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라립(松蘿笠), 승립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것으로 스님의 모자 -승려가 평상시에 납의(衲衣)와 함께 착용하는 모자를 통틀어 승립이라 하고 그 중 하나가 송낙 -여승이 평상시에 납의와 함께 쓰는 모자
송낙은 승려가 평상복에 쓰는 관으로 납의와 같이 착용하였으며 주로 여승이 착용하였고, 소나무 겨우살이를 사용해 상고시대의 변(弁)모양으로 엮어 만든 것이다. 형태는 대우와 양태(凉太)의 구분 없이 정수리가 뾰족한 원추형 모양이다.
예전에 여승이 주로 쓰던, 송라를 우산 모양으로 엮어 만든 모자이다. 『연산군일기』 3년조에는 “성종은 갓 모양이 마루가 둥글고 차양이 넓은 것은 중의 갓을 본뜬 것 같다 하여 싫어하였다(成宗惡笠體圓頂而詹廣如僧笠模形).”라고 하여, 조선 초의 승립은 입체(笠體)가 둥글고 차양이 넓은 형태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시대 때 일반서민의 갓은 그 착용이 일반화됨에 따라 모양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갓의 모양에 대하여 처음 논의가 된 것은 성종 때로 『성종실록』에 “갓 모양이 승립과 비슷하니 그 제도를 개정한다.”고 하였다. 이 사실과 함께 『명종실록』에 “갓의 첨단이 너무 넓어 승립과 같아 이를 개정한다.”고 한 사실 등에서 일반의 입제는 사회계층에 따라 그 형태가 여러 번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승립은 대체로 일반적인 입제 발달과 보조를 맞추면서 전통성을 지켜왔다. 지의류(地衣類)인 소나무 겨우살이(송라)로 짚주저리 비슷하게 엮어 만드는 원정관(圓頂冠)으로, 정상(頂上)이 뾰족한 원추 형태(원뿔꼴)를 이루고 있어 상고시대의 고유 관모(冠帽)와 닮았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저마포제(苧麻布製)의 고깔이 있다.
승려의 관모로는 원정관, 죽립(竹笠), 굴립(屈笠), 송낙, 고깔 등이 있어 약간의 형태적 차이가 있었다. 그 중 송낙은 승려의 여러 관모 중 하나로, 송라립(松羅笠) 이나 승립(僧笠)이라고도 한다. 대우(모자의 원통 모양 부분)와 양태(凉太)(모자 밑의 둥글넓적한 부분)의 구분 없이 정수리가 뾰족한 원추형인데, 이러한 형태의 관모는 우리 민족이 상고시대부터 착용해 온 고유의 변형(弁形) 관모로 볼 수 있다. 소재를 송라에서 저마포(苧麻布)로 바꾸면 승려의 또 다른 고유 관모인 고깔이 된다. 소나무 겨우살이, 즉 소나무에 기생하는 지의류(地衣類)인 송라로 짚주저리 비슷하게 엮는데, 위는 촘촘히 엮고 아래는 15㎝ 정도 엮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위는 뾰족한 삼각형이나 정수리 부분은 뚫려 있어, 기본형상은 상고시대의 고유관모인 변(弁)과 비슷하다. 자연소재인 송라를 사용하므로 색상은 노랑색에 가깝고, 햇빛을 가리고 비를 피하는데 용이하여 승려의 일상복인 납의(納衣, 버려진 천을 이어 만든 옷)와 함께 착용하였다. 또한 자연에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검소하고 청빈하나 누추하거나 남루한 인상을 준다. 따라서 승려는 수도승으로서 금욕적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일반 대중을 대면하거나 탁발할 때 송낙과 납의를 주로 착용하였다. 윗부분만 엮고 아래는 그대로 둔 송낙을 착용한 탁발승의 모습은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다.
송낙은 승려의 관모로 한국 고유의 관모 양식인 변형을 띤다. 변형 관모를 승관(僧冠)으로 착용하는 풍습은 불교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중국에서 함께 전래된 승복의 외래적 요소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또 머리를 깎아 관모 착용이 제한된 승려에게 송낙은 납의와 함께 수도승으로서 검소하고 청빈한 종교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송낙은 자연의 재해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관모 고유의 기능적 측면과 함께 한국의 자연에서 재료를 쉽게 채집하여 제작, 착용할 수 있는 실용적 측면도 가진다.
『연려실기술』 문화관광부·한국복식문화 2000년 조직위원회, 『우리옷이천년』, 미술문화, 2001.
안명숙(安明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