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에 수록된 「후적벽부」를 현토(懸吐)하여 부르는 서울식 송서(誦書)
후적벽부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후적벽부」에 현토(懸吐)하여 노래하는 송서로, 20세기 초 경성방송국을 통해 방송되었다.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다.
『고문진보』에 수록된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후적벽부」가 20세기 초 전문음악인들에 의해 불리면서 송서의 한 곡으로 자리잡았다.
후적벽부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북송(北宋)의 소식이 지은 「후적벽부」를 현토하여 부른다. 『고문진보』에는 소식이 지은 「전적벽부(前赤壁賦)」와 「후적벽부」가 있는데, 「전적벽부」를 바탕으로 노래하는 송서로는 서도식 송서 <적벽부>와 서울식 송서 <전적벽부>가 있으며, 「후적벽부」를 노래하는 송서 후적벽부는 서울식 송서이다. 후적벽부는 1930년대 경성방송국을 통해 방송되기도 하였으나,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이나 〈삼설기(三說記)〉 등의 소설류 송서에 비해 방송 횟수가 적다. 현재 후적벽부는 전승되지 않는다.
방송 일시 | 곡명 | 연주자 |
1936. 11. 29(일) 20:40~ | 송서 후적벽부ㆍ 등왕각서 | 申國均 |
1937. 11. 18(목) 20:55~ | 송서 후적벽부ㆍ출사표 | 劉聖玉 |
시세(是歲) 시월지망(十月之望)에 보자설당(步者雪堂)하여 장귀우임고(將歸于臨皐)할새 이객(二客)이 종여(從予)라 과항니지판(過黃泥之坂)하니 상로기강(霜露旣降)하고 목엽(木葉)이 진탈(盡脫)이라 인영(人影)이 재지(在地)어늘 앙견명월(仰見明月)이라 고이락지(顧而樂之)하여 행가상답(行歌相答)이러니 이이(已而)오 탄왈(嘆曰) 유객(有客)이면 무주(無酒)요 유주(有酒)면 무효(無肴)니 월백풍청(月白風淸)이라 여차양야(如此良夜)에 하(何)오 객왈(客曰) 금자(今者) 박모(薄暮)에 거망득어(擧網得魚)하니 거구세린(巨口細鱗)이 상여송강지로(狀如松江之鱸)라 고안소득주호(顧安所得酒乎)오 귀이모저부(歸而謀諸婦)하니 부왈(婦曰) 아유두주(我有斗酒)하여 장지구의(藏之久矣)라 이대자(以待子) 불시지수(不時之需)로다 어시(於是)에 휴주여어(攜酒與魚)하고 부유어적벽지하(復遊於赤壁之下)하니 강류유성(江流有聲)이요 단안(斷岸)이 천척(千尺)이라 산고월소(山高月小)하고 수락석출(水落石出)이로다 증일월지기하(曾日月之幾何)오 이강산(而江山)을 불가부식의(不可復識矣)라 여내섭의이상(予乃攝衣而上)하여 이참암(履巉巖) 피몽용(披蒙茸)하고 거호표(踞虎豹) 등규룡(登龍)하여 반서골지위소(攀棲鶻之危巢)하고 부풍이지유궁(俯馮夷之幽宮)하니 개이객(盖二客)이 불능종언(不能從焉)이라 획연장소(劃然長嘯)하니 초목(草木)이 진동(震動)하고 산명곡응(山鳴谷應)이요 풍기수용(風起水涌)이라 여역초연이비(予亦俏然而悲)하고 숙연이공(肅然而恐)하여 늠호(凜乎) 기불가유야(其不可留也)새 반이등주(反而登舟)하여 방호중류(放乎中流)하여 청기소지이휴언(聽其所止而休焉)하니 시야장반(時夜將半)이라 사고적요(四顧寂寥)러니 적유고학(適有孤鶴)하고 횡강동래(橫江東來)하여 시여거륜(翅如車輪)하니 원상호의(元裳縞衣)하여 알연장명(戛然長鳴)하니 약여주이서야(掠予舟而西也)라 수유객거(須臾客去)하고 여역취수(予亦就睡)러니 몽(夢)에 일도사(一道士) 우의편선(羽衣翩僊)하여 과임고지하(過臨皐之下)하여 읍여이언왈(揖予而言曰) 적벽지유락호(赤壁之遊樂乎)아 문기성명(問其姓名)호대 면이부답(俛而不答)이니 오호(嗚呼) 희희(噫嘻)라 아지지의(我知之矣)왜라 주석지야(疇昔之夜)에 비명이과아자(飛鳴而過我者) 비자야야(非子也耶)아 도사고소(道士顧笑)하고 여역경오(予亦驚悟)하여 개호시지(開戶視之)하니 불견기처(不見其處)라. 노랫말 출처: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고문(古文)에 현토하여 부르는 후적벽부는 서도식 송서나 소설류 송서에 비해 전통사회의 성독(聲讀) 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음악 문화가 재편되면서 성독 문화도 전승이 약화되었고, 후적벽부도 전승이 끊어졌다.
성기련, 「‘글 읽는 소리’의 전통 속에서 살펴 본 송서의 개념 변화 및 사설붙임의 특징」, 『국악원논문집』 32, 2015.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민속원, 1999.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