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에 수록된 「등왕각서」에 현토(懸吐)하여 부르는 서울식 송서
등왕각서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등왕각서」를 현토하여 노래하는 서울식 송서이다. 20세기 초 경성방송국에서 방송되었고 유성기음반에 녹음되었으며 당시 주요 창자였던 이문원(李文源)의 등왕각서가 묵계월(墨桂月, 1921~2014)로 전승되었다.
『고문진보』에 수록된 당나라 왕발(王勃, 650~676)의 「등왕각서」가 전문음악인에 의해 불리면서 송서의 한 곡으로 자리 잡았다.
○ 역사 변천 과정 송서 등왕각서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당나라 왕발의 「등왕각서」를 현토하여 부른다. 「등왕각서」는 왕발이 등왕각을 중수한 기념으로 베푼 연회에 참여했을 때에 지은 누대의 서문이다. 고문을 낭송조로 노래하는 전통사회의 성독(聲讀) 문화를 바탕으로 송서 등왕각서가 가객에 의해 가창되었다. 등왕각서는 20세기 초 경성방송국과 유성기음반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등왕각서 같은 고문진보류 송서보다 <추풍감별곡>이나 <삼설기> 같은 소설류 송서가 인기가 많았으며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소설류 송서가 더 활발히 유통되었다.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20세기 음악문화가 재편되면서 등왕각서는 점차 불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1935.05.14(월) 21:10- | 誦書와 詠詩 | 藤王閣序, 關山戎馬 | 申國均 | 1936.08.10(월) 21:00- | 時調와 誦書 | 時調, 藤王閣序 | 張玉花 | 1936.11.29(일) 20:40- | 誦書 | 後赤壁賦, 藤王閣序 | 申國均 | 1938.6.26(일) 21:15- | 誦書 | 藤王閣序, 黃州竹樓記 | 劉聖玉 |
1933년 | Columbia40390-B | 詩朗吟 | 謄王閣序 | 李文源 | 1943년 | Taihei3037A | 誦書 | 謄王閣序 | 張玉花 | Taihei3037B | 詠詩 | 謄王閣序 | 張玉花 |
○ 전승 현황 1930년대 서울 지역에서 활동한 가객 이문원이 부른 등왕각서가 묵계월로 이어졌다.
○ 음악적 특징 등왕각서의 가사 붙임새는 창자에 따라 1자 1박, 1자 2박 혹은 2자 3박으로 차이가 있지만, 창자마다 나름의 규칙성을 가지고 사설을 붙인다. 선율은 몇 개의 기본 선율형을 토대로 이를 변형하거나 조합을 달리하여 진행하는 송서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인다.
남창(南昌)은 고군(故郡)이요 홍도(洪都)는 신부(新府)라 성분익진(星分翼軫)하고 지접형려(地接衡廬)하며 금삼강이대오호(襟三江而帶五湖)하고 공만형이인구월(控蠻荊而引甌越)이라 물화(物華)는 천보(天寶)라 용광(龍光)이 사두우지허(射斗牛之墟)하고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서유(徐孺)이 하진번지탑(下陳蕃之榻)이라 웅주무열(雄州霧列)하고 준채성치(俊彩星馳)라 대황(臺隍)은 침이하지교(枕夷夏之交)하고 빈주(賓主)는 진동남지미(盡東南之美)라 도독염공지아망(都督閻公之雅望)은 계극요임(棨戟遙臨)하고 우문신주지의범(宇文新州之懿範)은 첨유잠주(襜帷暫駐)로다 십순휴가(十旬休暇)하니 승우여운(勝友如雲)이요 천리봉영(千里逢迎)하니 고붕(高朋)이 만좌(滿座)라 등교기봉(登蛟起鳳)은 맹학사지조종(孟學士之詞宗)이요 자전청상(紫電淸霜)은 왕장군지무고(王將軍之武庫)라 가군(家君)이 작재(作宰)하니 노출명구(路出名區)라 동자(童子)이 하지(何知)오 궁봉승전(躬逢勝餞)이라 시유구월(時維九月)이요 서속삼추(序屬三秋)라 요수진이한담청(료水盡而寒潭淸)하고 연광응이모산자(煙光凝而暮山紫)라 엄참비어상로(儼驂騑於上路)하야 방풍경어숭아(訪風景於崇阿)라 임제자지장주(臨帝子之長洲)하여 득선인지구관(得仙人之舊館)이라 층만(層巒)이 용취(聳翠)하니 상출중소(上出重霄)하고 비각(飛閣)이 상단(丹)하니 하림무지(下臨無地)로다. 학정부저(鶴汀鳧渚)난 궁도서지영회(窮島嶼之영廻)하고 계전난궁(桂殿蘭宮)은 즉망만지체세(列崗巒之體勢)라 피수수달(披綉綉闥)하고 부조맹(俯雕甍)하니 산원광기영시(山原曠其盈視)하고 천택우기해촉(川澤盱其駭矚)이라 여염(閭閻)이 박지(撲地)하니 종명정식지가(鐘鳴鼎食之家)요 가함(舸艦)이 미진(迷津)하니 청작황룡지축(靑雀黃龍之舳)이라 홍소우제(虹銷雨霽)하니 채철운구(彩徹雲衢)라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어주(漁舟)는 창만(唱晩)하니 향궁팽려지빈(響窮彭蠡之濱)하고 안진(雁陣)이 경한(驚寒)하니 성단형양지포(聲斷衡陽之浦)로다 요음부창(遙吟俯暢)하니 일흥(逸興)이 천비(遄飛)라 상뢰(爽籟)이 발이청풍생(發而淸風生)하고 섬가(纖歌)이 응이백운알(凝而白雲遏)이라 휴원록죽(睢園綠竹)은 기릉팽택기준(氣凌彭澤之樽)이오 업수주화(鄴水朱華)는 광조임천지필(光照臨川之筆)이라 사미구(四美具)하고 이난(二難)이 병(幷)하니 궁제면허중천(窮睇眄於中天)하고 극오유어가일(極娛遊於暇日)이라 천고지형(天高地逈)하니 각우주지무궁(覺宇宙之無窮)이요 흥진비래(興盡悲來)하니 식영허지유수(識盈虛之有數)라 망장안어일하(望長安於日下)하고 지오회어운간(知吳會於雲間)이라 지세(地勢)이 극이남명(極而南溟)이 심(深)하고 천주고이북신원(天柱高而北辰遠)이라 관산(關山)을 난월(難越)하니 수비실로지인(誰悲失路之人)고 평수상봉(萍水相逢)하니 진시타향지객(盡是他鄕之客)이라 회제혼이불견(懷帝閽而不見)하니 봉선실이하년(奉宣室以何年)가 오호(嗚呼)라 시운(時運)이 부제(不齊)하고 명도(命途)이 다천(多舛)하야 풍당(馮唐)이 이로(易老)하고 이광(李廣)이 난봉(難封)이라 굴가의어장사(屈賈誼於長沙)는 비무성주(非無聖主)요 찬양홍어해곡(竄梁鴻於海曲)은 기핍명시(豈乏明時)아 소뢰군자(所賴君子)난 안빈(安貧)하고 달인(達人)은 지명(知命)이라 노당익장(老當益壯)하니 영이백수지심(寧移白首之心)이며 궁차익견(窮且益堅)하니 불추청운지지(不墜靑雲之志)라 작탐천이각상(酌貪泉而覺爽)하고 처학철이유환(處涸轍以猶懽)이라 북해수사(北海雖賖)나 부요(扶搖)를 가접(可接)이오 동우(東隅)이 이서(已逝)나 상유(桑楡)이 비만(非晩)이라 맹상고결(孟嘗高潔)은 공회보국지심(空懷報國之心)이오 완적창광(阮籍猖狂)하니 기효궁도지곡(豈效窮途之哭)가 발(勃)은 삼척미명(三尺微命)이오 일개서생(一介書生)이라 무로청영(無路請纓)하니 등종군지약관(等終軍之弱冠)이요 유회투필(有懷投筆)하니 모종각지장풍(慕宗慤之長風)이라 사잠홀어백령(舍簪笏於百齡)하고 봉신혼어만리(奉晨昏於萬里)라 비사가지보수(非謝家之寶樹)나 접맹씨지방린(接孟氏之芳隣)이라 타일(他日)에 추정(趨庭)하야 도배리대(叨陪鯉對)하고 금신(今晨)에 봉메(捧袂)하니 희탁용문(喜託龍門)이라 양의(楊意)를 불봉(不逢)하니 무릉운이자석(撫凌雲而自惜)이오 종기(鍾期)를 기우(旣遇)하니 주류수이하참(奏流水而何慙)가오호(嗚呼)라 승지(勝地)는 불상(不常)이요 성연(盛筵)은 난재(難再)니 난정(蘭亭)이 이의(已矣)오 재택(梓澤)이 구허(丘墟)라 임별증언(臨別贈言)하니 봉승은어위전(幸承恩於偉餞)이오 등고작부(登高作賦)하니 시소망어군공(是所望於群公)이라 감갈비승(敢竭鄙誠)하니 공소단인(恭疏短引)이라 일언균부(一言均賦)하니 사운구성(四韻俱成)이라 등왕고각임강저(騰王高閣臨江渚)하니 패옥명란파가무(佩玉鳴란罷歌舞)라 화동조비남포운(畵棟朝飛南浦雲)이오 주렴모권사산우(朱簾暮捲西山雨)라 한운담영일유유(閒雲潭影日悠悠)하니 물환성이도기추(物換星移度幾秋)이 각중제자금하재(閣中帝子今何在)오 함외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라 노랫말 출처 :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唱樂集成), 휴먼앤북스, 2011.
송서는 크게 고문진보류와 소설류로 나뉘며, 고문에 현토하여 가창하는 고문진보류 송서는 소설류 송서보다 인기가 덜하여 전승이 단절된 것이 많다. 등왕각서는 고문진보류 송서이지만 이문원을 통해 묵계월로 전승되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연행된 고문진보류 송서의 특징을 고찰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송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2009) 경기송서-송서ㆍ율창: 경기도 무형문화재(2011)
성기련, 「송서(誦書) ‘등왕각서(藤王閣序)’에 관한 고찰」, 『韓國音盤學』 5, 1995.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唱樂集成)』, 휴먼앤북스, 2011.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 『한국 유성기음반 1권_콜럼비아 음반』, 2011.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 『한국 유성기음반 4권_나팔통 포리돌 태평 군소 음반』, 20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민속원, 1999.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