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로, 연못을 상징하는 영지(影池)를 중앙에 놓고 영지에 비친 달그림자의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한 춤
영지무는 조선후기의 향악정재(鄕樂呈才)중 하나이다. 연못을 상징하는 영지에 비춰진 달그림자에 신선이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춤이다.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영지를 향하여 2대로 나누어 동·서와 남·북 방향으로 서서, 마주보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며 영지 안에 있는 연꽃을 어르고 좌·우로 돌며 춤춘다.
영지무는 1828년(순조 28)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보령 40세 생신을 경축하기 위하여 열린 연경당 진작례(進爵禮)에서 무동정재(舞童呈才)로 처음 공연되었다.
순조 『(무자)진작의궤(進爵儀軌)』(1828)에 의하면, 중국 청나라『패문운부(佩文韻府)』(1711)에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망학대(望鶴臺)에서 달그림자가 연못 안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영아지(影娥池)라고 하였다.” 또한 “네모난 모양의 연못과 같은 영지를 설치하고 무동 세 사람이 영지의 앞에 있고, 세 사람은 영지의 뒤에 있으면서 함께 마주하고 춤춘다”고 전한다. 영지무는 이러한 중국의 고사를 연원으로 창제된 정재로, 창사는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직접 지었다. 1828년 초연 이후에는 영지무가 공연된 기록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연대 미상의 『무동각정재무도홀기(舞童各呈才舞圖笏記)』에 영지무의 유일한 무보(舞譜)가 전해져 연대 미상의 『무동각정재무도홀기(舞童各呈才舞圖笏記)』에 영지무의 유일한 무보(舞譜)가 1993년도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견되어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1997년 이흥구(李興九 1940~)에 의하여 재현 안무된 이후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무동 정재로 전승되고 있다.
〇 내용 영지는 ‘연못 그림자’라는 뜻이다. 무용수 여섯 사람이 연못을 상징하는 영지를 중심으로 동과 서, 남과 북에 서서, 영지에 핀 꽃을 어르기도 하고 좌·우로 빙빙 돌며 추는 춤이다. 도입부는 ①악사가 영지를 든 무용수를 인솔하여 들어오고, 무용수가 영지를 놓고 나가면 ②무용수 여섯 사람이 나란히 나와 영지의 좌·우로 나누어 선다. 전개부에서는 ③무용수들이 좌·우 2대로 나누어 영지를 중심으로 돌아서[회선(回旋)] 동·서로 대를 나누어 선다. ④무진(舞進)·무퇴(舞退)하고 상대(相對)·상배(相背)하며 춤춘다. ⑤각각 영지를 향하여 소매를 드리우기도 하고[수수이무(垂手而舞)], 좌·우로 빙빙 돌기도 하며 영지의 연꽃을 어르며 춤춘다. ⑥남·북으로 대를 나누어 좌·우로 돌며 춤춘다. 종결부에서는 다시 처음의 대열로 돌아와 춤추며 물러나면 음악이 그친다. 〇 주요 춤사위 영지무 춤사위는 수수이무(垂手而舞)·이수고저(以袖高低)·좌우일전(左右一轉), 회선(回旋)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형과 공간이동, 동작을 지시하는 내용은 2대로 나누어 좌우로 돌며 춤춘다[分二隊左右回旋而舞], 동서로 나누어 북향하여 나갔다 물러나며 춤춘다[分東西北向進退而舞], 각각 영지를 향하여 춤춘다[各向影池而舞], 연꽃을 즐겁게 어르며 춤춘다[歡弄蓮花而舞]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지무 창사는 연못에 비춰진 달그림자를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즐기는 서정적인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현존하는 단 한 편의 『무동각정재무도홀기』에는 창사가 생략되어 있다.
「무6인 창사」 影娥池水, 涵涵碧 영아지수, 함함벽. 仙人弄波, 笙笛雲韶, 樂舞婆娑 선인농파, 생적운소, 악무파사. 「무6인 창사」 영아지(影娥池, 漢나라 武帝가 달을 감상하기 위해 만든 연못) 물빛은 넘실넘실 푸른데 신선은 물장난을 치는구나. 생황과 적이 운소곡(雲韶曲) 연주하자, 그 소리에 춤사위 너울너울. - 원문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정재무도홀기』에 전하는 반주음악은 〈향당교주(鄕唐交奏)〉이다. 현재는 〈세령산〉, 〈타령〉, 〈자진타령〉으로 연주된다.
〇 복식
무동은 아광모(砑光帽)를 쓰고 벽라포(碧羅袍)와 흰색 바탕에 흑색선을 두른 중단의[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線中單衣)]에 홍색 바탕에 남색 선을 두른 치마[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을 입고 학정대(鶴頂帶)와 무우리(無憂履)를 착용하였다.
〇 무구
순조 『(무자)진작의궤』에 의하면, 영지는 네모난 연못 모양으로 바닥은 물이 고인 것처럼 보이도록 칠하고, 연못의 가운데에는 목가산(木假山)이라 하여 나무로 산을 만들어 산봉우리에 하얀 새 등을 얹어 놓았다. 가장자리는 연꽃, 잎사귀 등으로 장식하였고 아래는 다리가 있고 각색을 칠한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영지의 바닥에 바퀴를 달아 이동이 편리하도록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중국 한나라의 고사를 소재로 한 영지무는 연못을 상징하는 네모난 모양의 무구(영지)을 사용하고, 물을 표현하는 푸른빛의 벽라포 의상을 착용함으로써 영지무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시각적 극대화를 표출한 작품이다. 중국 역대 왕조의 고사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조선 후기 정재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영희 외, 『한국춤통사』, 보고사, 2014.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궁중악무』, 2014. 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이흥구·손경순, 『한국궁중무용총서: 13』, 보고사, 2011. 이의강 책임번역, 『국역 순조무자진작의궤』, 보고사, 2006.
최경자(崔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