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농악
호남농악은 전라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을 총칭하는 말이다. 호남은 본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통틀어 일컫는 지명으로써, 학계에서 한국 농악의 분포 및 전승 국면을 영서, 영남, 중부, 호남 등으로 문화 지리적 경계를 상호 구분하면서 탄생한 용어가 곧 호남농악이다. 호남농악은 동서로 특징이 대비된다고 알려졌으며, 학계에서는 호남의 농악 문화권(文化圈)을 전승 맥락과 공연양식의 대비적 특징에 따라 크게 《좌도농악》과 《우도농악》, 두 권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좌도농악》은 전라도 북동부 내륙 산간지대 중심으로 자리한 일대에서 전승하는 농악을 지칭한다. 전라북도 진안, 무주, 장수, 임실, 남원, 순창 등지와 전라남도 곡성, 구례, 화순, 광양, 순천, 보성, 승주 등이 이 《좌도농악》 문화권으로 분류된다. 《우도농악》은 지리적으로 전라도 서부 평야지대 및 일부 해안 지대 일대에서 전승하는 농악을 지칭한다. 전라북도 익산(구 이리), 부안, 김제, 고창, 정읍, 옥구, 군산, 전주 등 지역과, 전라남도 장성, 영광, 나주, 광주, 함평, 무안, 목포, 영암, 장흥 등이 이 《우도농악》 문화권에 든다. 이 외,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도에 속하지만 충청도나 경상도와 같은 타지방에 접경한 지역 농악에서는 일종의 문화 접변 양상을 발견할 수 있으며, 같은 전라남도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남해 도서 지역 농악은 내륙의 그것과 사뭇 다른 형태 및 내용의 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농경을 중심으로 촌락을 이루어 삶을 영위하는 사회 구성 및 형태가 상당한 변화를 겪는 와중에, 당대 농악 전승집단의 대응과 선택에 따라 농악 전승 맥락에도 이전에 없던 현상들이 출현한다. 호남농악도 크게 문화적 층위에서 연행하는 마을농악과 예술 층위에서 연행하는 전문 연예농악, 두 계통으로 나뉘어 이후 뚜렷한 대비적 흐름을 보이게 되었다. 《우도농악》 권역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전문 연예농악[걸립농악] 공연집단이 형성되어 활동하면서 인적 교류가 활발하였고, 그에 따라 지역 내 상호 보편성이 강한 공연양식을 보유한 채 현재는 행정 구획에 따른 지역 기반으로 전승되고 있다. 《호남좌도농악》은 전승지의 지리적 위치와 전승 배경이 권역 내에서도 서로 변별되는 변천사를 겪으면서, 농경 마을사회 중심의 문화 전통을 계승하는 마을굿 유형의 농악과 전문 연예농악을 연행하는 포장걸립굿 유형의 농악이 함께 전승되고 있다. 한편, 전라남도 해안 도서 지역 일부에서는 《신청(神廳)농악》, 《군고(軍鼓)》, 《가장(假裝)농악》 등의 상대적으로 희소(稀少)한 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농악은 안녕(安寧)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적 기능과 더불어 노동의 효율성, 화합을 위한 공동 놀이 등의 다양한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 양식의 하나로 존재했다. 현재를 중심으로 농악은 연행 주체와 배경 그리고 형태와 내용에 따라 지역 또는 집단으로 비교 구별이 되고 있지만, 문화적 성격 면에서 본다면 형성기부터 ‘공동성’이란 큰 보편성을 내재하고 전승, 전파되어 온 예술양식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사회 전반에서 큰 지각 변동이 발생하고, 문화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게 되는데, 농악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변이 양상이 여러 면모로 나타났다. 시대의 변화는 거시적 측면에서 농악의 기본 성격이 문화양식과 예술양식의 서로 다른 층위로 갈리는 국면을 가져왔다. 과거 농악 본연의 문화 전통을 유지하는 농악과 상대적 개념의 ‘전문 연예농악’이 근대 이후 농악 전승 맥락에 새 축을 세우게 된 것인데, 전문 연예농악은 직업적인 농악인들이 단체를 형성하고 경제 수입을 목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방문, 순회하며 벌이는 걸립농악 연행을 말한다. 호남농악이 《우도농악》과 《좌도농악》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차이를 형성하게 된 것도 20세기에 들어서 전라도 서부에 속하는 지역 중심으로 전문 연예농악이 성행하게 되면서 발생한 일로 보인다. 전통적인 문화 행사에서 전문 연예농악으로 변천한 경향은 전국의 농악 분포 지역 중에서도 현재 《호남우도농악》 전승지로 분류되는 정읍ㆍ김제ㆍ부안ㆍ고창ㆍ영광 등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반면에 현재 《호남좌도농악》 전승지로 분류되는 대표 지역 중에는 남원농악의 경우만 해방 직후에 전국을 돌며 포장 걸립농악을 연행하면서 일찌감치 전문 연예농악의 길로 들어섰고, 임실ㆍ진안ㆍ구례ㆍ곡성 등의 지역은 비교적 늦게까지 공동체 문화의 전통 맥락을 유지하며 농악을 연행해 온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과 실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호남농악은 ‘축원농악’, ‘노작농악’, ‘연예농악’, ‘걸립농악’ 외에, 싸움굿 형태의 ‘군사농악’까지, 양식적 유형이 다양하게 발견된다. 하지만 각각이 별개 지역에서 독자적 특징을 고수(固守)해 온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는 양식적 복합성을 띠고 있다. 호남농악에서 축원형태에 드는 농악 양식은 공동 세시 행사로 치르는 《대보름굿》, 〈마당밟이〉/〈지신밟기〉가 있다. 노작형태에 드는 농악 양식은 〈두레풍장〉/《두레굿》, 《호미씻이굿》이 있다. 호남농악의 문화적 원형은 좌도와 우도 구분없이 바로 이 축원농악과 노작농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연구조 역시 거시적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아 본디 동일한 문화권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축원과 공동 노동에 뿌리를 둔 농악 공연양식은 우도 지역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두레 해체와 농촌사회 쇠락이 전개된 1960년대 이후로는 좌도 지역에서도 자연 연행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걸립농악이란 농악 연행집단이 자신들의 근거지를 떠나 다른 곳을 방문하여 연행하는 농악을 가리키는데, 호남농악 문화권에서는 직업적인 농악단과 마을 농악단 둘 다 걸립농악을 연행했지만 그 목적과 배경에 있어서 양자 간에 차이가 뚜렷하다. 직업적인 농악단의 걸립은 생계 목적성이 최우선하고, 반면에 마을 농악단의 걸립 연행은 공공 기금 마련과 지역 사회 화합이란 공동성을 띤다. 20세기 중반까지 호남 지방에서 창성한 전문 연예농악은 바로 걸립형태의 농악이 시대의 변동을 수용하면서 전문화된 변이로 볼 수 있다. 걸립형태의 농악은 시간적으로도 변모가 뚜렷하게 포착된다. 20세기 초~중반 사이에 활동한 전문 연예농악 단체들의 걸립농악은 마을 농악단과 마찬가지로 〈마당밟이〉/〈지신밟기〉와 〈두레풍장〉, 연예 판굿을 두루 연행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농악경연대회, 여성농악단 활약, 산업화 등의 복합적 요인과 맞물려 《판굿》 공연양식 위주로만 연행하는 형세가 짙어지면서 다른 공연양식들은 빠르게 사장(死藏)의 길로 접어들었다. 연예ㆍ오락형태의 농악 양식은 《판굿》이 있다. 본래 《판굿》은 모든 농악 공연양식의 마지막 절차에 반드시 구성되어서 단합과 오락 목적의 기능적 역할을 담당했다. 사회 변동과 함께 농악이 문화양식의 하나가 아닌 공연예술로 받아들이는 인식과 짧고 집약적인 공연 수요가 많아지면서 《판굿》이 별도로 분화, 확대된 경향 또한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 외 싸움굿 즉, 군사농악의 형태는 《우도농악》의 《문굿》, 《좌도농악》의 《도둑잽이굿》에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호남우도농악》은 일찍이 연예농악으로의 변천을 걸으며 비일상적 공연이 예술적으로 고도화 된 수준으로 전개되어 온 반면, 《호남좌도농악》은 ‘문화적 공연’의 성격과 ‘비일상적 공연예술’ 두 가지 성격을 우도 지역에 비해 상당시간 존속해 오고 있었다. 현재는 무형문화제에 의한 제도적 전승이 고착되면서 문화권과 크게 상관없이 무형문화재 지정 농악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호남우도농악》은 1900년대 초반까지 김도삼(金道三, 1876~1942)ㆍ김바우ㆍ최화집, 이 세 명의 상쇠가 각자의 농악 공연지(公演誌)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며 걸립농악과 마을 토착농악 양면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도삼은 정읍과 김제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김도삼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 중에 우수한 예능을 보유한 농악인들이 다수 배출되어 ‘정읍농악단’이란 지역 최초의 전문 농악인 규합 단체를 조직하고, 전문적인 농악 연행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김바우는 부안 우동면 출신으로 ‘김바우풍물패’를 꾸려 부안 중심의 걸립농악을 연행하였다. 김도삼의 계보는 정읍과 김제지역을 중심으로, 김바우 계보는 부안지역을 중심으로, 최화집 계보 농악은 전북의 고창, 전남의 영광, 광주 등의 공연자들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바우 계보는 이후 뚜렷한 계승자 없어 계통을 잇지 못하고, 현재는 김도삼으로부터 출발한 계보의 농악과 최화집으로부터 출발한 계보의 농악으로 《우도농악》의 계통을 구분지어 볼 수 있다. 계보 및 활동보를 참고로 《우도농악》 권역 내 영역 구분도 가능하다. 정읍, 김제, 부안이 한 권역으로, 영무장과 광주, 장성 지역이 또 다른 권역으로 묶여 동일한 인물군을 형성하며 걸궁활동을 전개했다. 현재 《우도농악》 전승지역은 지자체 행정단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컨대, 《영무장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고창ㆍ영광ㆍ장성ㆍ함평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공연 특성 및 활동권을 공유했던 전통이 현재는 행정구역 개편과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의 개별 지역단위 농악 지정 운용으로 《영광농악》, 《고창농악》 등으로 나뉘어 전승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김도삼 상쇠 계통의 농악을 공유하는 정읍ㆍ김제ㆍ익산 등도 현재 각각이 독립된 지역 농악으로 전승되고 있다. 현재 《우도농악》 권역에서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단체가 1곳, 지자체 지정 무형문화재 단체가 전북에 5곳, 전남에 2곳이 있다.
《호남좌도농악》은 특정 인물 계보로 계통을 구분하기는 어렵고, 전승지의 문화지리적 형세와 문화전통, 전승맥락에 따라 각자의 고유성을 형성하고 있다. 임실군 강진면에 소재한 필봉마을에서 전승해 오는 《임실 필봉농악》, 진안군 성수면에 소재한 중평마을에서 전승해 오는 《진안 중평농악》, 남원시 금지면 옹동마을에서 전승해 오는 《남원 금지농악》, 곡성군 곡성읍 소재 죽동마을에서 전승해 오는 《곡성 죽동농악》, 전남 구례읍 신원리 신촌마을에 전승되어온 《구례 잔수농악》, 화순 한천농악과 《여수 백초농악》 등이 현전 《호남좌도농악》에 드는 하위 지역 농악이다. 《호남좌도농악》은 마을사회에서 성립한 농악대에 의한 전승이 타 농악문화권보다 비교적 오래 전승되어 온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을 공동 제의와 놀이, 생활방식 등 생활문화양식과 분리하기 어려운 문화적 층위에서 이해할 때 본연의 존재 방식과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좌도농악》 전승지역의 공통 특징은 《당산굿》ㆍ《샘굿》 등 마을 공동 제의에서 농악이 주요한 역할을 하며, 마당밟기ㆍ기굿ㆍ《두레굿》ㆍ《대보름굿》ㆍ걸궁굿ㆍ《판굿》 등 다양한 공연양식이 연행된다는 점이다. 또 개인기보다 공동성을 중요시해서 개인놀이보다 집단놀이가 중심이 되는 판제이며, 밑놀이보다 윗놀이가 발달된 것이 특징이다 뒷치배[잡색]의 배역과 연희가 타지역 농악에 비해 발달하였고, 사회극과 같은 성격을 강하게 띤다. 현재 《좌도농악》 권역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농악이 임실ㆍ남원ㆍ구례 이상 3곳, 지자체 지정 무형문화재 농악이 전남 곡성ㆍ화순 이상 2곳 있다.
호남 지역에서는 농악을 연행하는 공연자를 ‘치배’라고 부른다. 치배를 기능과 역할로 세분해서 앞치배[잽이]와 뒷치배[잡색]로 구분하기도 한다. 앞치배는 사물(쇠ㆍ징ㆍ장구ㆍ북)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자를 말한다. 뒷치배는 소고잽이와 잡색(雜色)을 포함하여 농악 공연이 이뤄지는 데 판 안팎에서 보조적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뒷치배를 가리키는 용어는 잡색 외에도 ‘광대’, ‘화동’, ‘어정잽이’, ‘잡색이’ 등의 다양한 이칭이 있다. 이 치배 편성 면에서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큰 차이는 없다. 특히 앞치배의 구성은 어느 정도 통시적, 공시적 보편성을 보이고 있다. 호남농악 앞치배의 구성이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농악의 예술양식적 정체성을 정의하는데 있어 하나의 단초가 된다. 한편으로 치배 구성에서 유사성이 짙은 양상은 호남농악에 국한된 특이점이 아니다. 앞치배의 역할 구성과 규모는 전국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으며, 한때 비교 기준 요소로 통했던 채상소고 편성은 이미 획일화 되었다. 채상소고가 가져오는 뛰어난 시각미학적 효과가 지역을 넘어서 선택, 수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뒷치배의 구성은 대체로 대포수ㆍ창부ㆍ중ㆍ조리중ㆍ양반ㆍ할미ㆍ각시ㆍ무동은 일반적인 편성 인물이다. 이 인물들을 기본으로 해서 유사한 인물(예:양반/사대부/구대진사, 좌창부/우창부)을 배수(倍數)로 편성하거나, 지역에 따라 총각좌상/곤장ㆍ집사ㆍ농구ㆍ비리쇠ㆍ홍적삼 등의 국지(局地)적으로 지역색이 느껴지는 인물들을 첨입하고 있다. 타지방 농악과 비교할 때, 호남농악 잡색은 인물 유형과 성격이 다양한 게 특징이다. 호남농악에서 뒷치배는 음악과 춤 위주의 공연에 연희성과 연극성, 축제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농악 공연이 점차 무대화ㆍ작품화 되면서 음악과 무용, 두 요소가 강화된 반면에 공동 제의성ㆍ연희성ㆍ놀이성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경향을 보이고, 그러한 변천에 따라 뒷치배의 역할과 기능이 눈에 띠게 축소되고 있는 추세다.
구분 | 《호남우도농악》 | 《호남좌도농악》 | |||||
《정읍》 | 《이리》 | 《영광》 | 진안 《중평》 | 임실 《필봉》 | 남원 《금지》 | ||
기(旗) | 농기수 | 농기수 | 농기수 | 농기수 | 농기수 | 농기수 | |
용기수 | 용기수 | 용기수 | 용기수 | ||||
영기수1‧2 | 영기수1‧2 | 영기수1‧2 | 영기수1‧2 | 영기수1‧2 | 영기수1‧2 | ||
단기수 | 단기수 | 설명기수1 | 단기수 | 단기수 | |||
오방기수5 | |||||||
나발 | 나발수 | 나발수 | 나발수 | 나발수 | 나발수 | 나발수 | |
새납 | 새납수 | 새납수 | 새납수 | 새납수 | |||
쇠 | 상쇠 외 부쇠... | 상쇠 외 부쇠... | 상쇠 외 부쇠... | 상쇠 외 2인 | 상쇠 외 2~5인 | 상쇠 외 2~5인 | |
징 | 수징 외 | 수징 외 | 수징 외 | 수징 외 1인 | 수징 외 1~2인 | 수징 외 1~3인 | |
장구 |
수장고 부장고... |
수장고 부장고... |
수장고 부장고... |
수장고 외 3인 | 수장고 외 3인~7인 | 수장고 외 3~7인 | |
북 | 북수 | 대북 | 통북 | 북수 2인 | 수북 외 1~3인 | 0~4인 | |
법고 |
수법고 부법고 |
밀북/법고 | |||||
소고 | 고깔 | 팔법고 | 고깔소고 | 소고잽이 6~8인 | 고깔 6~12인 | ||
채상 | 채상소고 | 채상 4~6인 | 채상소고 7~14인 | ||||
열두발 | 12발상모 | 12발상모 | 12발 상모 | ||||
잡색 | 대포수 | 대포수 | 대포수 | 대포수 | 대포수/화동포수 | 대포수 | 대포수 |
중 | 중 | ||||||
조리중 | 조리중 | 조리중 | 조리중 | 조리중 | 조리중 | 조리중 | |
창부 | 창부 | 창부 |
좌창부 우창부 |
창부 | 창부 | ||
양반 | 양반광대 | 양반 | 양반 | 양반 | 양반 | 양반 | |
사대부 | 할미 | 한량 | |||||
할미 | 할미광대 | 할미 | 할미 | ||||
각시 | 각시광대 | 각시 | 각시 | 각시 | 각시 | 각시2인 | |
무동 | 무동2인 | 무동2인 | 무동2인 | 무동1인 | 무동2인 | 무동2인 | |
농구 | 농구 | ||||||
화동 | 화동 |
호남농악 《판굿》은 크게 《앞굿》과 《뒷굿》으로 나눈다. 《앞굿》 부분은 앞치배들 중심으로 음악ㆍ무용 요소 위주로 공연을 행하고, 《뒷굿》은 뒷치배/잡색이 중심이 되어 놀이와 연극 요소를 중심으로 공연한다. 특히 《뒷굿》에서는 〈수박치기〉, 〈등지기〉 등과 같은 놀이성을 강조하는 공연을 통해 청관중을 자극하고, 청관중은 그러한 자극을 통해 ‘제3의 공연자’로 전환되며, 점차 공연의 중심이 공연자에서 청관중으로 옮겨가서 전체 공연을 마감하는 흐름이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양상으로만 볼 때에 《우도농악》은 《좌도농악》에 비해 《뒷굿》의 구성이 다소 약한 편이다. 좌도 농악 《뒷굿》에는 잡색들이 주축이 되어 연극적 요소를 중심으로 펼치는 《도둑잽이굿》 이전에 ‘《영산굿》’이라는 음악적으로 고도화 된 절차굿이 있고, 《노래굿》 ․ 《춤굿》․ 《등지기굿》 ․ 《수박치기굿》 등 춤과 놀이, 노래 등 다양한 예술요소들이 중심이 되어 흐름을 주도해 가고, 이어 《도둑잽이굿》을 거쳐 파장굿/탈머리굿 등으로 마친다. 여기서 남원의 경우만 좀 예외적인데, 《금지농악》은 《탐모리굿》에 이어 가장 마지막 절차굿이 ‘〈개인놀음〉’이 된다. 《우도농악》 《판굿》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비교적 자유로운 개인기 중심의 연주를 구사하고, 모든 가락에서 다양한 변주가락을 사용하여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처럼 특정 굿가락을 확대, 분화시키는 사례는 산조, 사물놀이와 같은 주로 전문 연예집단의 새로운 음악 생성방식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이는 ‘판문화’가 ‘무대문화’로 이행되면서 발생한 새로운 공연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도농악》의 《뒷굿》은 〈일광놀이〉와 〈도둑잽이〉, 〈개인놀음〉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합’과 ‘개성’의 두 관점으로 《판굿》 공연의 구성과 흐름을 파악해 보면, 《좌도농악》은 ‘화합’에, 《우도농악》은 ‘개성’ 표출이 강하게 대비된다. 《좌도농악》 분포지역 중에 진안과 임실은 전반적으로 ‘화합’을 위한 공연행위를 위주로 하되, 중간부에 공연자 개성을 도드라지게 발현하는 ‘〈개인놀음〉’을 두고 있는 반면, 남원은 〈재능기〉를 공연 순서에 맨 끝에 위치시키고 있다. 《우도농악》의 경우 1960년대 연행본으로 볼 때 좌도의 임실, 진안과 마찬가지로 전체 화합의 장으로 마감하는 구조였던 것으로 보이나, 현행 《우도농악》 전승 지역의 대부분은 좌도의 남원과 같이 개인의 장기를 강조하는 ‘〈개인놀음〉’을 최종 순서에 연행하고 있다. 좌ㆍ우도 경계를 넘어서는 이러한 공연구조적 차이는 무엇보다 공연단의 공연 목적과 지향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남원의 경우 진안, 임실과는 달리 좌도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포장걸립’ 형태의 대외적, 생계형의 활동을 전개한 이력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경험이 현전 공연지에 그대로 수용되어 있다.
다음은 공연 요소와 문법 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도농악》과 《좌도농악》의 유사성과 변별성에 관한 종합적인 내용이다.
첫째, 공연구조 면에서 《우도농악》은 음악과 춤〔진법〕이 중심이 되는 절차굿을 강조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뒷치배들과 전체 공연자가 중심이 되어 공연을 이끌어 가는 연극과 놀이 중심의 절차굿은 약화되어 있다. 반면, 《좌도농악》은 예술구성요소에 의한 공연 흐름이【음악→춤→음악+춤→놀이→연극→종합】순서로 배치되어 《앞굿》과 《뒷굿》의 비율이 고른 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형성 당시의 모습부터 지녀온 변별점이 아니며, 본래는 우도도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나, 전승과정 상에서 발생한 차이로 생각된다. 1960년대 후반에 조사되었던 《우도농악》 공연지의 《판굿》구조와 공연흐름은 《좌도농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음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더불어 《도둑잽이굿》은 좌도와 우도 지역 모두 〈도둑잽이〉 굿의 기본 화소는 ‘도둑질’과 ‘투전’으로 공통적이다. 미세하게 본다면, 《우도농악》은 다시 북부와 남부 영무장 권역으로 구별되는 잡색놀음이 전승되었음을 찾을 수 있는데, 북부지역에 해당하는 이리ㆍ김제ㆍ정읍 등은 《좌도농악》과 유사한 《도둑잽이굿》을 연행하고 있고, 남부 영무장권역은 ‘《잡색탈놀음》’이란 이름으로 탈을 착용한 뒷치배들이 다양한 화소들을 연극적 행위와 대사를 통해 이끌어 가고 있다.
둘째, 《좌도농악》 《판굿》을 구성하는 각 절차굿은 대부분 굿 안에 또 다시 작은굿이 있는 중첩구조를 가지고 있다. ‘《채굿》’과 ‘《영산굿》’이 대표적이며, 〈군영놀이〉/〈개인놀음〉도 마찬가지의 여러 개의 작은굿이 겹쳐서 한 과장/절차를 완성하고 있다. 《우도농악》 《판굿》의 경우, 영무장 지역 풍물굿의 《도둑잽이굿》을 제외하면, 중첩됨 없이 여러 개의 가락 단위가 조합되어 짜여진 한 틀의 굿으로만 구성되는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좌, 우도의 《판굿》 구조적 특성을 구분하는 용어를 정한다면 좌도는 ‘포괄식 구조’, 우도는 ‘펼침식 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
셋째, 《우도농악》과 《좌도농악》은 가락이나 굿을 가리키는 명칭을 비롯하여 용어 사용에서 유사성이 크고, 리듬체계의 합일성과 리듬 변형 및 생성방식 면에서도 공통점이 많다. 단, 《우도농악》이 리듬의 미시적인 단위에서 다양한 변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차이가 있다. 《우도농악》이 ‘음악적으로 정교하고 세련되었다’거나 ‘자글자글하다’는 평은 바로 이러한 기교로 비롯된 질감을 표현한 언급으로 생각한다.
넷째, 두 지역 모두 3소박 4박자의 리듬체계를 가진 《삼채굿》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이 가락의 변형이 가장 다양하게 이뤄진다는 점도 동일하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우도가 좌도보다 빠른 삼채가락을 더 자주 연주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본래 좌도지역이 우도지역보다 가락이 빠르다는 기존 연구의 언급과는 배치되는 양상이다. 두 지역의 음악 종지구조도 흡사한데, 한 절차굿을 맺고자 할 때 삼채형의 ‘넘어가는 가락’을 짧게 연주하고 이어서 이채/휘모리 가락으로 맺는 문법이 공통적이다. 하지만 한 절차굿을 시작할 때 《좌도농악》은 대부분 ‘어룸굿가락’으로 시작하는 반면에, 《우도농악》은 극히 일부에서만 어름굿 가락을 연주하고, 대부분 해당 절차의 주제가락을 바로 연주하거나, 별도의 도입가락을 사용하여 시작하는 점이 다르다.
다섯째, 《좌도농악》은 공연자 전체가 동시에 같은 춤동작을 연출하는 경우는 약속된 진법을 진행하거나, ‘돌굿’이라고 부르는 절차굿을 제외하고는 별반 없으나, 《우도농악》에서는 특정 가락에서 약속된 집단무를 선보이는 경우가 더 잦다.
여섯째, 《판굿》 공연의 심층과 표층의 결합이 매우 흡사한 과정으로 전개된다. 공연 순서나 절차굿의 나눔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음악과 춤요소를 중심으로 공연자가 개별화되지 않고 집단적으로 공연문법을 수행하는 절차굿들이 《앞굿》에 배치되고, 연극 요소와 개인의 〈재능기〉를 중심으로 공연자 개개의 ‘인물(character)’과 ‘개인기(individual talent)'가 발현되는 내용의 굿들이 《뒷굿》에 배치된다. 예술요소와 내용적 흐름에서 두 권역은 차이보다는 보편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하지만, 공연 목적 또는 의미(signification of performance)' 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우도농악》은 공연자 중에서도 앞치배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며, 공연자 위주의 문법이 강화된 구조여서, 청관중이 함께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공연자 중심의 보여주기식 공연 구조이다. 이에 비해 《좌도농악》은 앞치배와 뒷치배의 역할이 대등하고, 특히 《뒷굿》은 춤요소, 놀이요소, 연극 요소를 활용한 다양한 절차굿에서 청관중이 판 안에 들어와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연텍스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쌍방향적, 열린 구조여서 그 목적이 최종적으로는 ‘화합’에 있음을 표출하는 구조다. 《우도농악》의 경우는 북부지역은 ‘마당’과 같은 순서 지칭 용어로 절차굿 명칭을 삼고 있으나, 영무장 권역은 《좌도농악》과 마찬가지로 절차의 중심 예술요소를 염두에 둔 굿명칭들을 사용한다. 우도 지역의 《판굿》은 공연 전체구조가 공연자 중심의 폐쇄적 구조로 일관된다.
요컨대,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은 본디 ‘호남’이라는 넓은 범주에서의 지역적 보편성을 찾을 수 있는 매우 유사한 공연 문화와 양식을 공유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농악이 문화적 공연에서 점점 분리되기 시작한 시점에 두 지역간의 보편성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본래 유사한 토양에서 성립되어 닮은 점이 많았던 예술양식이 공연자의 지향과 활동이 달라지면서 한쪽은 연예성과 전문성을 강조한 방향으로, 다른 한쪽은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중심으로 한 사회문화적 기능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오는 속에 현전하는 모습으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호남농악은 전통사회로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현대사회로의 이행 과정마다 발생한 한국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 온 전통 공연예술이다. 《우도농악》은 1900년대 초반부터 ‘범 우도’ 지역성을 띠며 예술 요소에 집중한 공연양식을 가지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좌도농악》은 농악 본연의 사회 문화적 기능과 의미를 비교적 오래 계승하는 속에서 시대적 변천을 반영하였다. 이에 따라 오늘날의 호남농악은 근대 이전 시대 자족적 공연 목적의 마을굿 모습이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한편으로, 공급과 소비의 예술산업적 구조 하에 ‘소비자의 경향’에 능동적으로 반응한 공연작품 형식의 연예농악의 모습까지 다양한 농악 양식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 농악의 현재적 연행 국면과 같은 궤에서 호남농악 역시 이전의 목적과 성격이 서로 다른 다양한 농악 양식들이 실제 연행에서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축원농악과 노작농악은 일부 지역 농악에서만 문화적 의미를 재현하는 행사를 통해 현전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기억 전승에 의존하고 있고 세대 교체와 함께 빠르게 잊혀지고 있다. 걸립 문화가 성행했던 시대에는 전문 연예농악이라고 해도 축원농악 공연 형태와 내용이 중심이 되는 걸립농악을 연행했다. 그러나 공연 환경 및 농악의 문화적 위상이 변하면서 과거 농악 공연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문굿》’, ‘〈마당밟이〉굿’, ‘《당산굿》’, ‘《샘굿》’, ‘《두레굿》’ 등의 연행은 다수 지역 농악에서 도태되고 작품화된 《판굿》 위주로 연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혜정, 『농악의 음악적 특징과 지역별 차이, 농악, 인류의 신명이 되다』, 국립무형유산원ㆍ문화재청, 2014. 정병호, 『농악』, 열화당, 1986. 홍현식ㆍ김천흥ㆍ박헌봉, 『호남농악-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33』, 문화공고부 문화재관리국, 1967. 양옥경, 「호남 《우도농악》 판굿의 음악구조와 구성원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논문, 2014.
양옥경(梁玉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