조 기법을 활용하여 다채로운 선율로 변화한다. 변청 기법은 대부분 계면조에서 완전 4도나 5도 관계로 이루어진다. 1세대 산조에서는 진양조에서 일시적인 변청이 매우 짧게 한 장단 나타나는 정도였으나 2세대 산조에 이르러 변청 선율이 길게 형성되었고 3세대 산조에서는 여러 종류의 변청 기법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선율을 구사하였다. 이밖에 계면조에서는 미(mi)의 단3도 위인 솔(sol)을 반음으로 꺾어서 중심음이 라(la)에서 미(mi)로 바뀌는 듯한 일시적 변청도 자주 사용한다. 변조 기법은 변청보다 더욱 복합적인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우조에서 계면조로, 계면조에서 우조나 호걸제로 바뀌는 등 여러 변조 기법을 사용하여 선율을 구성하는데, 후대로 전승되면서 변조 기법이 더 다양해졌다. 또한 대금산조에는 여러 갈래 선율이 수용되었다. <봉장취> 선율로는 새소리 선율형과 떠는청-본청-꺾는청으로 진행되는 계면조 가락이 박종기 산조에 형성되어 후대로 전승되며 다양하게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판소리 선율도 《춘향가》의 <적성가>나 <모지도다>, <군로사령> 등 여러 대목의 선율이 대금산조에 유사한 가락으로 수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대금산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판소리〉나 〈시나위〉, 〈봉장취〉 등 여러 갈래의 음악과 상호 관련되었음을 보여준다.
○ 악기편성 대금 독주이며 장구 반주가 따른다.
대금산조는 연주자가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세계를 산조 틀에 넣어 유파를 창출하며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대금산조의 유파 창시자들은 판소리, 시나위, 봉장취 등 다른 갈래의 음악어법을 과감하게 수용하였고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새로운 선율을 창작하여 산조의 음악영역을 넓혀 나갔다. 또한 악기의 물리적 특성을 간파하여 음악적 표현을 극대화하는 연주법으로 명인기를 보여주었다. 요컨대 대금산조는 연주와 창작의 두 영역을 아우르며 악기의 특성을 살린 연주자의 음악적 기량이 밀도 있게 응축된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이보형,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7 : 산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7. 이진원․김가람 글, 『대금산조(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박환영, 「박종기 대금산조의 형성과 변화」,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배병민, 「김동진류 대금산조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임재원, 「대금산조의 생성 및 전승과 확장」,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임재원(林宰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