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무용수가 치마 위에 덧입는 크기가 작은 붉은 비단 치마
홍초상은 조선 시대 궁중연향(宮中宴享)에서 정재를 올리는 여령(女伶) 등이 입었던 크기가 작은 붉은 색 비단 치마이다. 보통 남치마 위에 덧입으므로 웃치마라고도 한다. 나이가 어린 동기(童妓)는 입지 않지만, 궁중연회에 시위(侍衛) 및 차비(差備) 여령(女伶) 등도 남색상(藍色裳) 위에 덧입었다.
겉치마를 이중으로 겹쳐 입는 관습이 언제부터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시대 홍초상에 대한 기록은 《화성원행의궤도(華城園幸儀軌圖)》에서 흰색의 치마허리와 끈이 달린 홍색 치마의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웃치마를 입는 것은 『진찬의궤』 등의 기록을 보면 정재여령은 물론 각종 차비여령과 비자(婢子) 등이 머리에 쓰는 쓰개와 겉옷이 각기 다른 반면, 치마는 겉에는 홍초상, 안에는 남색상(藍色裳)을 입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궁중정재에서 여령이 입는 홍초상은 반드시 안에 남색상을 입는 것이나 20세기 이후 무용공연에서 이러한 착장방식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홍색상을 입었으나 길이만 짧은 경우도 있다.
여령의 기복복식은 안에 저고리와 남색 비단치마를 입고 그 위에 홍초상을 덧입는다. 그 위에 초록단의(草綠丹衣)나 황초단삼(黃綃單杉)을 입고 가슴에 홍색의 띠를 두른다. 초록혜(草綠鞋)를 신으며, 손에는 오채한삼(五彩汗杉)을 매고, 머리에는 화관(花冠)을 쓴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비롯한 의궤의 복식도에는 홍초상의 그림은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복식도에 남색상의 그림은 수록되어 않지만, 안에 입은 남색 치마의 아랫부분이 드러날 정도로 홍초상은 일반치마보다 좁고 짧았다. 조선 시대의 앞치마와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 《무신년진찬도》중 차비여령(差備女伶) 등의 모습에서도 남색상 위에 홍초상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홍초상의 소재는 『진찬의궤』의 악기풍물(樂器風物)에서 찾아보면 홍색 또는 진홍색의 인문갑사(鱗紋甲紗)나 도류문갑사(桃榴紋甲紗)를 사용하였다. 치마에 필요한 옷감의 소요량을 1848(헌종 14)년 대왕대비인 순원왕후 김씨의 육순을 기념한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1848) 악기풍물에서 찾아보면, 춘앵전에 입을 치마 한 벌에 진홍 도류문(桃榴紋) 갑사 3척(尺), 허리끈〔腰纓〕으로 백색의 화갑사(花甲紗) 2척이 소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소장의 신정왕후((神貞王后,1808-1890)가 친정 조카에 하사했던 자색 웃치마 역시 도류불수사로 만들었고, 길이 106cm, 폭 126cm로 일반 치마에 비해 크기가 작다.
#5 웃치마 이미지
한편 『무신진찬의궤』에서 여령복식이나 춘앵전(春鶯囀) 여령의 경우 홍초상만 있을 뿐 남색 상(裳)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국립박물관 소장 《헌종무신진찬도(憲宗戊申進饌圖)》에서는 대부분 홍초상을 덧입은 모습이 관찰된다. 홍초상은 여령의 기본 복식이었고 차비들도 입었다. 반면 동기의 홍라상(紅羅裳)은 홍초상과 다른 양식으로 『악학궤범』에 수록된 보로와 유사하게 좁고 가는 천 장식이 덧대어진 것으로 보인다.
궁중정재에서 홍초상과 같은 웃치마를 입는 것은 왕실여성의 예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 여성들은 예복을 입을 때 남색 스란치마를 먼저 입고 그 위에 홍색 스란치마를 겹쳐 입었다. 이때의 스란치마는 둘 다 길이가 긴 것이지만 앞서 언급한 신정왕후가 하사한 자색 웃치마 유물로 보아 홍초상과 같이 작은 크기의 웃치마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향연과 의례』, 국립중앙박물관, 2009. 『服飾-家政科學大學 蒐輯, 服飾資料를 中心으로』, 梨花女子大學校 博物館 特別展 圖錄(23). 1995.
홍나영(洪那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