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풍물, 웃다리풍물, 경기농악, 남사당놀이, 남사당풍물
경기ㆍ충청 지방에서 연행되어지는 농악
광복 이후 웃다리농악이 1985년 1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인 《평택농악》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웃다리농악 혹은 웃다리 풍물, 경기풍물, 남사당놀이 등 다양한 명칭으로 활발히 연행되어 왔다. 웃다리농악은 순수 농악판제로만 연행되었던 것이며, 남사당놀이는 남사당 6대 놀이 중 하나인 농악이 경기ㆍ충청 농악에서 유래되어 연행된 것이다.
1. 한국전통 농악의 역사적 전개 우리나라 전통음악에서 농악은 농부들이 연주하던 고유의 음악이다. 농악은 우리나라 조상들이 즐긴 대표적인 민속 연희로 음악뿐 아니라 무용 요소와 연극 요소까지 갖추고 있는 종합적인 예술이다. 현재까지 각 지역별로 특색을 가지고 전승해오고 있는 농악은 《농악굿》, 《두레굿》, 《매구》, 《풍장굿》이라 불리었고, 또한 연행 주체나 연주 목적에 따라 《당산굿》, 《걸립굿》, 《마을굿》, 《마당밟기》, 《판굿》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연행 시기에 따라 농악이 다른 명칭으로 불려 온 것이다. 이를 토대로 농악이 단순하게 놀이 혹은 연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각종 세시 명절에서 연행된 벽사진경과 감사제 의식이라는 민간신앙 의식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농악은 농사일로 지낸 고된 신체를 마을 공동체적 신명으로 풀어가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농악의 기원을 담은 문헌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蘶書東夷傳〉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문헌으로 보아 그 시간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마한에서는 언제나 5월로서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을 제사하는데, 무리 지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며 날을 이어 밤낮으로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 명이 함께 일어나서 서로 뒤따르며 땅을 높게 낮게 굴리고, 손발이 상응한다.… 10월에 농사를 마쳤을 때도 역시 이와 같이 되풀이한다”
위의 기록으로 유추해 볼 때, 농업을 생업으로 삼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농악은 5월 파종 및 10월 추수에 하늘 신께 축원을 올리기 위한 제천의식(祭天儀式)으로 연행되었다. 이는 단순한 제의식이 아닌 원시 종합축제의 형태로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의식과 더불어 수반되는 가무연희(歌舞演戱) 과정은 초기형태의 농악 진법이라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수전 농법이 보편화되며 농업 생산력이 극대화됨에 따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하여 조상들은 ‘두레’라는 공동 조직을 만들어, 모내기부터 김매기까지 공동 농사 작업을 수행했다. 이 공동 노동의 효율적인 운영과 능률의 향상을 위해, 당시까지 전승이 된 원시적인 농악 장단들이 재구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두레굿》’이다. 모든 두레는 농악을 연주하였고, 농악을 연주하던 구성원들이 바로 전통 농악패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 전통 농악의 종류와 구조 가. 농악의 어원 농악은 일본의 가면극 ‘농악’의 발음인 ‘노가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4 우리나라에선 일제 강점기 때 농악이 연구되었다. 본래 농악은 〈풍물〉, 《매구》, 〈풍장〉, 두레, 《걸궁》, 〈걸립〉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웃다리 농악을 웃다리 풍물, 경기풍물, 경기농악이라고도 불리웠으며, 농악을 종교적으로 바라볼 때는 ‘굿’, ‘《지신밟기》’, ‘《매굿》’이라 했으며, 농사하면서 바라볼 때는 ‘두레’라고 하였다. 또한 농악을 금고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금속악기인 꽹과리, 징과 가죽 악기인 장구, 북, 소고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나. 한국 농악의 역사적 변화 및 종류 농악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단순히 연구자들의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며, 농악의 전승이 개인의 생각을 가미하여 구음으로 진행이 되어 왔던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문헌 기록이 없어 개인적으로 연구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 또한 문제다. 그 때문에 농악의 역사는 남아 있는 몇 가지의 기록과 현재 살아 계신 명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밖에 없다. 1800년대와 1900년대의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당시 활동한 명인들마저도 모두 사망한 상태이므로 1900년대 이후 활동한 운학 이동안(李東安, 1906~1995)을 비롯하여 상쇠 임재근(버드네 농악)과 김경극(수원 지동) 그리고 전승의 중심에 있는 임광식의 활약이 커 보인다. 임광식은 수원 버드네(새류동)의 상쇠인 임재근의 아들로 태어나서 11세에 수원 버드네 농악에 입문하여 수원지역 《마을굿》에서 농악을 시작했다. 임광식의 증언에 따라 농악의 변화를 유추해보면 농악은 농경사회에서 제의적으로 의식행위를 한 축원 농악에서 시작하여 절기에 맞춰 《두레농악》, 《걸립 농악》 그리고 연희적인 농악으로 변화ㆍ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축원 적인 형태 ⇒ 노작 형태 ⇒ 걸립의 형태 ⇒ 연희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농악은 개인보다 집단적이며, 제의적이며 축원적인 측면에서 시작했다. 농경사회의 풍농을 위한 축원적 기능을 가진 두레 농악, 정치ㆍ경제적 목적 또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걸립 농악과 연희 농악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기능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즉, 농악은 기본적으로 각 마을의 안녕과 축원의식, 농사의 풍요와 생산 등 당대 공동체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웃다리 농악은 경기, 충청, 강원 영서 지방에서 연행되는 농악이다. 상모가 발달하여 장단이 빠르고 가락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간소하며 소박한 느낌이다. 특징적인 가락으로는 칠채가 있으며, 무동놀이가 특화되어있다. 3. 웃다리농악의 의의 웃다리농악은 경기도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멀리 황해도나 평안도까지 영향을 주었다. 웃다리농악은 평택 평야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안성과 평택에서 두레나 〈걸립〉이 성행하여, 남사당패가 안성에 본거지를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웃다리농악은 다른 지역의 농악에 비해 징과 북의 수가 적으며, 꽹과리놀이와 소고놀이가 발달했다. 잡색은 피조리, 스님, 대포수, 양반, 각시 등이 있는데, 그 중 피조리가 하는 무동의 수가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웃다리농악의 형식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판굿》의 짜임새가 다양하며, 피조리들의 놀이가 있다는 것이다. 《판굿》의 진행에서는 〈따벅구〉, 〈도둑잽이〉, 〈당산벌림〉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1. 웃다리농악의 종류 및 연행시기와 장소 현재 경기도의 농악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안성과 평택으로 대별되는 남사당풍 《판굿》 위주의 농악류와 수원이나 포천 평야지방에서 농부들이 김을 매며 두레수로 치는 농악류가 그것이다. 이밖에 《지신밟기》나 《당산굿》도 일부 지역에 남아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웃다리농악은 안성, 평택지역 중심의 남사당 재주 성격의 《농악굿》이다. 하지만 이는 《걸립 농악》(《문굿》부터 《판굿》까지 형식)의 형태보다는 그 일부분인 《판굿》 형태로 인식된다. 《두레농악》은 공연의 목적이나 연행되는 시기와 장소, 연행 절차와 형식 등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 형태는 《동제 두레농악》, 《노동 두레농악》, 《걸립 농악》이다. 먼저 《동제 두레농악》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농악으로 《지신밟기》의 형태다. 주로 신을 모시는 사당을 중심으로 연행되기 때문에 《동제》 혹은 《당산굿》, 《당굿》 등으로 불린다. 다음 《노동 두레농악》은 농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농악으로 〈풍장〉, 《두레굿》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노동 두레농악》은 모내기, 김매기, 풀베기, 길쌈 등 협동 노동의 두레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연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 《걸립 농악》은 《걸궁》, 《건립굿》 등으로 불린다. 《걸립 농악》을 연행하는 걸립패들은 단체의 공금이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목적을 둔 놀이패이다. 그 때문에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마을을 돌며 유랑하며, 점차 연예 농악 형태로 발전했다.
2. 웃다리농악의 복색 과거의 웃다리농악의 복색은 하얀색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파란 조끼를 입는 것이 전형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지역별 복색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는 각 지역의 특색을 표현하기 위해 복색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본고는 일반적인 유형의 웃다리농악 복색에 대해 먼저 살핀 뒤, 현재의 변화된 복색에 대해서도 차례로 알아보려 한다. 농악패 꽹과리 잽이의 복색은 나머지 연주자와 차별화되었다. 꽹과리 잽이의 복색은 다른 치배와는 다르게 빨간색인데, 이는 상쇠, 즉 리더의 역할을 옷을 통해 알리는 것이다. 또한 벙거지 위에는 북상이라는 종이 부포를 얹어 꽹과리 놀음을 한층 더 멋스럽게 만든다. 꽹과리 잽이는 조끼의 복색뿐 아니라 삼색띠에도 차별을 두었다. 빨간 조끼에 걸맞게 어깨에는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허리에는 파란색 띠를 드리워 맨다. 꽹과리 잽이를 제외한 나머지 치배들은 동일하게 복색을 갖춘다. 하얀색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위에는 남색 또는 파란색 조끼를 갖춰 입는 것이 정석이다. 치배들은 삼색띠를 매는 방법도 꽹과리 잽이와 다르다. 어깨에 조끼 색과 비슷한 파란띠를 먼저 맨 후, 그 위에 노란띠를 걸치고 허리에는 빨간띠를 맨다. 예전에는 치배의 벙거지 위에 나비상이라는 짧은 상모를 얹었으나, 요즘에는 긴 채상 상모를 얹는다. 채상 상모는 농악판에 보다 생동감을 불어 넣어 더욱 세련된 연주가 가능하게 한다. 잡색은 기본적으로 하얀색의 옷차림을 하고 하얀색 띠를 두른다. 머리에는 상모 대신에 수건을 쓰거나 뒷머리를 땋기도 한다. 새미와 같은 작은 무동은 하얀 장삼을 입으며 머리에는 하얀 고깔을 쓴다. 3. 웃다리농악 악기 및 깃발 웃다리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총 5가지로 꽹과리, 장구, 북, 징 소고가 있으며 이외에 농기, 영기, 용기가 사용된다. 가. 꽹과리 꽹과리는 놋쇠로 만들어진 대접 모양의 소악기로 지름이 20cm 내외이며, 쇠ㆍ꽹매기라고도 한다. 일반 사람들에게 친숙한 꽹과리라는 이름은 농악이나 무악에 사용되었을 때 칭하는 말이고, 궁중 제향 등에 사용될 때는 소금이라 불리어왔다. 농악놀이에서는 꽹과리를 잡은 사람은 실질적인 지휘자 역할을 하는데, 이 사람을 일컬어 상쇠라고 한다. 다음 연주자는 부쇠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쇠는 꽹과리를 달리 쇠라고 하기 때문이다. 소리가 높은 수 꽹과리는 상쇠가 연주하고, 소리가 낮고 부드러운 암 꽹과리는 부쇠가 연주한다. 꽹과리 연주자 둘이 서로 가락을 주고받으며 음색을 대비시키기도 한다. 사물놀이도 마찬가지로 꽹과리 연주자가 지휘자 역할을 한다. 소리가 찬란하고 기교가 다양하므로 다른 악기들의 연주 가락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궁중 제향에서는 나무망치로 연주하지만, 농악이나 사물놀이에서는 단단한 탱자나무를 동그랗게 깎은 채를 오른손에 들고 연주하는데, 약간 비켜서 연주해야 쇠의 파열을 피할 수 있다. 꽹과리 끈을 잡은 왼손가락으로 꽹과리의 뒷면을 눌렀다 떼는 막음질을 하면서 연주하는데, 장단에 따라 여러 음색을 만들기도 한다.
나. 장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절주악기(節奏樂器)의 하나이다. 한자로 장고(杖鼓)라고 쓰고 있으며, 세요고(細腰鼓)라고 부르기도 한다. 『악학궤범』에 있는 『문헌통고』를 인용하여 장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갈고(羯鼓)ㆍ장고ㆍ요고(腰鼓)는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에서 사용되었다. 요고의 통은 큰 것은 질그릇으로, 작은 것은 나무로 만든다. 머리는 모두 넓고 허리는 가늘다. 송나라 소사(簫史)의 이른바 세요고가 이것이다. 오른쪽은 채로 치고 왼쪽은 손으로 친다. 후세에는 이것을 장구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때 송나라로부터 수입해 조정의 당악(唐樂)에 사용했다. 이후 현재까지 속악이나 민속악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장구는 오른손으로 대나무 쪽으로 만든 가는 채를 쥐고 그 채편을 연주하며, 왼손으로는 손바닥 또는 궁채를 활용하여 가죽을 친다. 양쪽 가죽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을 쌍(雙)이라 하고, 열채로 채편만 연주하는 것을 편(鞭), 왼손인 궁채로 가죽을 연주하는 것을 고(鼓), 그리고 열채로 굴리는 소리를 연주하는 것은 요(搖)라고 한다. 장구의 허리 쪽은 나무에다 칠포(漆布)를 새긴 것이 가장 좋고, 사기(磁)로 만든 것이 그다음이다. 허리 쪽에는 검정색이나 주홍색을 칠한다. 본래 가죽 양쪽 면에 철테를 두르고, 왼쪽 편(북편, 넓은 쪽)은 소가죽으로 하고 오른쪽 편(채편, 좁은 쪽)은 생말피로 만들어 왔으나, 현재는 북편은 소가죽이나 개가죽을 많이 쓰고, 채편은 말가죽이나 양가죽 혹은 얇은 소가죽으로 만든다. 갈고리쇠(鉤鐵)는 용두(龍頭)로 만들거나 두석(豆錫)을 사용한다. 연결하는 줄은 홍진사(紅眞絲)나 다홍 무명실을 사용하여 매듭을 맨다. 새 굴레(縮綬)는 청사피(靑斜皮)를 사용하고, 음악의 높낮음에 따라 새 굴레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음고를 조절하여 연주한다. 장구는 우리나라 음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악기로 사물장단을 비롯하여 기악장단, 민요장단 등 수많은 전통음악에서 연주된다. 꽹과리가 잔가락을 사용하여 연주한다면, 장구는 한 장단의 길이를 알려주기 위하여 장단마다 합장단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 북 북을 예전에는 통나무를 잘라서 안을 파내어 사용했으나 현재는 쪽 나무판들을 모아서 북통을 만들고 양면을 소가죽으로 씌운다. 이때, 가죽은 여러 가지가 사용되나 현재는 주로 소나 개의 가죽을 쓴다. 우리나라의 북은 사용에 따라 대략 20여 종이 있는데 현재는 약 10종가량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아울러 생김새에 따라 북 이름이 각각 다르다. 주로 농악에 사용되는 북은 장구와는 다르게 북편과 채편 가죽 구분을 두지 않았다. 통은 나무로 만들고, 양쪽에 끈을 매어 농악을 연주할 때 이 끈을 엮어 어깨에 메고 친다. 가죽 끝에 구멍을 뚫어 양면의 가죽들을 하나의 줄로 잡아당겨 조이는데, 북통과 줄 가운데에 나뭇조각을 넣어 가죽을 더 조이게 하여 북의 음정을 조절한다. 반면, 판소리에서 반주하는 소리북은 음정 조절을 할 수 없게 북통의 가죽을 한 번 싼 후, 양쪽에 각각의 가죽을 씌워 넓적한 둥근 못으로 고정한다. 과거 군대에서 사용하던 용고(龍鼓)북 또한 소리북과 같이 북통 사이에 둥근 쇠고리를 맸다. 반주용인 소리북은 악기의 고리를 손잡이로 사용했고, 농악에서 연주하는 북이나 용고의 경우 허리에 맬 수 있게 기저귀 천이나 무명천을 거는 매듭걸이로 활용했다. 북채는 모두 둥글게 깍은 나무로 만든 채를 사용한다.
라. 징 징은 농악은 물론이고 대취타(大吹打) 같은 궁중 음악에도 두루 쓰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악기 중에서 가장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궁중에서는 대금(大金)이라 칭하였고, 금징, 금, 고취징, 대야, 옥대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재밌는 사실 중 하나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악기 중, 징과 비슷하게 생긴 악기들이 있는데, 이것이 연주에서도 징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이라는 연주에서는 징보다 크기가 조금 더 큰 공(gong)이라는 악기가 음악 사이의 단락(phrase)을 표시하고, 태국에서는 징보다 조금 작은 칭(ching)이라는 악기가 징의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징은 왼손에 들어 연주하거나 나무틀에 매달아 놓고 오른손에 징 채를 들고 강박이나 중간마다 연하는데, 다른 타악기 소리를 은근히 감싸면서 음악의 전체적인 질서를 잡아준다. 징은 전통음악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종묘제례악 같은 곡에도 연주되고, 군대에서 전진이나 후퇴의 신호로 사용됐다. 대취타를 연주할 때는 곡을 시작하라는 뜻으로 징을 쳤다. 대취타에서는 ‘등채’가 “명금일하 대취타(嗚金一下 大吹打)”라고 외치는데 이 뜻은 징을 한 번 울려서 곡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징이 한 번 울리고 난 다음에는 북이 ‘따닥 딱’ 연주를 하며 템포를 잡고, 이후 모든 악기가 대취타를 연주한다. 징은 박자에 맞춰 한 번씩 두드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연주 방법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각 장단의 분위기 및 특성에 잘 맞게 조절하지 않으면 음악을 망치기 쉽다. 그 때문에 음악을 훤히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징 소리는 흔히 바람 소리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가만히 연주하면 여운이 길게 이어지며 은근하고 부드러운 바람결 같이 들린다. 힘 있게 연주할 때는 소리가 크고 웅장해 마치 태풍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굿을 할 때 엎어놓고 연주하면 여리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저녁에 부는 신비하고 고요한 바람 소리 같기도 하다.
마. 소고 농악에서 연주하는 소고는 다른 악기같이 리듬을 담당하는 기능보다 춤을 추는 연희자들이 손에 들고 연주하는 소도구의 역할을 한다. 다수의 소고잽이들이 상모를 돌면서 뛰고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고 소고를 치며 농악판을 화려하게 만든다. 이 소고 연주는 특히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발달하여 해당 지역에 소고춤의 명인들이 많았다. 예전에는 남사당패나 선소리패의 소고가 컸고, 농악패의 소고들은 지역에 따라 크기가 전부 달랐다. 그러나 현대의 소고는 지름이 21㎝(일곱 치) 정도와 24㎝(여덟 치) 정도의 크기로만 제작된다. 24㎝ 크기의 소고는 농악패에서 사용하거나 무용수 중 남자들이 주로 사용하고, 21㎝ 크기의 소고는 개인놀이나 소고춤 등에서 여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소고는 둥글며 폭이 4㎝ 정도 되는 북 끝 양쪽에 가죽을 대고, 이를 가죽끈 또는 노끈으로 단단히 메어 만든다. 현재는 전부 얇게 만들어진 소가죽으로 소고를 제작하지만, 예전에는 노루가죽이나 개가죽을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야생 노루로 만든 가죽은 질기고 공명이 좋아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광복 이후 노루가죽이 귀해져 1970년대 이전까지는 개가죽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개가죽이 구하기가 편했고, 가죽이 얇은 덕분에 고음의 소리가 나와 낮은 음색의 북과 대비되는 음고와 음색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고는 악기 자체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 경우 공명이 좋지 않아져 그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고통 아래에는 길이 12㎝ 정도의 손잡이를 다는데, 연주자 본인의 취향에 따라 장식을 더한다.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는 이 손잡이에 철판을 고리처럼 달아 소리를 내기도 했다. 소고채를 만들 때는 손가락 굵기로 곧은 나무를 사용한다. 주로 질기며 내구성이 튼튼한 물푸레나무를 사용하지만, 지역에 따라 열채와 비슷한 대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소고를 연주하는 방법은 손잡이를 왼손에 잡고 오른손에 소고채로 북의 앞뒤 면을 치며 춤도 추고 소리를 낸다.
바. 농기 농기는 ‘농산기’ㆍ‘대기(大旗)’ 등으로도 불린다. 농악패의 농기는 긴 대나무로 만든 깃대에 윗부분에 동정이라 하는 검은색 줄을 세 줄 그려서 넣고 풍년을 기원하는 두레 연주 때 마을의 상징으로 세워두었다. 농기의 문구는 ‘神農遺業(신농유업)’ 또는 ‘黃帝神農氏遺業(황제신농씨유업)’,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 등을 썼으나 현재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깃대의 맨 꼭대기에는 장끼의 꼬리털을 수십 개 묶어서 꽂는데, 농기는 힘이 센 사람이라도 혼자서 들고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무거워 깃대 중간에 새끼줄이나 말총 줄을 세 가닥씩 매어두기도 한다. 장정 한 사람이 허리 쪽에 받침대를 두고 기를 올려 들고, 보조원이 세 가닥으로 만든 줄을 잡아 넘어가지 않게 하며 운반한다. 농악판을 할 때는 농기를 세워두고 연희한다. 다른 동네 농악패에 농악의 기량을 뽐내거나, 실력을 겨루기 위해 이동 할때에도 농기를 가장 앞에 세운다. 목표한 동네의 입구에 다다르면 농기를 세워두고 그 자리에서 농악을 연주하며 그 동네의 농악패에서 응해주기를 기다린다. 농기를 가지고 연희를 하는 우리나라 대표 민속놀이로는 정월 대보름에 아우가 되는 작은 마을에서 형이 되는 큰 마을에 농기로 세배를 올려드리는 기세배(旗歲拜)가 있다. 사. 영기 영기는 농기의 절반 정도 되는 길이로, 사각이나 삼각의 기폭을 달아 사용한다. 원래 영기는 군대의 군 명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던 작은 기였다. 농민들이 사용하는 영기는 약 60∼70㎝의 정방형 모양의 작은 기다. 남색 혹은 붉은색의 비단으로 기폭을 만들었는데, 기폭 중앙에 ‘令(영)’자를 큼직하게 쓰거나 붉은 천으로 ‘令’자를 오려서 붙이기도 했다. 영기는 농기처럼 끝부분에 지네발을 오려 붙이지 않고 그대로 두어 밋밋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영기의 기폭을 고정하는 깃대는 길이 2m 정도의 대나무인데, 이 깃대의 꼭대기에는 삼지창의 창날을 꽂고, 창날 맨 밑에는 빨간색의 상모를 달기도 한다. 농악패는 두 개의 영기를 가지고 다닌다. 농악을 정식으로 연희할 때에는 농기를 제일 먼저 앞세우고 그 바로 뒤에 영기 두 개가 따라가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아. 용기 용기는 농기의 한 종류로 농악단 중 기수단에 편성이 된다. 기 중앙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용기’ 혹은 ‘용당기’, ‘용대기’ 등으로 불린다. 일부의 지역이지만 《전남 곡성 죽동농악》에서는 기폭에 ‘龍’ 문자를 써 그림을 대신하여 넣는 곳도 있고, 하동의 화촌마을 농악패와 같이 호랑이와 용을 같이 그려 더 화려하게 만든 곳도 있다. 마을 기에 관한 정확한 전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의 정확한 분포는 아직 분명히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용기는 《두레농악》 활동이 활발한 서쪽 혹은 전라도 지역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전라북도 전주시 삼천동 일대마을들에서는 용기가 집단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용기는 기 중앙에 용의 형상을 그리거나 용이라는 글자를 적어 넣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깃봉, 깃대, 기폭 등의 기본요소가 농기와 같다. 용기의 형상을 살펴보면 주로 용을 단독으로 그려 넣은 것이 대다수나, 그 밖의 부수적인 요소를 용의 주변에 배치해 넣은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마을마다 개성 있는 기를 만들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용기는 색깔로 구분을 짓기도 하는데, 황룡과 청룡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근래에 제작된 기들은 색깔을 달리하여 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용의 그림을 그린 사람들을 살펴보면 전문 화가나 스님이 가장 많다. 마을 사람 중에 그림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 그리는 경우도 있어, 그린 사람의 이름이 확인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웃다리농악의 연행형식 1. 《입장굿》 및 뜀벅구 《입장굿》이란 농악을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치는 굿으로 대열을 정리하고 각각의 치배들끼리 호흡을 맞추며 농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입장굿》은 농기, 영기, 용기, 태평소 등이 치배 앞 또는 옆에서 서고, 치배들은 깃발 뒤쪽 또는 옆쪽에서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피조리, 잡색 순으로 정렬하는 대형을 이룬다. 이 대형 앞에는 상쇠가 자리 잡는다. 《판굿》이 시작되면 상쇠는 가장 우두머리로서 지휘자 역할을 해야 하며, 모든 치배들은 상쇠의 지휘에 따라야 한다. 《입장굿》의 장단은 점고, 일채, 자진가락(휘모리), 덩덕쿵이(삼채), 자진가락(휘모리), 인사굿 순으로 진행된다. 자세한 가락 분석 및 대형은 아래 악보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점고를 칠 때의 대형은 들어가는 곳을 바라봤을 때 상쇠를 중심으로 왼쪽부터 기수, 부쇠 및 징, 장구, 북, 소고, 피조리 순으로 일자다. 이 입장놀이는 가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문굿》과 유사하다. 지금까지 농악에서의 《문굿》 형태를 살펴보면 《이리농악》의 《문굿》, 《영광농악》의 《문굿》, 《화순ㆍ한천농악》의 《문굿》 등 대체로 전라도 지방에서 연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 대형을 갖추고 농악을 연주할 준비가 되면 상쇠가 상북에게 신호를 주어 아래 〈악보 2〉와 같은 장단을 치게 한다. 《입장굿》의 장단은 점고, 일채, 이채(자진가락) 순으로 진행되며, 이는 전국의 대부분의 농악에서 동일하다. 《입장굿》 연주가 끝나면, 농악패는 덩덕쿵이 가락을 연주하며 원 대형을 만든 뒤 인사를 하러 들어간다. 이때의 대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통틀어 뜀벅구라 한다. 뜀벅구란 소고들이 뛴다는 뜻으로 마지막 자진가락 신호에 맞춰 소고들이 가운데서 솟음벅구 동작을 하는 것이 포인트다.
2. 〈당산벌림〉 1,2,3 〈당산벌림〉은 농악패 전원이 ㄷ자 형태를 만들어서 각자의 재주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웃다리농악에서는 총 3가지 형태의 〈당산벌림〉 놀이가 있다. 그 중 〈당산벌림〉 1은 웃다리농악의 대표적인 연행형식으로 경상도 농악이나 전라도 농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형을 이룬다. 상쇠의 신호에 맞춰 치배들과 소고수들은 4발정도 앞으로 나와 자진가락을 연주한다. 소고수들은 솟음벅구를 연행하고, 치배들은 양상을 돌리거나 제자리 연풍대를 돌며 연희한다. 이때 치배들과 소고수들은 11자 대형을 유지해야 한다. 〈당산벌림〉 2는 소고들이 ㄷ자 형태에서 모래시계 형태로 돌다가 11자 대형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당산벌림〉 1이 자진가락으로 연주하며 모든 치배들의 진법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라면, 〈당산벌림〉 2는 소고수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상벅구를 필두로 모래시계 형태로 이동할 때, 수벅구는 상모를 돌리고 발차기를 하면서 종대 이자진을 만든다. 모든 소고수들이 들어오면, 상모를 사사동작으로 돌리며 상쇠의 신호를 기다린다. 이때 치배들도 사사 또는 허튼상 동작을 사전에 정해놓고 연행한다. 마지막으로 〈당산벌림〉 3은 〈당산벌림〉 2의 연희가 끝난 후, 상쇠의 신호에 맞춰 일채를 연주하면서 소고수들이 반원을 만들었다가 다시 11자 대형을 만드는 연희 형태다. 반원 대형의 상태에서 상쇠가 자진가락을 내어주면 소고들은 개인기량을 뽐낸다. 그러다 상쇠의 가락이 짝쇠가락으로 바뀔 때, 소고들은 반원에서 원으로 대형을 바꾸며 양상을 돌리고 오른쪽으로 옆뛰기를 한다. 〈당산벌림〉 3의 특징은 〈당산벌림〉 2와 다르게 끝벅구가 종대 이자진을 만든다는 것이다. 전체 치배들은 자진가락과 함께 상모를 양상으로 돌리고, 소고들은 자진가락에 맞춰서 양상을 돌리다가 솟음벅구 동작과 번개상 동작까지 이어 연행한다. 이때 상쇠는 소고들의 번개상이 나올 때까지 자진가락 장단을 이어간다. 〈당산벌림〉 2와 3은 마당판에서 소고의 단체 대형놀이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장단이다. 〈당산벌림〉 2는 덩덕쿵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당산벌림〉 3은 자진가락으로 연주가 된다.
3. 칠채 오방진 육채 〈당산벌림〉이 모두 끝나면, 칠채와 오방진 육채가 진행된다. 칠채는 웃다리농악을 대표하는 가장 특색있는 가락중 하나로, 경기지역뿐 아니라 충청도, 황해도 지역 농악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웃다리농악을 연행하던 연주자들은 다른 마을로 이동할 때 칠채를 연주하며 이동했다. 그 때문에 이동하는 장단이라 하여 길군악 칠채라고 부르기도 한다. 웃다리농악의 쇠가락에는 길군악칠채, 굿거리, 자진가락, 덩덕쿵이, 삼채굿, 마당일채, 쩍쩍이가락, 취군가락, 동리삼채 등이 있는데, 다른 지역의 농악에 비해 가락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러 장단 가운데 길군악칠채는 웃다리농악의 가장 큰 특색으로 꼽힌다. 1978년에는 최초의 사물놀이 연주자인 김용배,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4인이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칠채를 선보인 바 있다. 마당에서만 연행하던 농악을 극장 무대 위로 올려, 웃다리 사물놀이를 공연한 것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웃다리 농악 가락중 쩍쩍이굿과 칠채가락은 가장 특색있는 장단이다. 칠채장단은 동ㆍ서ㆍ남ㆍ북ㆍ중앙의 오방진을 만드는 연행형식을 지니고 있다. 웃다리농악 중 〈당산벌림〉 3을 끝내고 난 뒤 상쇠는 다른 모든 치배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둥글게 말아가는 모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벙어리 칠채로 연주를 연결하면서 다시 원을 풀어 밖으로 나온다. 이를 멍석말이 또는 달팽이진이라고 부른다. 이어 상쇠는 다른 방위 쪽을 쌓기 위하여 가락을 치며 이동한다. 이 달팽이진을 반복하여 다섯 방위에 진을 치는 것을 오방진이라 부른다. 전통방식에 따라 칠채를 연주하며 오방을 모두 연행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있는 일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다섯 방위를 모두 만들지 않고, 세 군데 원에서 그치기도 한다. 이는 삼방울진이라 한다. 현대에는 공연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진을 한 번만 연행하는 경우도 있다. 멍석을 말았다가 풀어가는 모양 때문에 멍석말이라고도 하나 덕석몰이나 고동진 흑은 방울진이나 달팽이진이라고도 한다. 칠채는 상쇠를 시작으로 징, 장구, 북, 소고 순으로 달팽이진을 만들면서 줄을 이어 연행한다. 이때 치배들은 가락을 연주하며 달려나간다. 소고수들은 오방진이 만들어질 때 치배들의 뒤를 이어 자반뒤집기로 쫓아가는데, 자반뒤집기가 끝나면 끝북에 붙어 오방진을 계속 이어간다. 피조리들은 상피조리를 시작으로 오방진을 만들고 있는 치배들의 반대 방향으로 큰 원을 감싸는 대형을 갖춘다.
4. 피조리와 벅구의 〈마당놀음〉
칠채와 육채 오방진 놀음이 끝이 나면 원 한가운데 있는 상쇠가 자진가락 신호를 울린다. 동시에 치배들과 소고수들은 원을 풀어 다시 당산놀음 대형으로 이동한다. 자리가 정리되면 일채를 연주하며 대열을 만들고 피조리들이 〈당산벌림〉 사이로 이동을 한다. 피조리와 벅구의 〈마당놀음〉에서 상쇠는 삼채가락을 치며 쇠놀음을 한다. 동시에 〈찍금놀이〉를 위해 피조리들을 무대 중앙으로 불러낸다. 상쇠가 피조리를 이끌고 나올 때는 가락에 맞춰 한 걸음씩 총 네 걸음을 이동한다. 〈채발림〉과 〈학사위〉를 진행하며, 피조리에게 신호를 주고 쪼그려 앉게 한다. 〈찍금놀이〉 이후 대형을 원으로 바꾸고 피조리들은 깨끼춤을 이어 나간다.
〈마당놀음〉을 한 뒤, 피조리들은 깨끼춤을 위한 동작으로 대형을 바꾼다. 상쇠는 치배쪽으로 이동을 하여 쩍쩍이 가락을 연주한다. 여기서 피조리들은 가락에 맞춰 쩍쩍이 춤과 느린마치 춤을 춘다. 쩍쩍이 가락 중 테를 치는 동작에서는 모든 연주자들이 오금을 주어 호흡하여 동작을 같이 만든다.
쩍쩍이 장단을 연주하면, 피조리들은 상피조리를 중심으로 대형을 만든다. 대형이 만들어 지면 상쇠는 자진 다드래기 가락을 내며 모든 치배들과 피조리들이 함께 연주를 할 수 있게 한다. 자진 다드래기 춤은 피조리 놀음의 마지막을 알리며, 치배들과 소고수들도 흥겹게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한다.
피조리 놀음이 끝난 뒤에는 〈벅구 찍금놀음〉이 이어진다. 상쇠는 삼채가락을 치며 쇠놀음을 한다. 동시에 〈벅구 찍금놀이〉를 위해 소고수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무대 중앙으로 불러낸다. 〈피조리 찍금놀이〉에서 피조리들은 무대 정면을 바라보고 연행하는 것과 달리, 벅구 찍금놀음에서 벅구들은 악기 치배를 바라보고 연행을 한다. 상쇠가 소고수들을 이끌고 나올 때는 피조리 놀음 때와 마찬가지로 가락에 맞춰 한 걸음씩 총 네 걸음을 전진한다. 그리고 〈채발림〉과 〈학사위〉를 진행하면서 벅구 신호를 주고, 벅구들을 쪼그려 앉게 한다. 〈찍금놀이〉를 진행한 뒤, 벅구들은 상쇠의 신호에 맞춰 종대일자진, 사선진, 원진, 횡대이자진 등 여러 가지 진법을 보이면서 연희를 진행한다.
5. 각 좌우치기 및 〈따벅구〉 웃다리농악에서 좌우치기 연행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 첫 번째는 원 좌우치기다. 절구댕이 벅구 놀음이 끝나면 농악패는 원 대형을 만든다. 이 대형에서 상쇠는 가운데 서서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모든 연주자 및 피조리들은 원을 만들어 상쇠의 신호에 맞춰 원 안쪽을 바라본다. 상쇠가 좌우치기 장단의 신호를 주면 모든 치배와 소고수들은 좌우치기 장단을 연주한다. 피조리들은 옷 앞부분을 잡고 양팔을 벌려 손을 좌우로 움직이며 연행한다. 좌우치기 장단을 연주하며, 모든 연희자들은 장단에 맞춰 오른쪽으로 3번, 왼쪽으로 3번, 앞으로 3번, 뒤로 3번 움직이는 원 좌우치기 대형을 만든다. 원 좌우치기 연주가 끝나면 일채를 연주하며 대형을 6줄로 만들어, 대대 좌우치기 대형을 만든다. 이 때 대형의 앞에서 상쇠가 중심을 잡아주고, 모든 치배들은 왼쪽부터 부쇠 및 징, 장구, 북, 소고, 피조리 순으로 줄을 선다. 이 때 인원에 따라 소고수나 피조리는 두 줄을 만들어도 무관하다. 일채의 대형이 만들어지고 나면 자진가락을 연주를 하고, 대형을 정비한 뒤 좌우치기 가락을 다시 낸다. 이때 모든 치배들은 원 좌우치기와 동일하게 연주한다. 하지만 대형은 원 좌우치기와는 다르게 오른쪽으로 3번, 왼쪽으로 3번, 뒤로 3번, 앞으로 3번 움직인다. 이 대형은 대대 좌우치기라고도 하나, 악기의 구성을 따서 네줄백이 좌우치기라고도 한다. 〈따벅구〉도 웃다리농악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진행 중 하나다. 덩덕쿵이와 자진 덩덕쿵이 장단으로 연주한다. 〈따벅구〉는 ‘벅구들은 치배들이 꼬리 물기를 하듯 따고 돌아다닌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놀이의 진행이 굉장히 빠른 것이 특징이다. 〈따벅구〉와 대대 좌우치기까지 끝나면, 상쇠는 덩덕쿵이 가락을 내고 치배들은 장단을 이어받아 한 줄을 만든다. 이때 치배들 사이사이에 벅구들과 피조리들이 들어가 반원 대형을 새롭게 만든다. 반원을 만든 후, 좌우 각각 다른 쪽으로 크게 원을 만드는데, 상쇠가 상벅구와 부쇠에 교차점에서 신호를 내면 자진 덩덕쿵이를 연주하며 다시 역방향으로 원을 만든다. 이때 치배들이 안쪽에서 원을 만들고 벅구들이 바깥쪽에서 원을 만든다. 3바퀴정도 돌다가 다시 교차점이 생기면, 상쇠는 다시 신호장단을 내어 역방향으로 연희할 수 있게 한다. 이 대형은 여러 번 반복되는데, 이는 상쇠의 신호에 따라 그 횟수가 정해진다.
6. 십자진 및 〈도둑잽이〉 밀벅구 〈따벅구〉가 진행된 후, 상쇠의 신호 장단에 맞춰 모든 치배들은 덩덕쿵이 장단을 연주한다. 동시에 치배들 사이사이에 벅구와 피조리들이 교차로 들어가 한 줄을 만든다. 대형이 한 줄이 되면 중간에 장구잽이가 횡대로 나와 가운데 지점을 가로질러 십자 형태를 만든다. 이렇게 십자진 대형이 완성되면, 상쇠는 자진가락을 내며 대형을 정리한다. 십자진을 만든 후, 상쇠는 자진가락을 낸다. 이때 치배들은 외사를 돌리고 벅구잽이들은 양상을 돌린다. 자진가락을 연주하다 상쇠가 중간에 신호를 내면 치배사이에 있는 벅구들과 피조리들은 신호에 맞춰 오른쪽으로 한 발씩 두 번 대열을 움직인다. 그리고 상쇠의 맺음장단에 맞춰 다시 대열로 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도둑잽이〉다. 《도둑잽이 굿》은 십자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고 대형이 틀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도둑잽이 굿》이 끝나면, 상쇠는 덩덕쿵이를 내어주고 모든 치배들은 장단을 연주하며 다시 하나의 원을 만든다. 원을 만든 후 상쇠가 신호를 내면 자진 덩덕쿵이를 연주하며 뜀벅구 대형을 만든다. 뜀벅구 대형이 완성되면 상쇠는 넘김 신호를 주며 자진가락으로 장단을 바꾼다. 장단이 바뀌면 벅구들은 상쇠와 함께 본인의 기량을 뽐낸다. 이후 다시 상쇠가 신호를 주면 모든 치배들과 벅구들은 옆뛰기를 한다. 옆뛰기를 하다 넘김신호를 받으면 치배와 피조리들은 연풍대를 돌고 벅구들은 11자 대형으로 좌우로 한 발씩 이동하며 서로 밀어준다. 밀벅구는 이렇게 서로 한 번씩 밀고 받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쇠의 신호를 받은 모든 치배들은 덩덕쿵이를 연주한다. 동시에 정방향으로 이동하며 원을 만든다. 원이 완성되면 상쇠가 자진 덩덕쿵이 신호를 주고, 모든 소고수들은 상쇠를 중심으로 안쪽에 원을 만든다. 이때 치배들은 소고수들 바깥쪽으로 원을 만들어 쌍원진을 구성한다. 쌍원진이 완성되면 상쇠는 자진가락 신호를 주며 장단을 바꾼다. 자진가락 변주 신호를 받은 모든 치배들과 소고수들은 각자의 기량을 맘껏 발휘한다. 이어 전원 옆뛰기를 하는데, 소고수들은 상쇠의 맺는 신호를 받고 종대이자진 대형을 만든다. 그리고 한발씩 전진하고 후진하며 밀어주고 받는 것을 반복한다. 이 때 치배들은 모두 연풍대를 돌며 연희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상쇠의 맺음가락 신호가 나면 전원 가락과 동작을 멈추고 연희를 마친다.
○ 악곡 구성 웃다리농악에서 연주되는 장단은 칠채, 육채, 자진가락, 덩덕궁이, 쩍쩍이굿이며 그 중에서 칠채와 쩍쩍이굿은 웃다리농악에서만 볼 수 있는 장단이다. 자진가락, 덩덕궁이는 주로 웃다리농악 전체적으로 진행이 되는 장단으로 사용이 되었으며 특히 자진가락은 다음 진행을 위한 전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
《평택농악》: 중요무형문화재(1985)
웃다리농악은 경기 충청 지방에서 연행되어지던 농악이다. 웃다리농악은 경기도에서 주로 전승되는 농악으로, 멀리 황해도나 평안도까지 영향을 주었다. 웃다리농악은 평택 평야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안성과 평택에서 두레나 〈걸립〉이 성행하여, 남사당패가 안성에 본거지를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웃다리농악은 다른 지역의 농악에 비해 징과 북의 수가 적으며, 꽹과리놀이와 소고놀이가 발달했다. 잡색은 피조리, 스님, 대포수, 양반, 각시 등이 있는데, 그 중 피조리가 하는 무동의 수가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웃다리농악의 형식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판굿》의 짜임새가 다양하며, 피조리들의 놀이가 있다는 것이다. 《판굿》의 진행에서는 〈따벅구〉, 〈도둑잽이〉, 〈당산벌림〉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악학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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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현(全保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