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에 편종(編鐘)ㆍ특종(特鐘) 등을 만들던 기구.
주종소는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주조한 편종의 음률이 조화롭지 않으니 기구를 만들어 제대로 종을 주조해야 한다는 필요가 제기됨에 따라 조선 왕실에 특별히 설치된 기구이다.
편종은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유입된 악기로 처음에는 송나라에서 수입된 상태 그대로 악기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악기를 새로 제작해야 할 상황이 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종을 새롭게 만들어 쓰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주조한 편종은 중국에서 준 악기의 제도에 따라 주조한 것이지만 구리와 주석의 중량 비율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음률이 조화롭지 못하였다. 또 악기가 필요한 만큼 충분히 제작되지도 못하였다. 이에 따라 1429년(세종 11) 2월 8일에 예조가 주종소(鑄鐘所) 설치를 건의함에 따라 주종소가 설치되었다.
주종소는 처음에 편종의 제작을 위해 건립되어야 한다는 예조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는데, 주로 편종, 특종(特鐘) 등의 악기를 만들었지만, 종 외에도 여러 아악기도 함께 만들었고 아울러 악기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였다. 1430년(세종 12)에는 생(笙)ㆍ우(竽)ㆍ화(和)의 제도 및 관(管)의 제도도 상고해서 아뢴 적이 있고. 어(敔)를 연주하는 법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주종소는 종 계통의 악기 제작 및 여타 아악기의 제작 및 연구를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주종소는 악기 외의 물건도 만들었는데 1429년(세종 11)에는 일본 국왕이 구하는 향로, 물병, 화분 등도 만들었고 1433년(세종 15)에는 의술을 익히는 용도를 위해 구리로 사람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주종소는 종 계통의 악기 제작 외에도 아악기 제작 여타 물품을 제작한 기구임을 알 수 있다.
주종소는 종의 제작만이 아니라 악기 연구도 수행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편종을 연주할 때 치는 위치에 따라 음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지하고 『주례』, 『문헌통고』, 송나라의 반악도(頒樂圖)의 종형법(鐘形法) 등을 연구하여 종면에 수형(鐩形)을 넣어 주조하도록 한 것도 주종소의 연구 성과에 따른 것이다. 또 주종소가 종 계통의 악기만을 만드는 곳이라 인식한 것과 달리 생ㆍ우ㆍ화ㆍ관 등 아악기의 제도에 대해서도 연구하였고, 악기 이외의 여러 물건 및 의술을 위해 구리로 된 사람 형상 등을 만든 점은 주종소에 대해 보다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송지원, 「규장각 소장 조선왕실의 악기제작 의궤 고찰」, 『국악원논문집』 23, 2011.
송지원(宋芝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