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장단에 굿거리장단을 섞어 넣거나 장단 전체를 굿거리장단으로 대체하여 부르는 시조(時調)
굿거리시조는 시조장단에 굿거리장단을 섞어 넣거나, 장단 전체를 굿거리장단으로 대체한 시조이다. 넓은 의미로 굿거리시조라 하면 〈굿거리사설시조〉까지 아우른다. 굿거리시조로는 “육칠월 흐린날에”와 “생매잡아”, 〈굿거리사설시조〉로는 “거미야 거미야”가 전한다.
굿거리시조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경태(鄭坰兌, 1916~2003)가 굿거리시조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의 음원과 함께 그가 엮은 시조 악보에 선율선보로 전해진다. 현재는 거의 불리지 않는다. 정경태의 『국악보』에 의하면 굿거리시조 “육칠월 흐린날에”와 〈굿거리사설시조〉 “거미야 거미야”는 전주 우송여관 주인이었던 주순옥(호: 우송, 예명: 백운선)의 창을 채보한 것이고, 굿거리시조 “생매잡아”는 흥덕 출신 김춘경의 창제(唱制)인데 일부 선율을 정경태 자신이 바꾸었다고 한다.
○ 음악적 특징 정경태의 굿거리시조는 모두 굿거리장단으로 되어 있다. 〈굿거리사설시조〉는 초장과 중장은 굿거리장단으로 부르고, 종장은 일반 〈평시조〉와 같이 5-8-5-8박으로 부른다. 종장의 첫째 장단은 경제(京制) 〈평시조〉의 선율형으로 시작하고 그 나머지 장단에서는 글자 수가 많아지면서 〈사설시조〉의 선율형으로 부른다. 굿거리시조와 〈굿거리사설시조〉의 글자 수는 각각 중형 및 장형시조에 해당한다. 초장ㆍ중장ㆍ종장의 끝부분은 여느 시조의 맺는 선율형과 같다.
⋅ 굿거리시조 “육칠월 흐린날에” (초장) 육칠월(六七月) 흐린 날에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곰방이 물고 잠방이 입고 낫 갈아 차고 큰 가래 메고 호망이 들고 채찍 들고 수수대잎 똑 떼어 머리를 질끈 동이고 감은 암소 고삐를 툭툭 체쳐 이리어 어리어 낄낄 소 몰아가는 노랑 대가리 다방머리 아희놈아 게 좀 섰거라 말 물어보자 (중장) 저기 저 응등이 저점때 장마에 고기를 많이 속끈 몰았으니 너희 종 다라끼에 가득 소복 많이 담아 짚을 추려 마개를 하고 양끝 동여 네 소 궁둥이 얹어주게 지내면서 임의 집에 전하여 주렴 (종장) 우리도 사주팔자 기박하여 남의 집 머슴사는고로 초저녁이면 새끼를 꼬고 정(正)밤중이면 언문자(諺文字)나 뜯어보고 새벽이면 쇠물을 하고 낮에로는 농사하여 한 달에 술 담배 깨트여 수백 번 먹은 맘이라 전할똥 말똥. ⋅ 〈굿거리사설시조〉 “거미야” (초장) 거미야 거미야 왕거미 덕거미 검고 푸리고 살찌고 다리 긴 저 왕거미야 (중장) 너난 네 줄 길게 늘이어 의주(義州) 통군정(統軍亭) 성천(成川)의 강선(降仙) 평양(平壤)의 연광정(練光亭) 부벽루(浮碧樓) 돌아 영명사(永明寺)로부터 송악(松嶽)에 들면 송학(松鶴) 청학(靑鶴) 좋다 술렁 어중청 걸고 곱걸어 날짐생 날버러지 다 주엄주엄 주어먹는 더 왕거미 덕거미야 (종장) 아마도 저난 제 줄 길게 늘여 천 리 만 리나 왕래하기는 저 왕거미 덕거미인가.
굿거리시조와 〈굿거리사설시조〉는 일반 시조 장단을 벗어나 민속악 장단인 굿거리장단을 도입하여 〈시조〉의 음악적 폭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굿거리시조 “육칠월 흐린날에”와 “생매잡아”의 노랫말은 〈휘모리잡가〉의 노랫말로도 사용되고, 선율 또한 〈휘모리잡가〉와 비슷한 점이 있다. “육칠월 흐린날에”는 또 『아양금보(峨洋琴譜)』의 〈시쥬역난갈악〉과 여창가곡 〈환계락(還界樂)〉으로 부르는 “앞내나 뒷내나 중에”와 서사 구성이 비슷하다. 〈굿거리사설시조〉 “거미야 거미야”는 부산 지역 농요 〈모심기소리〉로도 전한다. 이들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정경태, 『국악보』, 보광출판사, 1955. 정경태, 『수정주해 선율선 시조보』(5판), 명진문화, 1996.
문현(文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