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창(律唱), 영시(詠詩), 송시(誦詩), 시음(詩吟)
오언이나 칠언으로 된 한문시를 곡조에 얹어 부르는 노래
시창(詩唱)은 오언이나 칠언으로 된 한시(漢詩)를 곡조에 얹어 길게 늘여서 부르는 음악갈래이다. 〈관산융마(關山戎馬)〉를 서도식 율창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시창과 율창(律唱)은 동의어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문인들이 한시를 지어 곡조에 얹어 부르는 것을 시창이라고 불렀는데, 지금까지 전해 오는 시창으로는 〈관산융마(關山戎馬)〉ㆍ〈경포대(鏡浦臺, 십이난간)〉ㆍ〈금강정(錦江亭, 십재경영)〉 등이 있다.
시창은 한문으로 된 시(詩)를 노래하는 음악 갈래이다. 시창은 악기 반주 없이도 언제나 부를 수 있으므로 전문 음악인이 아닌 문인들이 전통사회로부터 향유해 왔으며, 이들과 교류하던 기생 신분의 예인(藝人)들 중 시창을 잘 불러서 이름이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초 이후 전문 음악인이 〈관산융마〉ㆍ〈경포대(십이난간)〉ㆍ〈금강정(십재경영)〉 등의 한시를 즐겨 부르면서 시창은 음악의 한 갈래로 자리 잡게 되었다.
○ 역사 변천 과정 송서가 산문으로 된 글을 가사로 삼는 음악이라면, 시창은 오언이나 칠언의 한시를 가사로 삼아 장단과 높낮이를 붙여 읽는 음악이다. 전통사회에서 시창은 대개 문인들에 의해 가창되었는데, 글방에서 한시를 지어 부르기도 하였지만, 한시를 지은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소리 내어 부르며 서로 화답하는 문화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 시창은 판소리 〈춘향가〉에서 남원부사의 생일잔치에 나타난 이도령이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를 운봉영장이 “금준미주(金樽美酒)는~”이라고 소리 내어 시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시창이 자연스럽게 판소리에 삽입되었다는 것을 통해서도 한시를 지으면 시창으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금동이에 맛난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옥쟁반에 좋은 안주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인루락(燭淚落時人淚落), 촛불 눈물 떨어질 제 백성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아라. 18세기에 들어서는 중인들 중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시사(詩社)를 조직하고 중인들의 주요 활동지였던 인왕산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한시를 짓는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시사를 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였는데, 중인들이 조직한 대표적인 시사로는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가 있다. 시사를 조직한 이들은 자신들끼리 혹은 글을 잘 짓는 문인들을 초대하여 한시를 지으며 교류하였다. 이름난 문인들이 지은 한시 작품은 두고두고 후세로 전해져, 계속 시창으로 불리며 음미되고 감상되었다. 조선 영조대 시인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가 지은 한시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歎關山戎馬)〉는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등악양루(登岳陽樓)〉를 토대로 내용을 발전시켜 재구성한 것으로, 〈관산융마〉라는 제목의 시창 작품으로 알려져 계속 불렸다. 시창 〈경포대〉는 순조대 심영경(沈英慶, 1890~?)이 지은 한시 작품이며, 시창 〈금강정〉은 중종대 정문손(鄭文孫, 1473~1554)이 지은 한시 작품이다. ○ 20세기 초 이후 시창의 전승 최근까지도 한학자들 사이에서는 한시를 시창하는 문화가 전승되고 있지만, 20세기 이후에는 전문 음악인들이 유성기음반에 시창을 녹음하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한시를 노래하면서 시창이 감상을 위한 음악 갈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시창은 1913년 김연옥과 조모란에 의해 유성기음반에 처음 녹음되었는데, 이처럼 20세기 이후 유성기음반에 시창을 녹음하거나 무대에서 부른 이들은 대개 서도소리 창자들이었다. 20세기에 활동한 서도소리 창자 중 시창을 잘한 창자로는 장학선(張鶴仙, 1906~1970)ㆍ백운선(白雲仙, 1899~?)ㆍ김정연(金正淵, 1913~1987) 등이 유명했으며, 이들은 주로 〈관산융마〉를 불렀다. 〈관산융마〉의 경우 ‘서도식 율창’이라고 칭해지기도 하였는데, 〈관산융마〉는 시창으로 불리는 다른 한시 작품과 달리 창자마다 다른 곡조로 부르지 않고 거의 같은 선율로 부른다. 이는 〈관산융마〉가 서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에 의해 일찍부터 자신들의 공연 레퍼토리로 수용되어 애창되었고, 그 곡조가 이후 후배나 제자에게 꾸준히 전승해 왔기 때문이다. 〈관산융마〉의 원문은 칠언 사구로 된 한시이나, 시창으로 불릴 때는 대개 사구 또는 팔구까지만 부른다. 한편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방송곡 목록을 보면 서도소리 창자가 아니면서 시창을 부른 창자들이 있는데, 서도 출신이 아니면서 시창을 부른 대표적인 창자는 이문원이다. 그 외 1930년대에 라디오에서 시조나 송서(誦書)를 부를 줄 아는 가객 중 영시나 송시 등의 제목으로 방송을 한 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20세기 전반까지 서도소리 창자가 아니면서 시창을 불렀던 이들은 이문원과 마찬가지로 가객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경성방송국 국악방송곡 목록에 의하면 1937년 방송된 조낭자(趙娘子)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송서인 〈전적벽부(前赤壁賦)〉와 함께 중국 당나라 시인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칠언 한시인 〈비파행(琵琶行)〉을 송시로 부른 것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시를 읊는다’는 뜻의 ‘송시’는 곧 시창을 뜻하는데, 요즘은 〈비파행〉을 시창으로 부르는 창자가 없지만 〈비파행〉은 1930년대까지도 즐겨 감상되던 시창 레퍼토리 중 한 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방송일자 |
방송시간 |
경성방송국 국악방송곡 목록 |
연주자 |
1935. 5. 14 |
21:00- |
誦書와 詠詩 <藤王閣書, 關山戎馬> |
申國均 |
1937. 7. 19 |
21:15- |
誦詩及 誦書 琵琶行, 赤壁賦(前篇) |
趙娘子 |
1939. 8. 20 |
21:15-종료 |
誦書와 詠詩 <誦書, 詠詩, 前赤壁賦> |
金龍雲 |
서도소리 계통 창자가 아닌 음악인 중 20세기 후반기까지 시창을 즐겨 부른 창자로는 가곡의 명인인 김월하(金月荷, 1918~1996)가 있다. 김월하가 부른 시창 〈경포대〉와 〈금강정〉이 현재 음원으로 남아 있으며, 〈경포대〉는 지금까지 무대에서 종종 불린다.
김월하의 〈관산융마〉도 음원으로 전하는데, 김월하가 부르는 〈관산융마〉는 서도소리 창자들의 〈관산융마〉보다 더 담백하고 시조목에 가깝다.
그 외 박헌봉이 부른 시창인 〈청당삼월〉, 〈금시당〉, 〈차독사서〉의 음원이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자료로 남아 있으며, 일찍이 가곡을 학습했던 판소리 명창 김여란(金如蘭, 1907~1983) 역시 시창을 잘 불렀다고 전한다.
○ 음악적 특징 20세기 이후 한시를 읊는 시창은 전문 음악인들의 소리 학습 내력과 그들이 구사한 음악 어법을 고려할 때, 크게 서도소리의 음악어법이 강하게 반영된 서도식 시창과 가객들이 시조목으로 부르는 시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문인음악의 전통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글을 읽는 장르인 송서에 서도식 송서와 서울식 송서가 전승되고 있는 양상과 맥락이 같다. 그러나 시창은 운문인 한시를 노래하는 것이고, 송서는 산문인 줄글을 읽는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편 시창은 시를 노래하는 것이고 전문 음악인이 아닌 문인이 악기 반주 없이도 언제든 노래했다는 점에서 우리말로 된 시조시를 노래하는 시조창과 통하는 점이 있으며, 서도소리 창자가 부른 〈관산융마〉를 제외하고는 시조목으로 부른다는 점에서도 시조창과 유사하다. 시창의 음악적 특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창은 황종(黃:E♭4), 태주(太:F4), 중려(仲:A♭4), 임종(林:B♭4), 남려(南:C5)로 구성된 평조(平調)이다. 선율 진행상의 특징으로는 고음역에서는 순차진행하고 저음역에서는 4도로 도약진행하며, 음악을 마칠 때 높은 음으로 길게 끌다가 4도 아래로 급격히 하행하며 종지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가사 붙임새는 어단성장(語短聲長)과 일자다음(一字多音) 형태가 주를 이룬다. 시창은 매우 느리게 가창되고 특히 〈관산융마〉는 다른 시창 악곡보다 더 느리기 때문에 시창의 정확한 시가(時價)나 규칙적인 장단을 파악하기 어렵다. 시창과 시조창이 선율적으로 관련성이 많았지만, 가사 붙임새 면에서는 시조창이 오박 장단과 팔박 장단으로 되어 있는 반면, 시창은 가사 붙임새가 창자마다 조금씩 다르고 일정한 장단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ㅇ 〈관산융마〉 ㅇ 〈경포대(십이난간)〉 ㅇ 〈금강정(십재경영)〉
서도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9) 송서ㆍ율창: 경기도 무형문화재(2011)
시창은 오언이나 칠언으로 된 한시를 노래하는 것으로, 전통사회에서부터 문인들이 한시를 지으면 이를 노래하며 향유하던 전통 속에서 형성되어 내려왔다. 유명한 한시 작품을 음악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감상하던 문화는 20세기 초 이후 서도소리 창자와 가객 출신 음악인들이 시창을 자신들의 공연 레퍼토리로 삼으면서 음악 갈래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시창 작품으로는 주로 서도소리 창자들이 부르는 〈관산융마〉가 있고, 김월하 등의 가객들이 전승한 〈경포대(십이난간)〉와 〈금강정(십재경영)〉 등이 있다.
『석북시집(石北詩集)』
김영운, 「시창의 음악적 연구」, 『한국음악연구』 37, 2005. 김영운, 「시조와 시조창의 비교 연구」, 『한국전통음악연구』 6, 2005. 김인숙, 「명창 김여란의 판소리관과 예술세계」, 『판소리연구』 23, 2007. 이보형․성기련,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 19 CD 시창 및 송서」 음반해설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성기련(成耆蓮)