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범수 대금산조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한범수가 자신이 학습한 박종기·한주환의 대금산조와 유동초의 퉁소가락을 바탕으로 자신이 작곡한 가락을 더해 완성하였다. 박종기 산조에 없던 중중모리장단을 추가하였으며, 계면조 가락의 비중을 높였고, 변조와 변청을 활용하여 다채로운 음조직의 변화를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대금연주자 한범수가 이전의 대금산조와 퉁소시나위에 자신의 가락을 더해 만든 대금산조
대금산조는 독주시나위가 차츰 산조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음악이다. 19세기 『금옥총부(金玉叢部)』에 〈퉁소심방곡〉을 연주했다는 기록에서 〈대금시나위〉도 독주로 연주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김창조에 의해 가야금산조가 처음 시작되었고, 다른 악기로 산조음악이 확대되면서 1920~30년대 강백천과 박종기에 의해 대금산조가 형성되었다.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만든 박종기 대금산조에서 비롯되었다. 1930년대 박종기가 대금산조의 틀을 만들었고, 1950~60년대 한범수와 한주환이 박종기 산조를 이어 자신들의 유파를 형성하였다.
○ 역사적 변천 과정
한범수(韓範洙, 1911~1984)는 1911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출생하여 10대 시절에 퉁소, 단소, 양금 등 여러 악기를 학습하였다. 대금산조는 박종기에게 배웠으며, 박종기의 제자인 한주환과 교류하여 그의 가락도 습득하게 되었다. 또한 유동초(柳東初)에게 〈퉁소시나위〉를 배우며 다양한 악기와 가락을 익혀 나갔다. 한범수는 산조의 구성원리를 기승전결과 음양론으로 강조하고 자신이 배운 산조 가락을 이 구성원리에 맞게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학습한 박종기·한주환의 대금산조와 유동초의 퉁소가락에 자신이 작곡한 가락을 더해 기승전결과 음양론에 입각하여 한범수류 대금산조를 만들었다. 한범수는 1964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악사양성소, 국악예술학교에서 후학양성에 힘썼기 때문에 조재선, 이상용, 홍종진, 박용호, 김방현, 김광복, 김영동, 신용문, 김순옥 등 여러 제자에게 그의 산조를 전수하였고, 1975년에 『한범수 대금산조보』로 자신의 산조음악을 악보화 하였다.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대금산조의 중시조로서 다음세대에 대금산조가 확장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 음악적 특징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박종기 산조에서 비롯된 소리더늠 대금산조이며, 한주환류 대금산조와 더불어 2세대로 구분된다. 박종기가 만든 대금산조는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의 세틀 형식을 갖추었고, 2세대인 한범수와 한주환은 중중모리를 추가하여 네틀 형식으로 악장을 확장하였다. 중중모리 가락 구성에는 차이를 보이는데, 한주환은 박종기의 국거리를 바탕으로, 한범수는 새롭게 창작한 가락으로 중중모리를 구성하였다. 한편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우조, 평조, 계면조, 경조가 주요하게 사용되며 변조와 변청을 활용하여 다양한 음조직으로 변화한다. 특히 같은 2세대인 한주환 산조에 비해 계면조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요컨대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계면조를 중심으로 새롭게 창작된 가락이 많아지면서 확장된 소리더늠 대금산조의 음악적 특징을 보여준다.
○ 악기편성 대금 독주로 연주하며 장구 반주가 따른다.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음양오행의 원리로 구성된 대금산조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범수는 모든 만물의 생성소멸 원리가 음양에 있으며, 산조의 구성 원리도 음양론에서 찾았다. 그는 이러한 음양론에 입각하여 여러 전대 명인들의 가락에 자신이 만든 가락을 더해 한범수류 대금산조를 완성하였다. 한범수류 대금산조는 동시대의 한주환류 대금산조와 양대산맥을 이루며 대금산조가 다음 세대로 확장, 변화되는 데 가교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음악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김가람·이진원, 『대금산조』,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박용호, 『죽사한범수 대금산조보』, 은하출판사, 2010. 정지웅, 「한주환·한범수 대금산조의 연구」,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한범수, 『한범수 대금산조보』, 민학사, 1975.
정소희(鄭小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