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립(方笠), 노립(蘆笠), 사립(簑笠), 두봉(斗篷), 농립(農笠), 우립(雨笠), 야립(野笠)
갈대나 대오리로 거칠게 엮어 비나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우산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 쓰개
삿갓은 대오리(가늘게 쪼갠 댓개비)나 갈대를 엮어 만들어 비나 햇볕을 가리기 위해 쓰는 갓으로 농사 시 쓰는 농립(農笠), 비 올 때 쓰는 우립(雨笠), 승려들이 쓰는 대삿갓(竹笠), 서민층의 부녀자들이 쓰는 부녀삿갓, 여승(女僧)이 쓰는 가는 대살로 만든 세대삿갓(細竹笠) 등이 있다.
삿갓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입자 중 하나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쓰인 고유 관모이며, 개화기 이후 근대까지 서민들이 착용했던 모자이다. 머리 정수리는 뾰족하게 위로 솟았고, 육각이나 둥근 모양으로 된 둘레는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크게 만들었다. 삿갓은 먼저 쓰는 사람의 얼굴을 가릴 정도의 너비로 대오리를 끊어 8mm정도로 쪼개어 다듬은 후 꼭지부터 엮기 시작해 끝으로 갈수록 점점 넓은 원추형으로 엮어 제작한다. 가장자리가 육각형을 이루도록 곱게 도련을 하고 안에는 미사리를 넣어 머리에 고정되도록 한다. 대우(모자의 원통 모양 부분)와 양태(모자 밑의 둥글넓적한 부분)의 구분 없이 모자 꼭지부터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오는 원추형이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햇볕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에 쉽다. 출입할 때 햇빛을 가리거나 비바람을 피하였으며 갈대로 만든 넓은 방립형 갓으로 끈을 매지 않아 사람을 피할 때 삿갓을 기울여 얼굴과 몸을 가렸다. 방랑 시인 김삿갓 덕분에 잘 알려진 모자로, 주로 천민이나 방랑객이 썼던 삼각 모양의 모자를 일컫는다. 갈대나 대오리로 거칠게 엮어 만든 삿갓의 용도는 매우 다양했다. 농사를 지을 때 햇볕을 가리기 위해 쓰기도 했고, 비 오는 날엔 우산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서민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삿갓을 쓰기도 했다.
삿갓은 갈대나 대오리를 사용해 만들므로 재료가 흔하고 값이 싸고, 만들기도 어렵지 않으므로 대개 농군들이 많이 사용하여 농립(農笠)이라고도 하였다. 또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내외(內外)를 하기 위한 삿갓은 더 크고 깊게 만들어 썼다. 중앙이 뾰족하게 위로 솟고 둘레는 둥글거나 육각으로 만들어 아래로 숙이게 하여 얼굴을 덮어 가리고 속에 미사리를 넣어서 머리에 쓰기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삿갓은 갈대를 쪼개 말린 삿을 엮어 만든다.
삿을 일정한 너비로 다듬어 끝이 뾰족하게 꼭지를 얽고, 점차 벌어지게 엮으면 사람 얼굴이 가려질 만한 길이에 이르는데 이때 배접하여 마무리한다. 삿갓의 종류는 재료, 용도 등에 따라 나뉘는데, 특히 승려용 삿갓은 길이가 길고 너비가 넉넉하며 대나무를 이용해 만들어 ‘대삿갓’이라고도 하였다. 일상에서는 대개 농민이 작업용으로 많이 써서 ‘농립’이라고 불렸으며, 상을 당하여 슬픔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릴 때는 ‘상립(喪笠)’으로도 불렸다. 얼굴을 가리기 용이하여 방랑객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하며, 마찬가지로 부녀자들이 외출을 할 때 얼굴을 가리는 차면용으로 쓰기도 하였다. 여성용은 더 섬세하게 만들어져서 ‘세(細)대삿갓’이라고도 하였지만, 대개 삿갓은 서민 남자들의 모자로 애용되었다. 용도상으로 보면 삿갓은 발생 초기의 기능 그대로 실용적인 용구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는 대부분의 쓰개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대사회적인 구실을 해 왔던 것과는 다르다. 삿갓의 재료에 따라 늘(부들)을 원료로 한 늘삿갓, 가늘게 쪼갠 댓개비(대오리)를 가지고 만든 대삿갓 및 세(細)대삿갓 등으로 분류된다. 늘삿갓은 주로 경기도 일원과 황해도 일부에 걸쳐 선비들이나 부녀자의 내외용 쓰개로도 사용되었으며, 대삿갓은 남자 스님들이, 세대삿갓은 여자 스님들이 사용하였다. 삿갓은 그 형태로 볼 때 오늘날까지 상당히 원시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갓의 정수리에서 양태까지 민듯하게 내려와 모자집과 테의 구별이 없는 모습으로, 입제(笠制)의 형태상 원시형인 방립형(方笠型)에 속한다. 재질에 따라 갈대로 만든 것을 삿갓이라 하고, 참대로 만든 것은 참대삿갓, 종이로 된 것은 지삿갓, 소나무 겨우살이로 제작한 것은 송낙이라고 하였다. 부녀자들의 내외용 삿갓은 부들(늘)의 줄기로 만들기에 늘삿갓 이라고 했다. 주로 서북지방에서 사용되었으며, 여인들이 일할 때나 나들이 갈 때, 비막이용이나 햇볕가리개, 또는 얼굴을 가리는 데에 유용하게 이용되었다. 그 밖에 용도나 신분에 따라, 비나 햇볕을 가리기 위해 쓰는 것은 농립(農笠), 비올 때 쓰는 것은 우립(雨笠)이라고 하며, 승려들이 쓰는 것은 대삿갓, 서민층의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쓰는 부녀 삿갓, 여승이 쓰는 가는 대살로 만든 세(細)대삿갓 등이 있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가운데 〈이승영기(尼僧迎妓)〉에 세대삿갓을 쓴 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의 쓰개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사회적 구실을 한 반면, 삿갓은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 차이가 있다.
삿갓은 고유 관모 양식인 변형(弁形)을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한국 복식의 역사와 함께했다. 상류층이나 관료 계급에 편중되었던 전통사회의 입제(笠制) 중 햇빛이나 비를 효율적으로 막아냄으로써 쓰임과 용도가 매우 다양한 서민의 모자로 명맥을 이어 왔다. 또한 자연에서 쉽게 재료를 채취하여 제작할 수 있었고, 상을 당했을 때나 부녀자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회 규범에 적합하여 개화기 이후 근대까지 애용되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관모와 수식』, 단국대학교출판부, 1993. 온양민속박물관, 『조선시대의 관모』, (재)계몽문화재단, 1989.
안명숙(安明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