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관악기를 크기 별로 분류할 때 상대적으로 큰 것을 이르는 일반 명칭. ② 대금의 이칭. ③ 서양악기 ‘플륫(flute)’의 한자 표기.
일반적으로 횡적 류의 악기를 대적ㆍ중적ㆍ소적으로 분류할 때 상대적으로 큰 것을 가리키며 대금의 이칭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대한제국기에 수용된 양악기를 한자로 기록할 때 ‘플륫(flute)’을 대적이라고 하였다.
대적이라는 악기 명칭은 1433년(세종 15) 5월에 문소전 제례악의 악기 편성 목록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이 목록에 대금은 없고, 그 대신 '대적'이 있으며, 1448(세종 30)년에 내불당(內佛堂)에서 개최된 불교의례 경찬회(慶讚會)에서 궁중악대가 주악을 담당했을 때, 그 악대 편성 목록에 대금ㆍ중금ㆍ소금 대신 대적ㆍ중적ㆍ소적이 포함되었다. 또한 『세종실록』 권132 「오례」의 ‘가례서례’ 에 도설에도 대금 대신 ‘대적’이 수록되었는데 악기의 세부 묘사 및 관대에 뚫린 구멍의 위치와 수가 『 『악학궤범』 대금과는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유사하다. 이로서 대적은 대금의 이칭으로 사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형태와 구조
『세종실록』 권132 「오례」의 ‘가례서례’ 에 수록된 악기 그림에 ‘대적’이 등재되어 있는데 악기의 세부 묘사 및 관대에 뚫린 구멍의 위치와 수가 『악학궤범』 대금과는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대금과 유사하다.
대적이라는 명칭을 통해 관악기를 문자로 표기할 때의 일반적 관행을 알 수 있다. 주로 횡적류 관악기 ‘금(笒)’이 ‘적(笛’)과 동일시되었으며, 크기 별로 구분하여 큰 것을 ‘대적’이라 하였다. 송방송의 『한겨레음악대사전』에서는 『세종실록』 「오례」 ‘가례서례’의 대적을 대금과 별개의 악기로 보고 세종 이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단정하였으나, 이 점은 재고를 요한다.
『삼국사기』 『세종실록』 『증보문헌비고』 홍영후 난파, 「음악상의 신지식」, 『삼광』 창간호, 1919.02. <부산일보> , 1935년 10월 10일 제5면
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